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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추모관 UI/UX와 참여 양상
장례식장, 묘지, 위령탑 같은 오프라인 공간을 대신해, 웹사이트나 앱 형식으로 만들어진 ‘온라인 추모관’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국가적 참사, 대형 재난, 사회적 사건은 물론이고, 가족·지인·반려동물, 유명인까지 디지털 공간 안에 추모 페이지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그곳에 글과 사진, 영상을 남기며 기억을 이어 갑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단순히 페이지가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추모의 감정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참여를 이끌어 내는 UI/UX 설계입니다. 이 글에서는 ①온라인 추모관의 기본 구조와 특징, ②UI 디자인 요소(정보 구조·시각 요소·기능 요소), ③UX 관점에서 본 애도 경험 설계, ④실제 참여 양상과 이용 패턴, ⑤윤리·프라이버시·상업화 문제와 향후 과제를 살펴봅니다.
1. 온라인 추모관이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
1) 디지털 공간에 세운 ‘기억의 방’
온라인 추모관은 특정 개인, 집단,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웹·앱 상에 마련한 디지털 기념 공간입니다. 여기서 사용자는 추모 글을 남기고, 사진·영상·음성 기록을 올리고, 다른 사람들의 메시지와 반응을 읽으며 애도의 시간을 보냅니다.
2)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는 추모 방식
먼 지역, 해외, 이동이 어려운 사람들도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접속할 수 있습니다. 특히 대형 재난의 경우 추모공간이 한 도시에만 있을 때 전국·해외 유가족·시민이 접근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온라인 공간이 어느 정도 보완해 줍니다.
3) ‘기록’과 ‘참여’를 동시에 담는 장치
오프라인 추모비가 주로 이름과 날짜를 새기는 공간이라면, 온라인 추모관은 생전의 사진·영상, 생존자·유가족의 증언, 시민들의 글과 그림, 관련 기사·보고서가 계속 덧붙여지는 확장형 기록 공간입니다. 추모의 대상이 ‘기억되어야 할 이유’와 함께 지속적으로 아카이브 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2. 온라인 추모관 UI의 핵심 요소들
온라인 추모관의 UI는 일반 포털이나 커뮤니티와는 다른 감수성을 필요로 합니다.
1) 첫 화면: 조용하지만 분명한 목적 제시
첫 화면에서 “누구를 위한, 어떤 사건을 위한 추모관인지” 간결하고 명확하게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동시에 과도한 광고, 화려한 애니메이션, 번쩍이는 색상은 배제하고 차분한 톤의 색상(흰색, 회색, 짙은 남색, 낮은 채도의 초록 등)과 여백을 넉넉히 두는 구성이 선호됩니다.
2) 정보 구조: ‘찾기 쉬운 이름’과 ‘시간의 흐름’
기본적으로는 이름/단체명 검색, 사건·날짜·지역별 필터가 중요합니다. 특정 인물·사건 페이지에 들어가면 상단에 이름·간단한 소개, 그 아래에 타임라인(생애, 사건 전후, 이후 활동), 추모글 목록, 사진/영상 앨범 같은 구조를 두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3) 추모 입력 UI: 부담을 줄이는 간단한 폼
이름 공개/익명 선택, 간단한 한 줄 메시지 또는 긴 글, 이모티콘·이미지 첨부 여부 등을 최대한 이해하기 쉬운 단계로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글쓰기 창 주변에 “혐오·비하 표현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유가족을 향한 공격적 내용은 금지됩니다” 같은 가이드 문구를 배치해 공간의 성격을 분명히 하는 것도 UI의 일부입니다.
