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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브랜드와 기념행사 수출 전략
최근 국가 경쟁력 논의에서는 GDP·군사력·외교력 못지않게 ‘국가 브랜드’가 중요한 지표로 거론됩니다. 외교, 문화, 관광, 수출까지 하나의 이미지와 서사로 묶어내는 국가 브랜드는, 잘 설계될 경우 장기적인 신뢰와 호감을 가져오는 자산이 됩니다. 이때 국가가 전략적으로 주목하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기념행사’입니다. 특정 역사적 사건, 독립·혁명, 문화유산, 스포츠, 예술을 기념하는 국가 차원의 행사들은, 이미 국내에서 한 번 검증된 포맷이기 때문에 해외로 수출하기 좋은 콘텐츠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①국가 브랜드와 기념행사의 관계, ②기념행사 수출이 가능한 유형과 방식, ③실질적인 수출 전략(포맷화, 파트너십, 디지털 확장), ④문화적·정치적 리스크, ⑤지속 가능한 ‘기념행사 수출’ 모델을 위한 방향을 정리해 봅니다.
1. 국가 브랜드와 기념행사: 왜 연결되는가
1) 국가 브랜드의 핵심은 ‘어떤 나라처럼 보이고 싶은가’
국가 브랜드는 단순한 관광 슬로건이 아니라, 이 나라가 무엇을 중시하고, 어떤 가치를 대표하며, 세계 속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자 하는지에 대한 장기적인 이미지 전략입니다. 예를 들어 ‘첨단 기술’과 ‘혁신’을 내세우는 국가, ‘평화’와 ‘중재자’ 이미지를 강조하는 국가, ‘전통문화’와 ‘예술’을 전면에 내세우는 국가 등 브랜드 방향에 따라 활용하는 기념행사도 달라집니다.
2) 기념행사는 국가 브랜드의 ‘무대’
국가 차원의 기념식·기념축제는 상징, 의례, 연설, 공연, 미디어 중계가 집중적으로 결합되는 장면입니다. 이 무대에서 국기, 국가, 퍼레이드, 전통의상, 예술 공연, 대통령·국왕·총리의 메시지, 청소년·시민·이민자·소수자 참여 여부 등이 한 번에 드러나기 때문에, 기념행사는 국가 브랜드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쇼케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3) 한 번 만들어진 포맷은 반복·확장하기 쉽다
성공적인 국가 기념행사는 매년 비슷한 구조로 반복되며 운영 매뉴얼과 연출 노하우가 축적됩니다. 이 포맷을 국제 버전, 도시 버전, 청소년 버전 등으로 변주하면 다른 국가·도시에 적용할 수 있는 ‘수출 가능한 기념행사 상품’으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2. 어떤 기념행사가 ‘수출 가능한 콘텐츠’가 되는가
1) 문화·예술 중심 기념축제
영화제, 음악제, 무용·연극 페스티벌, 디자인·건축 비엔날레 등은 이미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도시와 국가의 브랜드를 알리는 대표 수단이 되었습니다. 이런 행사들은 특정 국가의 미학과 감수성을 보여주면서도 세계 예술계와의 교류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해외 도시와 공동 개최, 순회 프로그램 형태로 수출되기 좋습니다.
2) 역사·독립·혁명 기념행사
독립기념일, 혁명기념일, 해방기념일 등은 기본적으로 국내 정치와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지만, 동시에 ‘식민주의 극복’,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 같은 보편적 가치와 연결될 때 국제사회에 공유할 수 있는 서사가 됩니다. 예를 들어 ‘민주화 기념제’를 세계 인권·민주주의 네트워크와 연계해 국제 컨퍼런스·청년 포럼 형태로 확장하는 방식 등이 가능합니다.
3) 스포츠·청년·과학 관련 기념행사
국제 마라톤, 청소년 스포츠 대회, 청년·스타트업·과학자를 기리는 기념주간 등은 비교적 정치성 논란이 적고 협력 파트너를 찾기도 쉽습니다. 이런 행사는 개최 노하우, 경기 운영 시스템, 자원봉사·시민 참여 모델, 개·폐회식 공연 포맷 등과 묶어 ‘패키지형 수출’이 가능합니다.
