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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재난 피해지역 추모·저항 기념식
폭우와 홍수, 초대형 산불, 기록적인 폭염과 한파, 해수면 상승과 침수로 집과 마을을 잃은 사람들은 이제 전 세계 곳곳에 존재합니다. 이 재난은 더 이상 ‘예측불가한 자연의 분노’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기후위기와 밀접하게 연결된 사건으로 읽히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피해지역 주민과 시민사회는 단순한 위령제나 복구 기원제를 넘어, 책임을 묻고 체제를 바꾸자고 외치는 ‘추모·저항 기념식’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①기후 재난 피해지역 추모·저항 기념식이 등장한 배경, ②추모와 저항이 결합된 의례 형식, ③지역 공동체와 정치·사회 운동의 접점, ④예술·청년·디지털 플랫폼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기념 방식, ⑤이 의례를 둘러싼 논쟁과 한계, ⑥기후 정의를 향한 기억의 전략으로서 앞으로의 과제를 살펴봅니다.
1. 기후 재난, ‘자연재해’에서 ‘사회적 재난’으로
기후위기가 심화되면서 같은 강도·규모의 비와 태풍이라도 피해는 특정 지역과 계층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입니다. 저지대, 비공식 거주지, 노후 주거, 산비탈·하천변·해안가에 밀집한 가난한 이들의 삶터가 가장 먼저, 가장 큰 피해를 입습니다.
이때 기후 재난 피해지역의 추모·저항 기념식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1) ‘불가항력적 자연재해’라는 말에 대한 문제제기
“운이 나빠서”, “전례 없는 폭우라서”가 아니라, 도시계획, 개발 규제 완화, 삼림 훼손, 하천 직강화, 방재 예산 삭감 등 인간의 선택이 피해 규모를 키웠음을 드러냅니다.
2) 기후위기를 ‘온실가스 수치’가 아닌 ‘사람의 얼굴’로 되돌리기
피해자의 이름, 가족 구성, 일상, 사라진 마을과 풍경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순간 추상적인 1.5℃, 2℃ 목표는 몸을 가진 사람들의 삶의 문제로 재해석됩니다.
3) ‘기후 정의’라는 관점을 공유하는 계기
누가 더 많이 배출하고, 누가 거의 배출하지 않았는데도 더 큰 피해를 떠안는지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됩니다.
2. 추모와 저항이 결합된 의례 형식
기후 재난 피해지역의 기념식은 조용한 위령제와는 다른, ‘추모+저항’이 함께 있는 의례입니다.
1) 희생자 이름 부르기와 침묵의 시간
폭우·홍수·산불 등으로 희생된 이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고, 모두가 함께 묵념하는 시간은 “이 죽음을 숫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기억하겠다”는 약속입니다.
2) 현장 중심의 추모 공간 조성
붕괴된 제방, 침수된 마을 입구, 탄 나무가 서 있는 산자락에 꽃, 국화, 촛불, 사진, 손편지, 노란 리본 등이 놓입니다. 이 장소는 동시에 ‘재난의 증거’이자 ‘정책 실패의 현장’으로 기억됩니다.
3) 행진·피켓·구호가 결합된 저항 의례
추모 후 참가자들은 시청·국회·기업 본사 등으로 행진하며 기후 정책 전환, 개발계획 재검토, 책임자 사과와 대책을 요구합니다. “잊지 않겠다”는 문구 옆에는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구체적 요구가 적힙니다.
4) 증언과 고발의 시간
생존자와 유가족, 지역 주민이 재난 당시 상황, 구조가 닿지 않았던 시간, 사전 경고·대비의 부족, 복구 과정에서의 불평등을 증언합니다. 이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제도·정책에 대한 ‘공개 증언’ 기능을 합니다.
5) 기후 과학자·전문가의 발언
일부 기념식에서는 기후 과학자, 도시계획·재난 전문가가 이 재난이 기후위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추모는 동시에 ‘학습의 현장’이 됩니다.
3. 지역 공동체와 기후 운동의 만남
기후 재난 피해지역의 기념식은 지역 공동체의 애도와 전국·세계적 기후운동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1) 전통 제의의 변형과 결합
제사·위령제, 천도제, 종교 의식 등 지역에 존재하던 추모 형식에 “기후위기”, “개발 정책”, “국가 책임”이라는 언어가 더해집니다. 조용한 제사만이 아니라 발언·행진·성명 발표가 이어지며 전통 의례가 ‘저항 의례’로 변주됩니다.