4) 상징적 인터랙션: ‘촛불’, ‘꽃’, ‘리본’ 등
실제로 많은 추모관은 클릭하면 촛불이 하나 더 켜지거나, 국화꽃·리본 아이콘이 하나씩 쌓이는 인터랙션을 제공해 사용자가 작은 의례 행동을 하도록 돕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능을 과장하지 않고 조용한 애니메이션·미세한 효과 정도로 제한해 감정을 방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5) 접근성: 고대비, 큰 글자, 모바일 최적화
추모관은 고령층 유가족, 시력이 좋지 않은 사용자도 많이 이용합니다. 따라서 작은 글씨, 복잡한 레이아웃, 터치하기 어려운 작은 버튼은 실제 이용을 크게 떨어뜨립니다. 반응형 웹·앱에서 “스크롤 한 번에 핵심 기능이 눈에 들어오는 구조”가 추모 환경에 특히 중요합니다.
3. UX 관점에서 본 온라인 애도 경험 설계
단순한 화면 디자인을 넘어서, UX는 “이곳에서 사용자가 어떤 감정의 여정을 걷게 될지”를 다룹니다.
1) 진입 전 안내와 ‘심리적 안전감’
추모관 입장 전에 “여기는 이런 공간이며, 이런 규칙을 지킵니다”를 짧게 안내하는 것은 사용자에게 이곳이 ‘안전한 공간’임을 알리는 과정입니다. 특히 충격적인 사진이나 내용이 포함된 경우 사전 경고(콘텐츠 경고, CW)를 명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 애도 행동의 단계 설계
대략 이런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 첫 방문: 조용히 둘러보고 읽기만 함
- 둘째 방문: 촛불·꽃 같은 가벼운 의례 클릭
- 그 이후: 짧은 문장, 긴 글, 사진 공유 등 참여 수준을 조금씩 높여 가는 구조
UX 설계자는 처음부터 긴 글을 강요하기보다 “가볍게 참여할 수 있는 행동”을 먼저 제안하는 편이 좋습니다.
3)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장치
추모글이 쌓이는 순서를 그대로 보여주면 사건 직후의 분노·충격에서 시간이 흐르며 생기는 슬픔·담담함·다짐의 변화가 하나의 서사처럼 드러납니다. ‘연도별’, ‘주요 기일별’ 필터를 제공하면 사용자는 “우리가 매년 이 날에 무엇을 느꼈는지”를 되짚어 볼 수 있습니다.
4) 알림과 리마인더의 균형
기일, 사건 발생일, 특정 선언일에 맞추어 메일·푸시로 알림을 보내는 기능은 기억을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되지만, 과도한 푸시는 유가족·생존자에게 상처를 반복 상기시키는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선택 가능한 알림(수신 여부·빈도 조절)을 UX 설계에 포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5) 댓글·상호작용의 관리 경험
추모글에 댓글·공감 버튼을 열어 두면 지지와 위로가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모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악성 댓글, 정치적 공방, 조롱이 섞일 위험도 있습니다. UX 차원에서 신고 버튼, 모욕·혐오 표현 자동 필터, 운영자 노출·블라인드 정책을 분명히 제시해야 사용자가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습니다.
4. 온라인 추모관에서 나타나는 참여 양상
실제 온라인 추모관에서는 시간에 따라, 사용자 유형에 따라 참여 양상이 꽤 다르게 나타납니다.
1) 사건 직후: 폭발적 참여와 감정의 홍수
대형 재난·사고 직후에는 짧은 애도 문장, 분노·원망, “미안하다”, “기억하겠다”는 감정적 메시지가 폭발적으로 쌓입니다. 이 시기에는 추모관이 “감정을 내려놓는 긴급 대피소” 같은 역할을 합니다.
2) 시간이 지나며: 장문의 회상과 분석 등장
몇 달, 몇 년이 지나면 단문 메시지 비중이 줄고 장문의 회고, 제도 비판, 이후의 삶 변화에 대한 기록이 늘어납니다. 특히 유가족·생존자, 관련 활동가들은 “그 사건 이후 지금까지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정리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3) 사용자 유형별 참여 패턴
- 유가족·직접적 관계자: 상대적으로 적은 횟수이지만 길고 밀도 높은 글을 남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정 날(생일, 기일, 명절, 사건 발생일)에 맞춰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패턴이 두드러집니다.
