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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동포사회 국경일 기념식의 변형

해외 동포사회 국경일 기념식의 변형

해외 동포사회에서 열리는 국경일 기념식은 본국의 공식 행사와 닮았으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기 게양, 애국가 제창, 축사 같은 형식은 유지되지만, 참석자 구성, 프로그램 내용, 함께 나누는 이야기 속에는 이민과 정착, 세대교체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 글에서는 ①해외 동포사회의 국경일 기념식이 어떻게 ‘변형’되는지, ②어떤 요소는 유지되고 어떤 요소는 바뀌는지, ③세대·정체성 변화가 의례를 어떻게 다시 짜는지, ④이 변형된 기념식이 갖는 의미와 한계를 살펴봅니다.

1. 본국 국경일 의례, 해외에 ‘복제’되다

해외 동포사회에서 처음 국경일 기념식이 시작될 때, 출발점은 대개 “본국의 국가 기념식을 가능한 비슷하게 따라 하는 것”입니다.

대사관·총영사관, 공관, 문화원, 교민회관 등이 행사를 주관하고 국기 게양,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국가원수 및 대사의 기념사 낭독, 만찬·다과 순서 등이 이어집니다.

초기 이민 세대에게 이런 형태의 기념식은 “우리가 비록 타국에 있지만, 여전히 ○○국 국민이다”라는 소속감을 확인하는 의례였습니다.

특히 독립기념일, 해방 기념일, 전쟁 정전·종전 기념일처럼 강한 역사적 감정을 동반한 날에는 공식 행사 이후 애국가 합창, 순국선열 추모 묵념, 고향 이야기를 나누는 긴 담소가 이어지며 기념식은 “이민자 공동체의 자기 확인”의 장이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행사는 점점 참석자의 국적, 언어, 세대 구성, 정치적 입장 변화에 따라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변형되기 시작합니다.

2. 형식은 비슷하지만, 내용과 분위기는 달라진다

1) 다국적 참석자와 이중 언어 사용
해외 동포사회 국경일 기념식에는 이민자와 그 가족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정착국 정부 관계자, 현지 정치인, 비즈니스 파트너, 다른 이민 공동체 대표 등 ‘외부 손님’이 점점 늘어납니다.

이때 행사 진행은 본국 언어와 정착국 언어를 섞어 쓰거나, 주요 연설을 두 언어로 번갈아 읽는 방식으로 변형됩니다.

이는 “이 기념식은 우리끼리만의 자리가 아니라, 정착국 사회와 관계를 맺는 외교·교류의 장이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2) 군사·위계 중심에서 문화·가족 중심으로
본국의 국가 기념식은 군악대, 군인 사열, 순국선열 호명, 국가주의적 수사가 강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해외 동포사회에서는 전통춤·노래·합창 공연, 어린이·청소년 태권도 시범, 한식·전통음식 나누기, 전통 의상 패션쇼처럼 보다 ‘문화 축제’에 가까운 구성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현지인에게 나라를 소개하는 역할과 다음 세대에게 “재미있고 자랑스러운 날”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섞인 결과입니다.

3) “기념식 후 사진과 SNS”가 또 다른 의례
해외 국경일 행사는 단체 기념사진 촬영, SNS 업로드, 교민신문·현지 언론 기사화를 통해 다시 한 번 ‘기념’됩니다.

특히 전통 옷을 입은 아이들, 양국 국기를 함께 든 사진, “○○시에서 열린 ○○국 국경일 행사” 같은 기사 제목은 이 행사가 “타국에서 우리 존재를 보여주는 날”이라는 상징을 강화합니다.

3. 이민 세대와 2·3세가 바라보는 국경일의 차이

1) 1세대에게: 향수와 상실, 자부심이 섞인 날
이민 1세대에게 국경일은 고향의 풍경, 어린 시절의 기억, 군복무·전쟁 경험, 떠나올 때의 상황까지 여러 감정을 소환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기념식에서는 눈물을 보이며 애국가를 부르거나, “우리말을 잊지 말라”, “조국을 기억하라”는 정서적인 연설이 자주 등장합니다.

국경일은 “고향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를 확인하는 의례에 가깝습니다.

2) 2·3세에게: 언어도, 감정도 ‘한 번 번역된’ 날
반면 정착국에서 태어나 자란 2·3세에게 본국의 국경일은 언어가 완전히 익숙하지 않고, 역사도 책과 부모의 이야기로만 배웠으며, 국기에 대한 감정도 덜 직접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에게 국경일 기념식은 전통 공연에 참여하는 무대, 친구들을 만나는 네트워킹, 이중 정체성을 확인하는 자리이면서도 동시에 “얼마나 애국적인지 시험받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모국어로 애국가를 모르는 것에 대한 ‘농담 섞인 질책’, 본국 정치·역사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단순한 애국심으로만 말해야 하는 분위기 등은 2·3세에게 거리감을 만들 수 있습니다.