2) 피해 주민 조직과 기후단체의 연대
수해·산불 피해 대책위원회, 주민 모임과 기후·환경 NGO, 청년 기후단체가 함께 기념식을 준비하고 메시지를 만듭니다. 주민에게는 자신의 경험을 ‘기후위기’ 언어로 말해 볼 기회가 되고, 기후단체에게는 추상적인 기후 행동을 구체적인 지역 문제와 연결할 기회가 됩니다.
3) 국제 연대의 상징적 퍼포먼스
해외의 다른 피해지역과 같은 날, 같은 문구의 배너와 촛불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기후 재난 피해자 간 국제 연대’가 표현되기도 합니다.
4. 예술·청년·디지털이 만든 새로운 기념 방식
최근 기후 재난 추모·저항 기념식에서는 예술적 표현과 청년, 디지털 플랫폼의 역할이 두드러집니다.
1) 기후 애도 퍼포먼스와 설치미술
잠긴 집 모양의 설치물, 타버린 나무를 형상화한 조형, 구명조끼·장화·삽·양동이 등 재난 이미지를 활용한 작업은 말보다 강렬한 기억을 남깁니다. 퍼포먼스로 바닥에 함께 드러눕는 다이인, 물을 들고 천천히 옮기는 행위, 흙을 손에 쥐고 흘려보내는 장면 등이 활용됩니다.
2) 청년·학생 중심의 기념 집회
학교·대학·청년단체는 “기후 재난 피해지역과 함께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추모 집회, 토론회, 온라인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기념식에서 청년들은 “기후위기의 가장 긴 시간대를 살아갈 세대”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웁니다.
3) 해시태그 추모·온라인 제단
특정 재난의 이름, 피해지역 이름을 딴 해시태그로 추모 메시지와 사진이 공유되고, 온라인 추모 페이지, 디지털 지도 위에 피해 지점·증언·사진·영상이 축적되며 ‘기후 재난 기억 아카이브’가 만들어집니다.
4) 음악·영상·웹툰·팟캐스트 등 다양한 매체 활용
피해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 다큐멘터리 영상, 웹툰·에세이, 팟캐스트 인터뷰는 기념식을 넘어 긴 호흡의 기억 작업으로 이어집니다.
5. 기후 재난 추모·저항 기념식을 둘러싼 논쟁과 한계
이러한 기념식은 의미가 크지만, 동시에 여러 갈등과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1) ‘정치화됐다’는 비난 vs ‘정치 없이는 재발 방지도 없다’는 주장
어떤 이들은 “애도 자리에서 시위·정책 요구를 하는 것은 과하다”고 말하고, 다른 이들은 “원인과 책임을 말하지 않는 추모야말로 진짜 문제를 피하는 것”이라고 반박합니다.
2) 피해지역 주민 내부의 온도 차
“조용히 기억하고 싶다”는 사람과 “크게 외쳐야 바뀐다”는 사람이 한 마을 안에 공존합니다. 외부 기후단체의 방식이 일부 주민에게는 “우리의 슬픔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습니다.
3) 감정 소진·트라우마 재현의 문제
반복되는 기념식과 증언 속에서 유가족·생존자는 자신의 상처를 수차례 꺼내야 하는 감정 노동을 감당해야 합니다. 행사 기획 시 당사자의 참여 여부와 발언 범위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심리적 지원을 병행하는 세심함이 필요합니다.
4) ‘기억’과 ‘실질적 정책 변화’의 간극
매년 비슷한 추모·저항 행사가 열리지만 방재 예산, 도시계획, 에너지 전환 속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 간극을 줄이는 것이 앞으로의 가장 큰 과제입니다.
6. 결론: 기후 정의를 향한 기억의 전략으로
기후 재난 피해지역 추모·저항 기념식은 단순히 과거의 비극을 애도하는 행사가 아니라, 누가 더 많이 위험에 노출되는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어떤 방식의 개발과 에너지 체제가 바뀌어야 하는지 묻는 기후 정의의 의례입니다.
이 기념식이 더 큰 힘을 가지려면
1. 피해지역 주민·유가족·기후과학자·활동가가 함께 설계하는 구조를 만들고,
2. 추모 발언과 더불어 구체적인 정책·제도 요구, 에너지 전환·도시계획·방재체계 개선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며,
3. 매년 같은 날 “지난 1년 동안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공개적으로 점검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기후 재난 피해지역의 추모·저항 기념식은 “재난이 반복되는 세상에서 슬픔을 나누는 자리”를 넘어, “더 이상 같은 재난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사회가 함께 약속하는 시작점”으로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