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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평화운동 기념일의 역사




“평화”는 인류 보편의 가치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세계가 평화를 위해 특별한 기념일을 만들고 기억하기 시작한 역사는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특히 20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과 냉전, 핵무기 경쟁을 거치면서 평화운동은 “전쟁을 막기 위한 정치적 행동”뿐 아니라, 이를 기억하고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기념문화를 함께 발전시켜 왔습니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희생자 추모일, 전쟁 종전일, 유엔이 제정한 국제 평화의 날과 비폭력의 날, 핵실험 반대 기념일까지, 오늘날 달력 곳곳에는 평화를 기억하기 위한 날들이 적혀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①전쟁 경험이 만든 평화 기념일의 뿌리, ②냉전과 핵 위협 속에서 생겨난 국제 평화 기념일, ③유엔(UN)이 제정한 대표적인 평화 관련 기념일, ④시민사회·종교가 만들어 온 비공식 평화 기념문화, ⑤세계 평화운동 기념일이 오늘날 갖는 의미와 과제를 살펴봅니다.

1. 세계대전 경험이 낳은 초기 평화 기념일

세계 평화운동 기념일의 역사를 보려면 먼저 1차·2차 세계대전을 떠올려야 합니다.

1) 1차 세계대전과 휴전 기념일
1914~1918년 이어진 1차 세계대전은 유럽 각국에 전례 없는 참호전, 대량 살상을 남겼습니다. 1918년 11월 11일 휴전협정이 체결되자, 많은 나라에서 이 날을 “휴전 기념일”, “참전용사 추모일”로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전사자를 추모하는 성격이 강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다시는 이런 전쟁을 반복하지 말자”는 평화적 의미가 덧붙여졌습니다.

2) 2차 세계대전 종전과 반파시즘 기념일
1939~1945년 2차 세계대전은 홀로코스트, 민간인 대량학살, 도시 폭격 등 더 잔혹한 폭력의 역사를 남겼습니다. 유럽·러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전쟁 종전일을 “승전 기념일”이자 “파시즘에 대한 승리”로 기념하면서, 전쟁 피해와 평화의 가치를 함께 이야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군사적 승리의 서사반전·평화 서사가 뒤섞여 있어, 오늘날에도 어떤 면을 강조할 것인지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3)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와 반핵 평화운동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사건은 “핵무기 사용이 인류 전체에 어떤 위협이 되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전후 일본과 세계 시민사회는 이 날들을 희생자 추모일이자 핵무기 폐기와 전쟁 반대를 요구하는 평화 기념일로 기억해 왔습니다. 이때부터 “전쟁의 끝”뿐만 아니라 “특정 무기의 비인도성을 고발하는 기념일”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2. 냉전과 핵무기 경쟁 속 ‘세계 평화’ 기념일의 등장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곧바로 냉전 체제로 접어들며, 직접적인 세계대전은 피했지만 핵무기 개발 경쟁과 지역 전쟁이 이어졌습니다.

1) 반핵·반전 운동과 평화 시위
1950~60년대, 영국·미국·일본·독일 등지에서는 핵무기 폐기를 요구하는 대규모 행진과 캠페인이 열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활절 행진, 특정 핵실험 날짜를 기억하는 행동, 반전 음악 페스티벌 같은 비공식 평화 기념일이 자연스럽게 생겨났습니다.

2) 베트남 전쟁과 세계 반전데이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학생운동·지식인·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세계 반전 행동의 날”을 정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시위·집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한 나라의 전쟁에 전 세계 시민이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국제 연대형 평화 기념일의 전통을 남겼습니다.

냉전기 평화 기념일들은 아직 공식적인 법정 기념일이라기보다, 시민사회가 자발적으로 만들고 기억하는 운동의 날에 가까웠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3. 유엔이 제정한 공식 ‘세계 평화의 날’의 탄생

국제기구 차원에서 평화를 위한 기념일을 제도화한 대표적 사례가 바로 유엔(UN)의 국제 평화의 날입니다.

1) 유엔 총회와 국제 평화의 날
1980년대 초, 유엔 총회는 “전 세계가 동시에 평화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상징적 날”의 필요성을 논의했고, 이후 9월 21일을 국제 평화의 날(International Day of Peace)로 선포했습니다. 이 날에는 전쟁 중인 당사국들에게 휴전·폭력 중단을 촉구하고, 평화 교육, 갈등 해결, 인권, 난민 문제 등을 주제로 다양한 행사와 토론이 진행됩니다.

2) 기타 평화 관련 유엔 기념일
평화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유엔 기념일로는 다음과 같은 날들이 있습니다.