3) 세대 간 절충: 축사 대신 토크·대담으로
이러한 간극을 줄이기 위해 일부 동포사회에서는 일방적인 애국 연설 대신, 세대 간 토크 콘서트, “내가 느끼는 조국과 정착국” 같은 패널 대담을 국경일 프로그램에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그 결과 국경일 기념식은 “한 방향의 메시지를 주입하는 자리”에서 “서로 다른 경험을 나누는 자리”로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4. 정착국 정치·사회 환경에 따른 변형

1) “본국 정부 행사” vs “동포 공동체 행사”
해외 국경일 기념식은 대사관 등 본국 정부가 주최하는 공식 행사, 동포 단체·시민사회가 여는 자율 행사로 나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국 정치 상황에 따라 어떤 동포는 정부 주최 행사에 참여하지만, 또 다른 동포는 이를 “정권 홍보”로 보고 거리감을 두거나, 오히려 인권·민주화 단체가 별도의 ‘대안 기념식’을 열기도 합니다.

이때 같은 국경일이 한쪽에서는 국가주의적 축제, 다른 한쪽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집회·토론의 날로 전혀 다르게 기념됩니다.

2) 정착국과 본국 관계에 따른 긴장
정착국과 본국의 외교관계, 역사적 갈등 여부도 기념식의 분위기에 영향을 줍니다.

양국 관계가 우호적일 때는 정착국 정치인·관료가 축사와 축하 메시지를 보내지만, 긴장이 고조될 때는 외교적 수사와 상징이 민감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동포사회 입장에서는 “조국에 대한 애정”과 “정착국에 대한 충성·감사” 사이의 균형을 기념식 속 언어와 상징으로 섬세하게 조절해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3) 다문화 정책의 영향: 개방적 축제 vs 폐쇄적 행사
정착국의 다문화·이민 정책이 적극적일수록 국경일 기념식은 시민들에게 개방되는 축제, 도시 공식 캘린더에 오른 이벤트가 되기 쉽습니다.

반대로 이민에 대한 반감이 크거나 소수자 정책이 미비한 곳에서는 행사가 ‘교민들끼리만 모이는 폐쇄적인 행사’로 남아 버리기도 합니다.

이 차이는 “우리 기념일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한 동포사회의 인식을 크게 바꿉니다.

5. 변형된 국경일 기념식이 갖는 의미와 과제

1) ‘충성 경쟁’이 아닌 ‘정체성 대화의 장’으로
변형된 해외 국경일 기념식이 건강하게 자리 잡기 위해서는, 누가 더 애국적인지, 누가 더 자주 나오는지, 누가 더 깃발을 잘 드는지를 재는 ‘비공식 서열 의례’를 줄이고, 서로 다른 세대·경험·정치적 입장이 안전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은 토론과 나눔의 장을 포함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경일을 “하나의 감정만 강요하는 의례”가 아니라 “여러 감정과 생각을 함께 올려두고 바라보는 날”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이중·복수 정체성을 인정하는 언어 만들기
해외 동포사회의 구성원은 본국 시민, 정착국 시민, 이중 국적자, 무국적·난민 출신 등 매우 다양합니다.

기념식에서 사용하는 언어 역시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를 이분법적으로 묻기보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경로로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라는 복수 정체성을 인정하는 표현을 조금씩 늘려 갈 필요가 있습니다.

3) ‘하루짜리 행사’에 머물지 않는 연중 활동과 연결
국경일 기념식이 그날 사진 찍고 끝나는 이벤트가 아니라, 다음 세대 역사 교육, 문화·언어 프로그램, 인권·평화 관련 프로젝트 등 연중 활동과 연결될 때, 이 날은 “단지 조국을 한 번 떠올리는 날”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가치를 지향하며 살 것인지 함께 고민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 변형된 국경일 기념식은 ‘해외 동포사회의 현재’를 비추는 거울

해외 동포사회 국경일 기념식의 변형은 형식이 조금 달라졌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습니다.

누가 행사에 오고, 어떤 언어가 사용되며, 어떤 프로그램이 강조되고,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를 통해, 우리는 그 사회의 이민 역사, 세대 구성, 본국·정착국과의 관계, 정체성의 긴장과 희망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여전히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애국심이 중심이고, 또 어떤 곳에서는 다문화 축제와 문화 교류의 장, 세대 간 대화의 기회로 국경일이 재구성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변형이 “누군가의 기념을 배제하거나 침묵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이 날에 자기 목소리를 얹을 수 있게 만드는 방향”인지 계속 점검하는 일입니다.

그럴 때 해외 동포사회에서의 국경일 기념식은 단지 과거의 본국을 재현하는 자리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어떤 공동체로 살아갈 것인지 함께 실험해 보는 살아 있는 의례”로 진화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