4) 전통 의례·무형문화유산 기념행사
왕실 의례 재현, 전통 혼례·성년식, 농경의례, 종교적·민속적 축제는 그 나라만의 고유한 색을 보여줄 수 있는 자산입니다. 다만 그대로 옮기기보다는 공연·전시·체험 프로그램으로 재구성해 해외 도시에서 열리는 ‘문화주간’이나 국제 박람회 부대행사로 수출하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3. 기념행사 수출 전략 1: ‘포맷’과 ‘스토리’를 상품화하기
1) 핵심은 “형식 + 이야기”
기념행사는 일정(며칠 동안), 구성(퍼레이드, 식전·식후 공연, 회의, 체험 프로그램, 전시 등), 상징(로고, 슬로건, 색채, 의상), 메시지(연설, 선언문, 캠페인)로 이루어집니다. 수출 전략에서는 ① 이 형식(포맷)을 시간표 · 세부 프로그램 · 운영 매뉴얼로 정리하고, ② 그 안에 담긴 이야기(스토리)를 번역 가능한 가치 언어로 바꾸는 것이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독립기념제”를 “식민주의·독재를 겪은 나라들이 함께 기억하는 인권·자결·평화 기념 포럼”으로 재언어화할 수 있습니다.
2) 모듈형 구성으로 변환하기
기념행사를 그대로 통째로 옮기기보다는, 개막식 포맷, 청년 포럼, 거리 퍼레이드, 기념음악회, 추모 의식, 체험부스 등 ‘모듈 단위’로 쪼개어 상대 국가·도시에 맞게 조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기후·규모·예산·문화적 상황이 다른 국가들도 자신들의 조건에 맞게 도입할 수 있습니다.
3) 국가 브랜드 메시지와의 정렬
수출하려는 포맷은 그 나라가 장기적으로 추진하는 국가 브랜드와 방향이 맞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평화 중재자’ 이미지를 강조하고 싶다면 갈등 지역 청년 초청, 종교 간 대화 세션, 평화 예술 프로젝트를 포함한 기념행사 포맷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혁신 국가’를 내세운다면 기념행사 대부분을 메타버스, 라이브 스트리밍, 인터랙티브 아트, 스마트 시티 체험 등과 결합하는 방식이 전략적입니다.
4. 기념행사 수출 전략 2: 파트너십과 디지털 확장
1) 도시-도시, 기관-기관 파트너십
국가 차원의 MOU뿐 아니라 도시와 도시(자매도시, 문화도시 네트워크), 박물관·미술관·대학·연구소, 예술단체·축제조직 간의 직접 파트너십을 통해 기념행사 포맷을 공유·공동 개최하는 모델이 유효합니다. 예를 들어 한 나라의 ‘평화 기념 음악제’를 다른 지역의 전쟁·분쟁 기억공간과 연계해 공동 공연·워크숍 형태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2) 민간·다자기구와의 연계
국제기구(UN, UNESCO, WHO 등)의 공식 기념일과 연동하면 특정 국가 기념행사를 보다 넓은 글로벌 의제 안에 위치시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 문화다양성의 날, 인권의 날, 평화의 날, 세계 환경의 날 등과 자국 기념행사의 메시지를 묶어 국제 컨퍼런스·캠페인과 함께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3) 디지털 중계와 하이브리드 포맷
기념행사 수출은 반드시 ‘현지에서 똑같이 개최’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실시간 중계 다국어 서비스, 유튜브·SNS 라이브, 온라인 참가형 의식(온라인 묵념, 디지털 촛불, 해시태그 캠페인), VR/AR로 경험하는 기념관·퍼레이드 등은 물리적 이동 없이도 국가 브랜드와 기념 포맷을 전파하는 수단입니다. 이때 단순 영상 중계를 넘어 참여형 요소(댓글 낭독, 실시간 메시지 벽, 온라인 상징물 설치)를 넣으면 ‘함께 기념한다’는 감각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4) 교육·연구 프로그램과의 결합
기념행사와 함께 학술회의, 청년 아카데미, 워크숍,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꾸준히 운영하면 행사는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국가 이미지와 가치가 깊이 있게 이해되는 장기 프로그램이 됩니다. 이는 기념행사를 ‘관광 상품’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고 국가 브랜드의 신뢰성을 높이는 전략입니다.
