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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축제와 마을 기념일 만들기

주민자치 축제와 마을 기념일 만들기

최근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민자치 축제’와 ‘마을 기념일’을 만들려는 시도가 늘고 있습니다. 지방정부가 기획하는 일회성 행사 대신, 주민이 직접 의제를 정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그 결과로 매년 마을의 특별한 날을 만들어 가는 흐름입니다. 이 글에서는 ①주민자치 축제가 등장하게 된 배경, ②축제가 마을 기념일로 굳어지는 과정, ③주민자치 축제가 지역 공동체와 로컬 민주주의에 주는 의미, ④과도한 행사·상업화·갈등이라는 위험 요소, ⑤지속 가능한 ‘마을 기념일 만들기’ 전략을 살펴봅니다.

1. 왜 주민자치 축제가 주목받기 시작했나

1) ‘행정 행사’ 피로감과 주민주도 욕구의 충돌
오랫동안 지방 축제는 상부 계획에 따라 예산이 부여받고, 외부 기획사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주민은 손님이자 동원 대상에 머무는 구조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행삭 간 비슷한 프로그램, 형식적으로 보여주기식 행사, 실제 생활과 동떨어진 콘텐츠에 대해 지쳐갔습니다.

이와 동시에 마을만의 색깔을 담은 이야기를 직접 다루고 싶은 주민들의 욕구가 커지면서, “이제는 우리가 직접 우리 동네 축제를 만들어보자”라는 흐름이 주민자치 축제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2) 마을공동체 사업·주민자치회 확대의 영향
주민자치회, 마을계획단, 마을공동체 사업 등으로 주민총회, 마을의 날, 우리동네 어울림축제 등과 같은 이름의 시도가 늘어나면서, ‘축제’가 “행사가 아니라 마을계획을 공유하고, 함께 결정하는 커뮤니티의 공간”으로도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3) 인구 감소·지역소멸 시대의 정체성 찾기
많은 지역에서 청년 유출, 고령화, 상권 침체로 “이대로 가다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커졌습니다.

이때 주민자치 축제는 “우리 마을은 아직 살아 있고, 함께 모여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집단적 확인과 선언의 자리가 됩니다.

2. 축제가 ‘마을 기념일’이 되어가는 과정

1) “올해 한 번”에서 “매년 이 날”로
처음에는 특정 사업 결과 보고, 마을만들기 프로젝트 마무리, 주민자치회 출범 등 어떤 계기로 한 번 열었던 축제가, "내년에도 이때쯤 또 하자”, “이제 이 날을 우리 마을 축제날로 정하자”라는 합의를 거치며 지속 기념일로 자리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2) 날짜·장소·이름에 ‘이야기’를 입히기
마을 기념일로 굳어지려면 왜 이 날짜인지, 왜 이 장소인지, 왜 이 이름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하천 정비를 주민이 함께 시작한 날을 기념하는 ‘우리강의 날’, 폐교를 마을공간으로 되살린 날을 기념하는 ‘OO학교 돌아온 날’, 주민투표로 마을계획을 통과시킨 날을 기념하는 ‘우리동네 약속의 날’ 등입니다.

이렇게 되면 축제 날짜는 “그냥 놀기 좋은 계절의 아무 날”이 아니라 “마을이 선택을 했던 역사적 순간을 기념하는 날”이 됩니다.

3) 의례·형식의 반복이 만드는 ‘마을의 리듬’
매년 같은 시기에 주민총회 + 축제, 마을상 시상(올해의 이웃상, 마을지킴이상 등), 동네 만찬, 기념 퍼포먼스(나무 심기, 강물 정화, 마을 행진 등)가 반복되면, 주민들의 머릿속에는 “이 시기만 되면 다 같이 모여 지난 1년을 돌아보고 다음 1년을 약속하는” 리듬이 새겨집니다.

이 리듬이 바로 마을 기념일 문화의 핵심입니다.

3. 주민자치 축제가 마을에 주는 의미

1) 주민이 마을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무대
주민자치 축제의 가장 큰 특징은 동네 상인, 학교, 동아리, 청소년·어르신, 이주민, 장애인 단체까지 가급적 다양한 주체가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고 무대와 부스를 채운다는 점입니다.

외부 연예인·전문 공연보다 마을 주민의 참여 비중이 높을수록, “이 축제는 우리가 주인공인 자리”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이는 곧 “이 마을은 행정이 아닌 주민이 주인이다”라는 자치 감각으로 이어집니다.

2) 세대·집단을 잇는 교량 역할
주민자치 축제에서는 학교 공연, 청소년 부스, 어르신 동아리 발표, 다문화 음식 나눔 등 서로 잘 만나지 못했던 그룹들이 한 공간에서 어울릴 수 있습니다.

같은 무대에 초등학생 댄스팀과 노인회 합창단이 서는 장면은 “이 마을이 한 세대의 것이 아니라 여러 세대가 함께 나누는 공간”이라는 메시지를 눈앞에 보여줍니다.

3) 지역경제·로컬브랜딩과의 연결
축제에서는 자연스럽게 로컬푸드, 동네 공방, 사회적 경제 조직, 마을기업이 자신의 상품과 서비스를 선보입니다.

이때 단순 판매를 넘어 ‘OO마을에서 생산’, ‘OO강 살리기 기금 후원’, ‘청년창업 부스’ 등 마을 정체성과 연결된 브랜드 스토리가 함께 소개되면, 축제는 “동네 장터”를 넘어 “마을 브랜드를 알리는 날”로 확장됩니다.