  • 국제 비폭력의 날 – 비폭력 사상과 행동을 기념하며, 갈등 해결 방식으로서 비폭력 운동의 중요성을 알리는 날
  • 핵 실험에 반대하는 국제의 날, 핵무기 전면 폐기를 위한 국제의 날 – 핵무기의 실험·보유·사용이 인류와 지구에 미치는 위협을 상기시키는 날
  • 홀로코스트 추모의 날, 노예제 폐지 관련 기념일 등 – 폭력과 억압의 역사에서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기념일

이처럼 유엔이 제정한 평화 관련 기념일은 개별 국가와 시민운동의 요구를 국제적 언어로 번역해 “전 세계가 함께 기억하는 날”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4. 시민사회·종교가 만들어 온 비공식 평화 기념문화

공식 기념일만이 세계 평화운동 기념일의 전부는 아닙니다. 각종 시민사회·종교·NGO가 만들어 온 비공식 기념문화도 매우 중요합니다.

1) 종교 전통 속 평화 기도와 금식의 날
여러 종교에서는 전쟁 희생자를 위한 기도의 날, 화해와 용서를 상징하는 금식의 날을 정해 평화를 기원해 왔습니다. 특정 분쟁 지역을 위한 국제 연대 기도일, 종교 간 공동 평화 기도회 등은 공식 기념일은 아니지만 꾸준히 반복되는 종교적 평화 기념의례입니다.

2) NGO·평화단체의 캠페인 데이
국제앰네스티, 국제적십자, 반핵단체, 난민 지원단체 등은 특정 사건의 발발일이나 종전일을 기억하며 서명운동, 캠페인, 거리행동을 매년 반복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학살 사건의 기념일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자”는 “다시는(Never Again)” 운동의 상징일이 되기도 합니다.

3) 지역 공동체의 평화축제
전쟁·폭력의 경험이 있는 도시들은 평화음악제, 청소년 평화캠프, 다문화 화합 축제 등을 특정 기념일에 맞춰 개최하면서 지역 차원의 평화 기념문화를 쌓아 왔습니다.

이러한 비공식 기념문화는 “국제기구가 정해 준 날” 이상으로 사람들의 감정과 일상에 깊게 스며드는 평화 기념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오늘날 세계 평화운동 기념일이 갖는 의미와 과제

오늘날 세계 평화운동 기념일은 전쟁과 폭력이 여전히 계속되는 현실 속에서 몇 가지 중요한 역할과 함께, 분명한 한계도 드러냅니다.

1) 의미
· 기억과 교육의 장 – 전쟁·학살·핵폭력의 구체적 사례를 기억하게 하고, 평화·인권·난민·군축 교육의 계기를 제공합니다.
· 연대의 상징 – 서로 다른 나라와 문화의 사람들이 같은 날에 같은 구호를 외치며 “우리는 폭력에 반대한다”는 의지를 공유하게 합니다.
· 정책 압박의 수단 – 기념일을 전후해 군축 협상, 평화회담, 난민 보호, 인도적 지원 요구가 집중적으로 제기될 수 있습니다.

2) 한계와 과제
· 형식화·행사화 – 평화의 날 기념식이 정치 지도자의 연설, 상징적 비둘기 날리기, 꽃다발 전달 정도로 끝나면 실제 분쟁과 군비 경쟁은 계속되는 모순이 생깁니다.
· 불평등한 시선 – 어떤 전쟁과 희생은 크게 기념되고, 다른 지역의 분쟁과 고통은 잘 다뤄지지 않는 ‘선택적 평화’의 문제가 존재합니다.
· 구체적 행동과의 연결 부족 – 기념일에 맞춰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군비 확대, 무기 수출, 난민·이주민 배제 정책이 동시에 이어진다면 평화 기념일은 상징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세계 평화운동 기념일은 “한 번의 행사를 잘 치르는 것”이 아니라 “그날 이후 1년 동안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함께 점검하는 구조로 발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 달력 위의 ‘평화 약속’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 것인가

세계 평화운동 기념일의 역사는 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인류가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온 과정이자, 그 다짐을 날짜와 의례, 기념행사 형태로 구체화해 온 역사입니다.

휴전일·종전일·원폭 투하일·학살 추모일, 유엔의 국제 평화의 날과 비폭력의 날, 시민단체와 종교 공동체가 만든 다양한 평화 기념일들은 각기 다른 맥락을 갖고 있지만, 모두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됩니다.

“우리는 어떤 폭력과 죽음을 기억하고, 그 기억으로 무엇을 바꾸려 하는가?”

세계 평화운동 기념일을 진정한 의미에서 활용하려면, 특정 국가의 승리 서사를 넘어 모든 희생자의 관점에서 전쟁을 기억하고, 분쟁의 피해자·난민·소수자의 목소리를 기념식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며, 군축·난민 보호·갈등 예방·평화교육 같은 구체적 정책과 실천을 기념일과 연결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달력 위의 평화 기념일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폭력과 전쟁의 역사를 넘어서려는 인류의 집단적 약속을 되새기는 날”로 살아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