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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프레·팬페스티벌의 기념적 성격
코스프레와 팬페스티벌은 더 이상 단순한 ‘덕질 행사’나 ‘굿즈를 사러 가는 날’에 머물지 않고, 특정 작품과 캐릭터, 그리고 스스로의 팬 정체성을 기념하는 거대한 의례의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시간과 비용, 적지 않은 노동을 들여 의상을 준비하고, 도심을 벗어난 행사장까지 발걸음하며, 해마다 같은 페스티벌을 마치 ‘성지순례’처럼 반복해서 찾을까요? 이 글에서는 ① 코스프레와 팬페스티벌이 지니는 ‘기념일’로서의 성격, ② 코스어·관객·주최 측이 각자의 위치에서 무엇을 기념하는지, ③ 사진과 기록이 만들어 내는 집단적 기억, ④ 상업화·피로·배제라는 이면, ⑤ 앞으로 더 건강한 팬 기념 문화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을 차례로 살펴봅니다.
1. 코스프레·팬페스티벌은 왜 ‘기념 의례’인가
1) 작품의 시간을 ‘현실의 날짜’로 끌어내리는 행위
코스프레와 팬페스티벌은 보통 인기 애니메이션·게임·영화의 방영이나 출시 시점, 세계관 속에서 상징적인 계절이나 장면(할로윈, 크리스마스, 학교 축제 등), 혹은 신작 발표나 업데이트, 콘서트와 같은 공식 일정에 맞춰 개최됩니다.
팬들에게 그 하루는 “내가 사랑하는 세계가 현실과 가장 가까워지는 순간”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렇기에 캐릭터 의상을 손수 만들고, 메이크업과 소품을 준비하며, 친구들과 코스프레 색감이나 콘셉트를 맞춰 가는 전 과정은 하나의 길고 밀도 있는 ‘준비의 의례’가 됩니다. 행사장에 도착해 입장 대기 줄에 서는 일, 코스프레 구역에서 포즈를 잡는 순간, 같은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는 장면들 역시 “이 세계를 오래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이 몸으로 표현되는 기념의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2) 팬으로서의 자신을 공적으로 선언하는 날
온라인에서는 닉네임과 프로필 뒤에 숨어 좋아할 수 있지만, 코스프레와 팬페스티벌의 현장은 “나는 이 작품의 팬입니다”, “나는 이 캐릭터를 사랑합니다”를 얼굴과 몸으로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특히 코스어에게 캐릭터 복장을 입고, 같은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경험은 “나의 팬 정체성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통과의례”에 가깝습니다.
3) 팬덤의 ‘연례 행사’이자 ‘성지순례’
많은 팬에게 연 1회 열리는 대형 페스티벌, 특정 도시·전시장의 행사는 “올해도 빠지지 말고 가야 하는 곳”이 됩니다.
“작년 이 부스에서 사진 찍었지”, “우리 매년 여기서 같이 밥 먹잖아” 같은 말 속에는 “이곳에 오는 반복 자체가 우리의 팬질 인생을 기념하는 의례”라는 감각이 담겨 있습니다.
2. 누구에게, 무엇을 기념하는 자리인가
1) 코스어에게: ‘캐릭터와 나’를 동시에 기념하는 의식
코스어는 행사 당일 캐릭터의 복장, 표정과 포즈, 말투와 분위기를 재현합니다.
이때 사람들은 “캐릭터를 완벽하게 복제하는 것”보다 “나와 캐릭터가 어느 지점에서 겹치는지”를 스스로 확인합니다.
평소에는 소극적이지만 강렬한 캐릭터를 통해 다른 자아를 시험해 보기도 하고, 유머러스한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기도 합니다.
즉, 코스프레는 “캐릭터를 기념하는 동시에 그 캐릭터를 사랑하는 나 자신을 기념하는 행위”입니다.
