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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퍼레이드와 도시권 정치
[디스크립션: 주제 소개] 퀴어퍼레이드는 무지개 깃발과 화려한 코스튬,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축제로 보이지만, 동시에 도시 공간을 둘러싼 치열한 정치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누가 이 도시에 속해 있는가”, “어떤 몸과 관계가 공공장소에서 보일 수 있는가”, “도시는 누구의 권리를 우선 보호하는가”라는 질문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바로 퀴어퍼레이드입니다. 이 글에서는 ①퀴어퍼레이드를 ‘도시에 대한 권리’ 실천으로 보는 관점, ②행진 허가·경로·치안 등을 둘러싼 갈등 구조, ③도시 브랜드·관광 전략과 퀴어 행사 사이의 긴장, ④로컬 커뮤니티에게 퀴어퍼레이드가 갖는 의미와 한계, ⑤도시권 정치 속에서 퀴어퍼레이드가 앞으로 갖게 될 과제를 살펴봅니다.
1. 퀴어퍼레이드는 왜 ‘도시에 대한 권리’인가
1)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보일 권리”의 집단 실천
퀴어퍼레이드는 성소수자(LGBTQ+)가 연인과 손을 잡고, 자신의 성정체성·젠더 표현을 드러내며, 깃발과 슬로건을 들고 도시의 한복판을 행진하는 사건입니다.
이는 단지 “우리도 즐겁게 축제를 한다”가 아니라, “우리는 이 도시의 공공공간을 동등하게 사용할 권리가 있다”를 몸으로 주장하는 행위입니다.
이를 도시권(right to the city) 관점에서 보면, 퀴어퍼레이드는 혐오와 배제에 익숙한 거리 풍경을 다양성과 차이를 드러내는 풍경으로 잠시나마 바꿔 놓는 상징적 재점유입니다.
2) “숨지 않고 걷는 것”의 정치성
많은 성소수자는 직장, 학교, 가족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ON/OFF 하며 살아갑니다.
퀴어퍼레이드 당일만큼은 가명을 쓰지 않고, 연인과 함께 사진을 찍고, 무지개 깃발을 어딘가에 꽂아 두고도 “그래도 오늘은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처럼 “숨지 않고 걷는 경험”은 개인에게는 치유이자 empowerment(힘 얻기)이고, 도시에 대해서는 “이 도시가 누구에게 안전한 곳인가”를 다시 묻는 정치적 사건이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여러 사람들이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2. 행진 허가·경로·치안을 둘러싼 도시권 갈등
1) 허가와 장소: 누가 광장을 쓸 수 있는가
퀴어퍼레이드는 광장, 시청 앞, 도심 대로, 상징적인 공공장소를 행사 장소로 신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에서는 ‘교통 혼잡’을 이유로 경로를 외곽으로 빼거나, ‘시민 정서’를 이유로 상징 공간 사용을 제한하려 합니다.
이때 사실상 작동하는 질문은 “성소수자의 존재를 이 도시의 얼굴로 인정할 것인가”입니다.
허가 여부와 장소 배정은 퀴어퍼레이드의 규모나 편의 문제를 넘어서, “도시가 공식적으로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를 드러내는 정치적 메시지가 됩니다.
2) 맞불 집회와 ‘질서’의 이름으로 가려진 편향
퀴어퍼레이드가 열리는 날, 인근에는 종종 성소수자 혐오를 드러내는 맞불 집회가 열립니다.
도시 행정과 경찰은 공식적으로는 집회·표현의 자유, 충돌 방지, 교통·치안 유지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어느 쪽 소리를 더 가깝게 듣고, 어느 쪽 시선을 기준으로 “불쾌감” “선량한 풍속”을 판단하는지가 현장에서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혐오 발언·혐오 피켓에는 관대하면서 퀴어 깃발·복장에는 엄격해지는 행정은 “도시는 누구를 위해 보호하고, 누구에게 침묵을 요구하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3) 치안 담론: 보호인가, 통제인가
퀴어퍼레이드에는 대규모 경찰 병력, 교통 통제, 안전 펜스가 동원됩니다.
한편으로는 참가자를 향한 폭력·괴롭힘을 막는 필수적인 장치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당신들의 존재는 위험을 동반한다”는 암묵적 메시지를 주기도 합니다.
결국 관건은 경찰력과 행정력이 누구로부터 누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느냐입니다.
3. 도시 브랜드·관광 전략과 ‘핑크워싱’ 문제
1) 무지개 깃발을 든 도시 마케팅
일부 글로벌 도시는 “다양성과 포용의 도시” 이미지를 위해 퀴어퍼레이드·프라이드 행사를 관광·브랜딩 자원으로 활용합니다.
시청 건물에 무지개 깃발을 걸고, 시장·정치인이 퍼레이드에 참석해 사진을 찍고, 공식 관광 사이트에 프라이드 시즌 행사를 소개하는 식입니다.
이것은 안전한 도시로서의 메시지를 성소수자와 투자자·관광객에게 동시에 보내는 전략입니다.
2) ‘핑크워싱’ 비판
하지만 이런 전략은 자칫 핑크워싱(pinkwashing) 비판을 부르기도 합니다.
실제로는 주거·노동·교육·보건 영역에서 성소수자가 겪는 차별을 외면하면서, 무지개 이미지만 가져와 도시를 “진보적이고 세련된 곳”으로 포장한다는 지적입니다.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이미지만 주면 실제로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 차별금지법·조례는 지지하지 않으면서 프라이드 기간에만 무지개 조형물을 세우는 행위, 성소수자 노숙인·이주민·청소년의 현실은 방치한 채 관광객용 퍼레이드만 키우는 접근은 “도시는 누구를 위해 포용적인가”라는 질문을 불러옵니다.
