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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행사와 도시브랜딩의 연결




도시마다 꼭 한 번쯤은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축제의 도시, 역사와 추모의 도시, 예술과 디자인의 도시처럼 말입니다. 이때 관광 광고나 슬로건만으로 만들어지는 도시 이미지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실제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도시에서 경험한 구체적인 시간과 장면, 즉 축제·추모식·퍼레이드·문화제 같은 기념행사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도시들은 단순한 ‘행사 개최’를 넘어, 기념행사를 전략적으로 설계해 도시브랜딩의 핵심 도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①도시브랜딩이란 무엇인가, ②기념행사가 도시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 ③역사 기념·축제·메가이벤트 유형별 특징, ④주민 참여와 스토리텔링의 중요성, ⑤상업화와 기억 왜곡이라는 위험, ⑥지속 가능한 도시브랜딩을 위한 방향을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1. 도시브랜딩과 기념행사: 왜 서로를 필요로 하는가

먼저 도시브랜딩은 단순한 관광 마케팅이 아니라, 이 도시는 어떤 가치와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누구에게 어떤 경험을 약속하는지를 장기적으로 설계하는 전략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멋진 슬로건과 로고를 만들어도, 사람들이 실제로 그 도시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지 못하면 브랜드는 금방 잊혀집니다.

여기에서 기념행사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첫째, 기념행사는 브랜드를 ‘시간 속 경험’으로 바꿔 줍니다. 기념행사는 특정 날짜에 열리는 축제, 퍼레이드, 추모식, 문화제, 스포츠·예술 이벤트 등으로, 도시브랜드가 말하는 가치를 음악, 음식, 거리 조형물,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눈앞에 펼쳐 보이는 장치가 됩니다.

둘째, 기념행사는 도시 정체성을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의례입니다. 매년 같은 시기에 열리는 기념행사는 “이 도시는 이런 도시다”라는 메시지를 시민과 방문객에게 반복 학습시킵니다. 도시브랜딩에서 말하는 가치가 일회성 캠페인이 아니라 ‘관습이 된 기억’으로 굳어지는 과정입니다.

셋째, 기념행사는 외부와 내부를 동시에 설득하는 도구입니다. 도시브랜딩의 대상은 관광객·투자자 같은 외부만이 아니라,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주민 자신이기도 합니다. 기념행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어떤 곳인지” 주민이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며, 도시브랜드를 안팎으로 설득하는 이중 역할을 수행합니다.

결국 도시브랜딩과 기념행사는 하나는 ‘이야기’를 만들고, 하나는 그 이야기를 ‘행사와 장면’으로 구현하는 서로에게 꼭 필요한 한 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역사 기념행사: 기억과 브랜드가 만나는 지점

많은 도시가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행사를 브랜딩의 핵심 자원으로 활용합니다.

첫째,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브랜드 언어로 번역합니다. 혁명, 독립, 봉기, 시민항쟁, 재난 극복 등은 그 도시만의 드라마틱한 서사를 제공합니다. 이를 기념하는 퍼레이드·추모식·전시·재현행사는 도시가 스스로를 “자유의 도시”, “저항의 도시”, “화해와 평화의 도시”로 규정하는 근거가 됩니다.

둘째, 추모와 축제가 섞이는 복합 감정이 나타납니다. 역사 기념행사는 엄숙한 추모식과 시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적 요소가 함께 섞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도시브랜딩의 관건은 비극과 상처를 단순 소비 대상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시민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형식을 만드는 것입니다.

셋째, 도시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과거를 잊지 않는 도시”라는 이미지는 인권·민주주의·평화 같은 가치를 중시하는 도시브랜드와 연결됩니다. 반대로, 깊이 없는 상업화나 특정 정치 세력 중심의 역사 해석만 강조할 경우, 도시 브랜드는 신뢰성을 잃고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역사 기념행사는 도시가 어떤 과거를 선택해 기억하고, 그 기억을 어떤 미래의 가치와 연결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브랜드의 핵심 무대라 할 수 있습니다.

3. 축제·문화행사: 도시브랜딩의 가장 눈에 띄는 얼굴

도시브랜딩에서 가장 직관적인 도구는 역시 축제와 문화행사입니다.

첫째, 축제는 도시의 ‘대표 이미지’를 만듭니다. 영화제, 음악 축제, 비엔날레, 불꽃축제, 거리예술제, 미식축제 등은 도시 이름과 함께 기억되며, “○○하면 △△축제”라는 공식이 만들어집니다. 이런 대표 축제는 도시브랜드의 상징이자 관광·투자·창작자 유입을 촉진하는 계기가 됩니다.

둘째, 축제는 지역 고유 자원을 브랜드로 바꾸는 과정입니다. 특정 도시의 음식, 전통공예, 자연환경, 산업(와인·커피·디자인 등)을 기념·축제화하면 그 자원이 곧 도시브랜드의 핵심 키워드가 됩니다. “커피의 도시”, “재즈의 도시”, “디자인의 도시” 같은 이미지는 모두 축제·문화행사를 통해 강화되고 재생산됩니다.

셋째, 축제는 ‘사는 사람’과 ‘오는 사람’을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축제가 도시브랜딩에 성공하려면 외부 관광객만이 아니라 시민에게도 즐겁고 의미 있는 경험이어야 합니다. 교통체증, 소음, 임대료 급등, 상업적 과잉이 심해지면 주민은 도시브랜드를 ‘남 좋은 일’로 느끼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도시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줍니다.

결국 문화축제는 도시의 개성과 매력을 표현하는 동시에,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과도 긴밀히 연결되는 기념행사입니다.

4. 메가이벤트와 도시브랜딩: 기회와 부담

올림픽, 엑스포, 월드컵, 국제박람회 같은 메가이벤트 역시 대표적인 도시브랜딩 수단입니다.