2) 관람객·일반 팬에게: ‘같은 세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는 날’
모든 팬이 코스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행사장에 오는 것만으로도 “나는 집에서 혼자 보는 팬이 아니라 이런 사람들 사이에 어울리는 존재”라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같은 굿즈를 들고 있는 사람, 동일 커플링/캐릭터 배지, 줄 서 있는 동안 나누는 짧은 대화는 “나와 같은 세계를 좋아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안도감을 줍니다.
관람객에게 팬페스티벌은 “내 취향이 세상 속에서 차지하는 공간을 확인하는 기념일”입니다.
3) 주최 측에게: 브랜드·세계관·시장 자체를 기념하는 자리
출판사·게임사·플랫폼·행사 주최 측에게 코스프레·팬페스티벌은 자사 IP의 생명력을 확인하고, 팬덤 규모와 반응을 체감하며, 새로운 상품·서비스를 소개하는 중요한 비즈니스 이벤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몇 년째 이어지는 페스티벌의 연속성, 해마다 성장하는 관객 수, 해외/타지역 팬들의 방문은 “이 세계관이 얼마나 오래, 얼만큼 사랑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지표이기도 합니다.
주최 측은 행사 오프닝·기념 영상·역대 로고 전시 등으로 이 역사를 강조하며, 브랜드 자체를 기념하는 의례로 꾸밉니다.
3. 사진·영상·SNS가 만드는 집단 기억
1) “오늘 남긴 한 장면”이 곧 기념품
코스프레·팬페스티벌에서 스마트폰, DSLR,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빠질 수 없는 요소입니다.
완성한 코스프레 사진, 부스 앞 인증샷, 친구들과의 단체샷, 우연히 만난 같은 팬덤 친구와의 셀카는 모두 “오늘 내가 여기 있었다”는 증거이자 “이번 해를 기억하게 해주는 작은 기념물”입니다.
집에 돌아가 사진을 정리하고, SNS에 올리고, 친구와 공유하는 과정까지 포함해 축제는 비로소 ‘기념 경험’으로 완성됩니다.
2) 해시태그 타임라인이 만드는 ‘집단 앨범’
행사 이름·작품·캐릭터·커플링 이름으로 붙는 해시태그는 개인이 올린 사진과 글을 세계 곳곳의 팬들과 묶어 거대한 타임라인으로 만듭니다.
한 해시태그를 눌렀을 때 서로 다른 나라의 코스어, 다양한 체형·성별·나이의 팬, 다른 스타일의 해석이 한 화면에 펼쳐지면, 그 자체로 “이 작품/페스티벌을 기념하는 세계적인 앨범”이 됩니다.
3) ‘그때 거기 있던 사람들’이라는 느슨한 연대
몇 년이 지나 “2019년 ○○페스 갔을 때 사진”을 꺼내 보면서, “그때 같은 행사장에 있었던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느슨한 연대감이 생깁니다.
비록 서로 몰랐더라도 “그 날 그 공간에서 같은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팬들에게 “내가 사랑한 시간은 혼자가 아니었다”는 이상한 안심을 가져다 줍니다.
4. 코스프레·팬페스티벌 기념 문화의 그늘
1) ‘참여해야 진짜 팬’이라는 압박
페스티벌가 매년 커지는 것처럼 보일수록, 일부 팬은 “저기까지 갈 수 없는 나는 팬으로서 덜 진짜인 것 아닐까?” 하는 부족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경제적 여건, 거리와 건강, 시간과 돌봄 책임 등으로 현장에 갈 수 없는 팬들은 SNS 속 화려한 사진 홍수 속에서 소외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2) 외모·체형·성별 규범의 압력
코스프레는 캐릭터와 닮아야 한다, 마른 몸/작은 얼굴/특정 미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암묵적 시선이 강하게 작용하는 장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체형, 피부색, 나이, 성별 표현이 연출하려는 캐릭터와 다를수록 “코스프레를 해도 될까?”, “비난을 받지 않을까?”를 걱정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기념의 장이 “특정 기준을 통과한 사람만 당당히 설 수 있는 무대”가 되어 버리면, 원래 의도했던 포용과 즐거움은 사라지고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부담만이 남게 됩니다.