3) 기업 스폰서십의 양면성
대형 퀴어퍼레이드는 글로벌 브랜드, 금융·음료·IT 기업의 후원 없이 운영되기 어렵습니다.
이 스폰서십은 재정적 기반을 제공하고, 기업 내부 다양성 정책을 촉진하는 효과도 있지만, 동시에 급진적인 정치 요구(예: 경찰 예산 축소, 반전·반자본주의 메시지)를 수위 조절하게 만들거나, 소비 여력이 있는 ‘중산층 게이·레즈비언’ 이미지만 전면에 등장시키는 경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즉, 퀴어퍼레이드가 “권리 요구의 장”에서 “소비 가능한 라이프스타일 축제”로 누그러지는 위험도 있는 셈입니다.
4. 로컬 퀴어 커뮤니티에게 퀴어퍼레이드가 갖는 의미
1) ‘내가 혼자가 아니다’라는 집단 경험
지방 도시나 보수적 지역에서는 퀴어퍼레이드가 처음 열리는 것만으로도 큰 상징성을 가집니다.
그날, 평소 거리에서 보기 힘들던 성소수자들이 한곳에 모여, 깃발을 흔들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경험은 “이 도시에도 우리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를 실감하게 합니다.
이 경험은 우울·고립감을 줄이고,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며, 지역의 다른 인권 의제와 연대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2) 내부의 다층성: 누가 중심에 서는가
그러나 퀴어 커뮤니티 내부에도 성별, 인종/민족, 계급, 장애, 이주/난민 여부에 따라 차이가 존재합니다.
대형 퍼레이드에서 비교적 ‘보편적이고 안전한’ 이미지의 도시 중산층 게이/레즈비언이 전면에 서는 반면, 트랜스젠더,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난민 퀴어, 청소년·노년 성소수자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트랜스 프라이드, 바이 프라이드, 지역 소규모 퀴어 퍼레이드 등 다양한 형태의 행사가 등장하며, “누가 퀴어 커뮤니티의 얼굴인가”에 대한 내부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3) 일상의 안전과 연결되는 정치
퀴어퍼레이드가 단 하루의 축제에 그치지 않으려면, 학교 내 혐오·괴롭힘, 트랜스젠더 의료 접근권, 동반자 관계의 법적 보호, 주거·노동에서의 차별 금지 등 일상적 권리 의제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행진에서 외친 구호가 지자체 조례, 학교 정책, 기업 인사 시스템, 보건·복지 서비스 개선으로 이어질 때, 퀴어퍼레이드는 “하루짜리 카니발”이 아니라 “도시권 정치의 기폭제”가 됩니다.
5. 도시권 정치 속 퀴어퍼레이드의 앞으로의 과제
1) 안전과 ‘불편함’의 경계 다시 그리기
도시 행정은 자주 “다른 시민이 불편해한다”는 이유로 표현과 행진을 제한하려 합니다.
그러나 민주적 도시권의 기준에서 볼 때, 타인의 존재 자체, 정체성의 가시화 때문에 느끼는 불편함은 보호해야 할 권리가 아니라, “다양성과 평등을 향해 함께 조정하고 배워야 할 영역”입니다.
반면 물리적 폭력·괴롭힘·혐오선동은 명확히 규제 대상입니다.
퀴어퍼레이드를 둘러싼 정치에서 이 두 영역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는 앞으로도 중요한 쟁점이 될 것입니다.
2) 로컬·글로벌 이슈와의 연대
많은 퀴어퍼레이드는 여성운동, 인종차별 반대, 장애인권, 기후위기, 반전·반권위주의 운동과 연대해 왔습니다.
도시권 정치의 관점에서 성소수자 권리는 “특정 집단의 단일 의제”가 아니라, “도시에서 누구나 안전하고 존엄하게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의 일부입니다.
따라서 퀴어퍼레이드는 다른 사회운동과의 연결 지점을 넓히고, 도시 계획·주거·교통·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입장을 내는 방향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3) 온라인·지역 분산형 기념으로의 확장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온라인 프라이드, 소규모 지역 분산 집회, 문화제·상담·토크 프로그램 등이 기존 대규모 행진과 병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군중 밀집에 따른 안전 문제를 완화하고, 대도시에 올 수 없는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하며, 퀴어퍼레이드의 의미를 연중 프로그램으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결론: 퀴어퍼레이드는 “누가 이 도시의 시민인가”를 묻는 행사
퀴어퍼레이드는 화려한 퍼포먼스와 축제성 뒤에서 “이 도시는 누구의 몸과 사랑을 당당하게 허용하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정치적 의례입니다.
행진의 허가 여부, 경로와 장소, 경찰력의 배치 방식, 지자체·기업의 태도, 언론 보도의 프레임은 모두 “성소수자가 이 도시에서 1등급, 2등급, 혹은 보이지 않는 시민 중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앞으로 퀴어퍼레이드가 상업화와 ‘이미지 소비’의 함정을 경계하고, 더 다양한 퀴어 주체의 목소리를 담아내며, 다른 사회운동과 연대 속에서 도시 권리 의제를 확장해 나간다면, 도시 한복판을 가르는 그 행렬은 단지 하루의 축제가 아니라, “모두의 도시”를 향해 경계를 다시 긋는 정치적 실험장으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