4) 주민 참여 민주주의의 학습장
주민자치 축제와 마을 기념일은 종종 주민총회, 설문조사, 공개 토론, 마을계획 설명회와 묶여 열립니다.

즉, “재밌게 놀면서 동시에 우리 동네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선거 때만 정치에 참여하는 구조를 넘어 “연중 한 번은 마을일을 같이 논의하는 날”을 만드는 민주주의 의례의 성격도 갖습니다.

4. 주민자치 축제의 부담과 위험 요소

1) 소수 활동가에게 쏠리는 과로
기획·홍보·예산·섭외·진행을 늘 같은 사람들(주민자치회 핵심, 마을활동가)이 도맡게 되면, 행사 직전 번아웃, 가족·생계와의 갈등, “다시는 안 하겠다”는 회의감이 쌓입니다.

이럴 때 축제와 기념일은 “마을의 축복”이 아니라 “몇 사람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의무행사”로 변질됩니다.

2) 대표성·배제 문제
마을 안에서도 목소리가 큰 집단, 행정과 가까운 단체가 축제 기획을 독점하면, 청소년, 이주민, 장애인, 소수 집단은 이름만 ‘주민자치’인 행사에서 실질적으로 배제될 수 있습니다.

축제가 끝난 뒤 “저건 저 사람들끼리 하는 행사지, 우리 마을 축제는 아니다”라는 냉소가 퍼지면, 마을 기념일은 공공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3) 상업화·관광 중심으로 기우는 위험
마을 브랜드가 알려지면서 외부 관광객 유치, 기업 스폰서, 대형 푸드트럭·마켓이 증가하면, 정작 주민은 교통·소음·쓰레기 부담을 떠안고, 경제적 이득은 외부로 빠져나가는 전형적인 ‘축제 피로’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주민자치 축제는 “마을 기념일”이 아니라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벤트”로 전락하게 됩니다.

4) 매년 반복되는 형식의 피로감
해를 거듭하며 늘 같은 무대, 같은 부스, 같은 진행 방식이 반복되면, 주민에게는 “또 그 행사네”라는 권태가 찾아옵니다.

기념일은 반복성이 중요하지만, 내용의 업데이트 없이는 의미가 퇴색하기 쉽습니다.

5. 지속 가능한 ‘마을 기념일 만들기’ 전략

1) “누가, 왜, 어떤 권한으로” 기획하는지부터 투명하게
주민자치 축제와 마을 기념일은 처음부터 추진 주체, 의사결정 구조, 예산 출처와 사용 계획을 공개하고 논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기획단 공개 모집, 정기 회의 기록 공개, 예산·정산 결과 주민 공유 등을 통해 “소수가 정한 날이 아니라 모두가 알 수 있는 구조에서 만들어진 기념일”임을 보장해야 합니다.

2) ‘축제’와 ‘회의’를 한데 묶는 구성
단순 공연·부스 중심 축제만이 아니라 주민총회, 마을의제 발표, 다음 해 계획 투표 등을 기념일 프로그램에 결합하면, 이 날은 “마을이 내부를 돌아보고, 앞으로를 결정하는 민주주의의 날”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참여의 의미가 단순한 관람을 넘어 결정 과정 참여로 확장됩니다.

3) 세대·집단별 ‘자기 프로그램’ 보장하기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메인 무대 외에도, 어린이 놀이·체험 구역, 청소년이 직접 기획한 무대·부스, 어르신이 편히 머무를 공간과 프로그램, 이주민·소수자 그룹의 문화 공유 공간 등을 의도적으로 배치하면, “각 집단이 주인으로 설 수 있는 장”이 동시에 여러 개 생깁니다.

이는 축제를 “특정 연령·계층의 잔치”가 아니라 “여러 삶이 나란히 서는 장”으로 만듭니다.

4) 규모보다 ‘마을의 속도’에 맞추기
부담을 갖고 해가 갈수록 더 크게, 더 화려하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준비 인력과 예산, 주민 피로도, 마을의 현실을 고려해 적정 규모를 설정하고, “올해는 조금 줄이고, 내실을 다지는 해로 하자”라는것도 주민간 합의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기념일은 “매년 무언가를 더해야만 유지되는 행사”가 아니라 “마을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지속되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5) 기록과 아카이브를 통한 ‘마을 역사화’
축제·기념일을 사진, 영상, 주민 인터뷰, 회의록, 포스터·현수막 디자인 등으로 꾸준히 기록해두면, 몇 년 뒤 “우리 마을이 어떤 선택과 변화를 거쳐왔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작은 역사 자료가 됩니다.

이 아카이브는 새로 이사 온 주민, 청소년, 행정 담당자에게 “이 기념일이 그냥 만든 행사가 아니라 오랜 논의와 참여의 결과”임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원이 됩니다.

결론: 주민자치 축제와 마을 기념일은 ‘우리 동네 민주주의의 생일’

주민자치 축제와 마을 기념일은 겉으로 보면 노래와 춤이 있고, 먹거리와 체험 부스가 있는 평범한 동네잔치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 동네를 누가, 어떻게 꾸려갈 것인가”, “우리는 어떤 순간을 함께 기억하기로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흐르고 있습니다.

마을 기념일을 만든다는 것은 결국 “이날만큼은 우리 각자와 이 마을 사이의 관계를 한 번 더 생각해보자”는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주민자치 축제가 몇몇 사람의 과로와 책임감 위에 서 있는 의무행사가 아니라, 다양한 주민이 조금씩 나눠서 만든, 마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께 묻는 공적 의례로 자리 잡을 때, 그 날은 단순한 ‘축제날’을 넘어 “우리 동네 민주주의의 생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