첫째, 메가이벤트는 단기간에 세계의 주목을 받는 효과가 있습니다. 개최 도시는 짧은 기간 동안 전 세계 미디어와 관광객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습니다. 이것은 도시 인프라 투자, 이미지 개선, 새로운 슬로건과 디자인 도입 등 대규모 브랜딩을 한꺼번에 진행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둘째, 메가이벤트는 기념행사와 도시 공간의 재구성을 가져옵니다. 개·폐막식, 기념 공연, 거리축제, 국가 간 교류행사 등은 도시의 광장·하천·공원·역사 공간을 ‘브랜드 무대’로 변신시킵니다. 이때 만들어진 상징물(조형물, 경기장, 공원, 브랜드 슬로건 등)은 메가이벤트 이후에도 기념행사와 도시브랜드의 자산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셋째, 메가이벤트에는 부담과 논쟁도 동반됩니다. 막대한 예산, 시설 사후 활용 문제, 지역 주민의 생활권 침해, 개발 과정에서의 환경·문화유산 훼손 등은 메가이벤트와 함께 따라오는 논쟁거리입니다. 기념행사가 끝난 뒤 빚과 빈 경기장, 주민의 피로만 남는다면 도시브랜드는 오히려 손상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메가이벤트는 “한 번의 화려한 기념행사”가 아니라 “그 이후 도시의 일상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미리 설계해야만 진정한 브랜딩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5. 스토리텔링과 주민 참여: 브랜드를 ‘자기 이야기’로 만드는 힘

기념행사가 도시브랜딩에 실제로 힘을 발휘하려면 스토리텔링과 주민 참여가 핵심입니다.

첫째, 이야기가 없는 행사는 금방 잊힙니다. 단순히 유명 가수를 부르고, 불꽃놀이와 퍼레이드만 반복하는 행사는 도시를 어디로 가든 비슷하게 느끼게 만듭니다. 반대로 도시의 역사, 장소, 사람들의 일상을 엮은 스토리, 특정 인물·장소·사건에 얽힌 서사를 담은 프로그램은 방문객에게 “이 도시만의 경험”으로 남습니다.

둘째, 주민이 ‘관객’이 아니라 ‘주인공’이 될 때 브랜드는 살아납니다. 자원봉사, 시민 퍼레이드, 동네 예술가·상인의 참여, 청소년·노인·이주민이 함께 만드는 프로그램 등은 도시브랜드를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드는 것”으로 느끼게 합니다. 주민이 직접 설계·운영에 참여할수록 도시브랜딩은 정책 문서가 아니라 생활 문화로 자리잡습니다.

셋째, 일상과 연결되는 작은 기념행사의 힘도 중요합니다. 거대한 축제뿐 아니라, 동네 골목 축제, 마을의 날, 시민 기념 걷기대회, 지역 예술가 오픈스튜디오, 로컬마켓 같은 작은 행사도 도시브랜드의 촘촘한 결을 형성합니다. 이런 작은 기념행사는 “살기 좋은 도시”, “공동체가 살아 있는 도시”라는 이미지와 맞닿아 있습니다.

결국 스토리와 참여가 있을 때, 기념행사는 도시브랜드를 “슬로건”이 아니라 “사람들의 자기 이야기”로 바꾸는 역할을 합니다.

6. 상업화와 기억 왜곡: 도시브랜딩이 안고 있는 위험

기념행사와 도시브랜딩의 결합에는 위험과 부작용도 존재합니다.

첫째, 기념이 ‘상품’으로만 소비될 때 문제가 됩니다. 기념행사가 굿즈 판매, 테마 상업시설, 관광상품에만 초점을 맞추면 원래의 의미는 희미해지고 소비 이벤트로만 기억될 수 있습니다. 특히 추모·인권·역사 성찰이 중요한 기념행사의 경우 과도한 상업화는 도시브랜드의 진정성을 훼손합니다.

둘째, 특정 서사만 강조하는 기억의 편향도 위험합니다. 도시브랜딩을 위해 특정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에 맞는 역사 서사만 부각시키고, 불편한 과거(폭력, 차별, 개발 피해 등)는 지우려 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럴 경우 기념행사는 누군가에게는 자부심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워진 기억과 상처를 상기시키는 공간이 됩니다.

셋째, 도시 격차와 관광 피로도 문제입니다. 인기 있는 기념행사가 몰려 있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곳의 개발 격차, 임대료 상승, 관광 공해 문제가 커질 수 있습니다. 주민의 삶이 지나치게 희생된다면 “멋진 도시”라는 브랜드와 “살기 불편한 도시”라는 현실 사이의 괴리가 커집니다.

도시브랜딩이 진정성을 유지하려면 기념행사가 누구를 위해, 어떤 기억과 가치를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과 논쟁이 필요합니다.

결론: 기억을 설계하는 도시, 브랜드를 넘어 관계로

정리해 보면, 기념행사와 도시브랜딩의 연결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도시브랜딩은 도시가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할지에 대한 이야기 설계이고, 기념행사는 그 이야기를 구체적인 시간·장소·경험으로 만드는 기억의 장치입니다.

축제·추모식·메가이벤트·마을잔치까지, 이 모든 기념행사는 도시의 과거를 선택해 기억하고, 현재의 주민을 연결하며, 미래의 방문객과 관계를 맺는 일종의 도시의 언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기념행사와 도시브랜딩이 단순한 관광객 유치나 소비 촉진을 넘어, 도시의 상처와 갈등까지 정직하게 다루고, 다양한 주민의 목소리를 담아내며, 지속 가능한 공간과 관계를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그 도시는 “가보고 싶은 도시”를 넘어 “살고 싶고, 함께 기억을 만들고 싶은 도시”로 브랜딩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