- 일반 시민·공감자: 사건 직후·주요 기념일에 집중적으로 몰리며 짧은 위로·다짐 문장을 주로 남깁니다. 관련 사회 이슈가 뉴스에 다시 등장할 때 추모관을 재방문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 ‘방문만 하는’ 관찰자(라커): 글을 쓰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러 주기적으로 오는 사용자도 많습니다. 이들의 경험도 추모·기억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통계로 드러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4) 기념일·재판·정책 변화와의 연동
주요 재판 선고, 진상조사 결과 발표, 관련 법·제도 제정/폐기 시점에는 추모글과 함께 분노·안도·허탈 등의 감정이 크게 출렁입니다. 이때 추모관은 단순 애도를 넘어 “사회적 변화 과정의 기록장” 역할도 수행합니다.
5) 타 플랫폼과의 교차 참여
추모관에 남겨진 글이나 이미지가 캡처되어 SNS로 공유되거나, 기사·블로그·영상에서 인용되며 다른 플랫폼에서도 재확산됩니다. 반대로 SNS 해시태그 캠페인, 유튜브 추모영상 설명란 링크를 통해 추모관으로 유입되는 경로도 형성됩니다.
5. 윤리, 프라이버시, 상업화 문제와 향후 과제
1) 익명성과 2차 가해
익명 참여가 쉬운 온라인 공간에서는 혐오 발언, 책임 전가, 정치적 공격이 추모글에 섞일 위험이 큽니다. UI/UX에서 실명 강요는 피하되, 신고·차단·필터링·운영자 개입 경로를 눈에 잘 띄게 배치해야 합니다.
2) 프라이버시와 동의
사진·영상·실명·관계 정보가 올라오는 만큼 당사자·유가족의 동의 여부, 민감한 정보 노출 수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합니다. 특히 미성년자·사망 당시 미보도 피해자 등은 더욱 엄격한 보호가 요구됩니다.
3) 영구 보관 vs 삭제 권한
추모관을 “영원히 남기겠다”고 약속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 서비스 지속 가능성, 서버 비용, 도메인 유지 문제 등이 뒤따릅니다. 동시에 유가족이 원할 경우 일부 글·사진·페이지를 삭제하거나 비공개로 돌릴 수 있는 권리 보장 장치도 필요합니다.
4) 기부·후원·광고와의 결합
일부 온라인 추모관은 관련 단체 후원 버튼을 달거나 기념 재단 모금을 연동합니다. 의도가 선하더라도 과도한 배너, 상업 광고, 추모 대상과 무관한 상품 광고는 공간의 신뢰를 심각하게 떨어뜨립니다. UI/UX에서 광고와 추모 콘텐츠의 경계를 물리적으로·시각적으로 선명히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5) 다국어·다문화 환경에 대한 고려
대형 재난·국제적 사건의 추모관은 여러 언어 사용자들이 찾아옵니다. 다국어 지원, 문화에 따라 다른 애도 표현 방식을 존중하는 아이콘·문구 설계가 앞으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결론: UI/UX가 만드는 ‘조용하지만 열린 추모의 장’
온라인 추모관의 UI/UX는 단순히 예쁜 화면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슬픔이 너무 외롭게 방치되지 않도록, 누군가의 분노가 타인을 향한 공격으로 흐르지 않도록, 한 사회가 기억해야 할 사건과 사람이 천천히, 오래 이야기될 수 있도록 감정과 기술 사이의 균형을 잡는 작업입니다.
좋은 온라인 추모관은 복잡하지 않지만, 필요한 안내와 보호 장치가 잘 깔려 있고, 누구나 부담 없이 들어와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조용한 디지털 광장에 가깝습니다.
앞으로 온라인 추모관의 UI/UX를 설계할 때, 우리가 계속 고민해야 할 질문은 이것일 것입니다. “이 화면이, 이 버튼이, 이 문장이 정말로 누군가의 기억과 슬픔을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받아주고 있는가?” 이 질문을 놓치지 않을 때, 온라인 추모관은 기술적 서비스가 아니라 진짜 의미 있는 공적 기억 공간으로 오랫동안 기능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