5. 기념행사 수출 시 주의해야 할 리스크
1) 정치적 메시지의 오해와 갈등
역사·영토·이념이 걸린 기념행사는 다른 국가에게는 민감한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특정 기념일의 서사가 다른 국가의 역사 인식과 충돌할 경우, 기념행사 수출이 외교 갈등의 촉매가 될 위험도 있습니다. 따라서 국제 수출용 포맷에서는 자국 내부의 정치적 쟁점보다 보다 보편적인 인권·평화·연대 가치에 무게 중심을 옮길 필요가 있습니다.
2) 문화 전유와 이미지 왜곡
전통 의례·민속 축제를 수출할 때 상업성·관광성을 위해 과도하게 단순화·이국화하면 ‘진짜 문화’와의 괴리가 커집니다. 이는 자국 시민·원주민·소수자에게는 문화 전유로 비칠 수 있고, 해외 관객에게는 사실과 다른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습니다.
3) 환경·노동·지역사회 부담
메가 이벤트형 기념행사는 대규모 건설·관광·이동을 동반하며 환경 부담과 지역사회 피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국가 브랜드를 위해 ‘깨끗한 이미지’를 강조하면서도, 실제 행사 운영에서 쓰레기·소음·과로·지역 교통 마비 문제가 발생하면 브랜드 신뢰는 오히려 깎입니다.
4) 브랜드 피로와 진정성 논란
기념행사 수출을 지나치게 마케팅 도구로만 사용할 경우 “홍보용 쇼케이스”, “이미지 관리용 행사”라는 회의적 시선을 부르게 됩니다. 특히 실제 국내 정책·사회 현실과 기념행사 메시지가 다를 때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비판이 커질 수 있습니다.
6. 지속 가능한 기념행사 수출 모델을 위한 방향
1) ‘국가 중심’에서 ‘공동 기획’으로
수출 전략은 “우리 행사를 그대로 가져가 주세요”가 아니라 “공통의 의제를 중심으로, 서로의 경험과 형식을 합쳐 새 행사를 만들어 보자”라는 공동 기획 방식으로 전환될 때 지속 가능성이 커집니다.
2) 현지 맥락을 존중하는 커스터마이징
같은 포맷이라도 개최국의 역사·종교·문화·정치 상황을 고려해 규모와 상징, 참여 구성, 메시지를 유연하게 조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종교적으로 민감한 상징 대신 음악·예술·청년 교류를 중심에 두는 버전, 거리 퍼레이드 대신 실내 공연과 토론 중심 버전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3) 장기 파트너십과 평가 시스템
한 번 수출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매년·격년으로 프로그램을 조정·보완하는 구조를 가진 파트너십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관객·참가자·지역사회 평가, 환경·경제·문화적 영향 분석을 정기적으로 수행하고 그 결과를 다음 기획에 반영하는 투명한 시스템이 중요합니다.
4) 시민·청년의 실질적 참여 보장
국가 브랜드 전략이 정부와 전문가 중심으로만 설계될 때보다, 현지 청년·예술가·시민단체가 프로그램 구성과 실행에 참여할 때 기념행사는 생동감과 설득력을 가지게 됩니다. 이는 단기 홍보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맺는 진정한 공공외교의 기반이 됩니다.
결론: ‘행사’가 아니라 ‘기억과 가치’를 수출하는 것
국가 브랜드와 기념행사 수출 전략의 핵심은 결국 이런 질문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와 무엇을 함께 기억하고 싶은가? 그 기억을 통해 어떤 미래 가치를 나누고 싶은가? 기념행사는 무대와 의전, 공연과 퍼레이드의 집합이 아니라, 한 나라가 중요하게 여기는 기억과 가치를 형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수출해야 하는 것은 행사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약속입니다. 자국 시민에게도 의미 있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공감과 대화를 불러오는 기념행사라면, 그 포맷과 경험을 나누는 일은 국가 브랜드를 위한 전략이자, 함께 더 나은 기억 문화를 만들어 가는 국제적 협력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