3) 상업화·줄 서기·피로의 축제
대형 팬페스티벌일수록 한정판 굿즈, 사인회·포토카드, 유명 코스어와의 사진 촬영 등 ‘줄 서기’와 ‘결제’가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이때 작품과의 교감, 다른 팬들과의 만남보다 “얼마나 많이 샀는지, 얼마나 레어한 것을 뽑았는지”가 기념의 기준이 되는 순간이 생깁니다.
그 결과 행사 후에는 “재밌었다”보다 “너무 힘들었다, 돈 많이 썼다”가 먼저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4) 팬덤 간 갈등과 선 넘는 행동
코스프레·팬페스티벌은 다양한 팬덤이 한 공간에 모이는 자리이기에, 특정 작품/커플링 비하, 코스어 몰래 촬영·무단 업로드, 신체 접촉 강요, 사진 촬영 예의 위반 등 기본적인 안전·인권 문제가 자주 제기됩니다.
기념의 장이 “서로의 애정을 존중하는 공공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를 소비하고 평가하는 시장”처럼 기능할 때, 페스티벌의 의미는 심각하게 훼손됩니다.
5. 더 건강한 팬 기념 문화를 위한 방향
1) ‘현장에 가지 못해도’ 참여할 수 있는 기념 설계
주최 측과 팬커뮤니티는 온라인 라이브, 온라인 포토 콘테스트, 해시태그 챌린지, 비대면 팬아트/팬픽 공모 등으로 “행사장에 없어도 함께 기념할 수 있는 방법”을 늘려 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팬덤을 “갈 수 있는 사람들만의 축제”에서 “어디서든 참여 가능한 공동 기념일”로 확장시키는 방법입니다.
2) 다양한 몸·표현을 환영하는 메시지 강화
공식 가이드·포스터·SNS에서 다양한 체형·성별·연령의 코스어 사진을 활용하고, ‘룩/성별 프리 코스’를 명시적으로 환영하며, 차별적 발언·행동에 대한 제재 방침을 분명히 밝히면, 더 많은 팬이 “나도 이 장에 설 수 있다”는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3) ‘돈 쓴 양’이 아닌 ‘경험의 질’을 중시하는 운영
한정판 판매·유료 이벤트도 필요하지만, 무료 체험 부스, 팬아트 전시, 팬미팅/토크, 팬들끼리 교류하는 공간 등 “돈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즐겁게 머무를 수 있는 요소”를 균형 있게 배치하면, 페스티벌은 “소비의 장”을 넘어 “기억을 쌓는 공공 축제”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4) 기본적인 안전·예의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
코스어 촬영 시 동의 구하기, 신체 접촉·포즈 강요 금지, 혐오 발언·촬영물 2차 유포 금지 등은 행사 안내와 현수막, SNS 공지를 통해 계속 반복해서 알려야 합니다.
이것이 지켜질 때 기념의 장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기는 기억”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한 즐거운 기억”으로 남습니다.
결론: 코스프레·팬페스티벌은 ‘팬이라는 삶을 확인하는 기념일’
코스프레와 팬페스티벌은 겉으로 보면 화려한 의상, 소리 지르는 무대, 굿즈 쇼핑과 사진 촬영의 축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나는 무엇을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사람인가”, “이 작품과 함께한 시간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싶으냐”라는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잘 설계된 페스티벌은 작품과 캐릭터, 팬과 팬, 팬과 자신을 다시 연결해 주는 기념 의례가 됩니다.
반대로 배제와 압박, 소비와 피로만 남는다면, 그 날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위해 가장 지치는 날”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코스프레·팬페스티벌이 앞으로도 더 다양한 몸과 취향을 환영하고, 현장에 있든 없든 팬 모두가 기념에 참여할 수 있으며, 상업성과 안전·존중의 가치를 균형 있게 지켜 나갈 때, 그 날은 단순한 행사 날짜가 아니라 “팬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시간을 함께 축하하는 진짜 기념일”로 남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