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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추모문화의 변화




사람이 죽음을 어떻게 기억하고 애도하는지는 그 사회의 가치관과 시대 흐름을 가장 섬세하게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과거에는 가족·마을·종교 공동체 안에서 진행되는 장례와 제사가 추모의 중심이었다면, 오늘날의 추모문화는 국가 행사, 팬덤 문화, 디지털 추모, 국제 연대까지 매우 다층적인 모습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①전통적 추모문화의 공통 요소, ②20세기 전쟁과 국가 중심 추모의 등장, ③개인화·다양화되는 현대 추모문화, ④디지털 시대의 온라인 추모와 기록, ⑤팬데믹과 글로벌 동시 추모 경험, ⑥상업화·피로감 사이에서 앞으로의 과제를 중심으로 글로벌 추모문화의 변화를 살펴봅니다.

1. 전통 사회의 추모: 공동체와 종교가 중심이던 시대

오랜 세월 동안 추모는 주로 가족·마을·종교 공동체의 영역이었습니다.

많은 문화권에서 장례는 시신을 씻기고 수의를 입히는 의식, 상복을 입고 곡을 하는 시간, 일정 기간 동안의 제사·제례 등 비교적 정해진 규칙에 따라 치러졌습니다. 이 과정은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을 처리하는 절차가 아니라, 살아 있는 가족과 공동체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집단적 심리 의식이었습니다.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요소도 있습니다.

첫째, 죽은 이를 안전하게 보내기입니다. 매장·화장·수장 등 형태는 달라도 “죽은 이가 편안히 떠나도록 돕는다”는 의미가 강했습니다.

둘째, 산 자의 삶의 질서를 지키기입니다. 금기와 규범(상복 기간, 행동 제한 등)을 통해 슬픔을 통제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거치게 했습니다.

셋째, 종교적 믿음과 결합된 의례입니다. 많은 추모 의식은 내세, 조상 숭배, 윤회, 천국·지옥 등에 대한 믿음과 연관되어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상상과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추모문화는 “누가 죽었는가”보다 “우리가 누구인가”를 되묻는 공동체 확인의 의례성이 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20세기: 전쟁과 국가가 만든 대규모 추모문화

20세기로 들어오면서, 특히 두 차례 세계대전은 추모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첫째, 국가 중심의 보훈·추모 기념일입니다. 전쟁 희생자가 수백만 명에 이르면서, 각국은 전몰 장병과 민간인을 위한 국립묘지, 추모비, 기념일을 제정했습니다. 국기 게양, 묵념, 군악대, 헌화, 국가원수의 연설이 결합된 의식은 전통 장례와는 다른, 국가 의전으로서의 추모 형식을 만들어 냈습니다.

둘째, 침묵과 집단 묵념이라는 상징입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확산된 “정해진 시각에 모두가 1~2분간 침묵하는 의례”는 오늘날까지도 가장 보편적인 공적 추모 형식 중 하나입니다. 이 침묵은 종교를 초월한 표현 방식으로,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같은 공간·같은 시간에 애도에 참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셋째, 기념비와 도시 공간의 변화입니다. 전쟁·학살·독립투쟁을 기억하는 기념비와 추모공원은 도시 경관과 사람들의 동선 속에 “일상의 추모 공간”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는 추모를 가정과 종교시설의 영역에서 도시 전체·국가 전체의 공적 공간으로 확장시킨 변화였습니다.

이 시기부터 “추모는 국가 정체성과도 깊이 연결되는 행위”라는 인식이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개인화·다양화되는 현대의 추모문화

최근 수십 년간 추모문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개인화·다양화입니다.

첫째, 형식보다 ‘고인다움’을 중시하는 장례입니다. 과거에는 종교·지역 전통에 따라 거의 비슷한 장례 형식을 따랐다면, 지금은 고인이 좋아하던 음악을 틀고, 평소 입던 옷이나 상징물을 배치하며, 추모영상·사진 슬라이드쇼를 상영하는 등 “그 사람다운 이별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둘째, 소규모·비공식 추모의 증가입니다. 거창한 의식보다 가까운 사람끼리 모여 식사하며 추억을 나누거나, 고인이 좋아하던 장소를 함께 방문하는 등 비공식·비종교적 추모 방식이 늘고 있습니다.

셋째, 애완동물·유산·관계에 대한 추모 확장입니다. 반려동물 장례, 유산·사산 추모, 관계의 상실(이별·이혼)에 대한 상징적 추모 등, 예전에는 공적 추모의 대상이 아니던 영역이 점점 더 공식적인 언어와 의례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추모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하나의 정답 대신, 각자의 가치관과 관계를 반영하는 맞춤형 추모가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4. 디지털 시대: 온라인 추모와 ‘지워지지 않는 기록’

디지털 기술과 SNS의 확산은 추모문화를 가장 극적으로 바꿔 놓은 요소 중 하나입니다.

첫째, 온라인 부고·조문과 영상 중계입니다. 장례식장에 직접 오기 어려운 친척과 지인을 위해 온라인 부고 페이지, 화환·조의금 온라인 접수, 장례식·추모식 실시간 스트리밍이 점점 더 흔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둘째, SNS 애도와 해시태그 추모입니다. 유명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 관련 해시태그를 단 글과 사진이 전 세계 타임라인을 뒤덮습니다. 개인적인 관계가 없었던 사람까지도 자신의 기억, 감상, 영향을 기록하면서 “디지털 분향소”가 형성됩니다.

셋째, 온라인 추모관과 디지털 유산입니다. 사고·재난·테러 등 대형 사건이 발생하면 온라인 추모관, 웹페이지, SNS 계정이 장기적인 추모 공간이 됩니다. 사진·영상·메시지가 계속 축적되면서 현실 공간의 기념비 못지않은 디지털 기념물로 기능하게 됩니다.

넷째, 기록의 영속성과 사생활의 경계입니다. 한편, 이런 디지털 추모문화는 기록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족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원치 않는 재노출·가십화·댓글 공격 등 새로운 상처를 낳기도 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추모는 “함께 애도하기 쉬워진 시대”이자 “기억과 망각의 경계 관리가 더 어려워진 시대”라는 양면성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5. 팬덤·대중문화와 글로벌 추모

글로벌 대중문화의 확산은 팬덤 중심 추모문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첫째, 전 세계 팬이 동시에 애도하는 현상입니다. 가수·배우·감독·운동선수 등 유명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 여러 나라 도시에서 동시에 자발적인 헌화, 촛불 모임, 추모 공연·상영회가 열립니다. 이때 국적·언어·종교가 달라도 같은 곡, 같은 명대사, 같은 유니폼과 상징물을 매개로 공감과 애도가 연결됩니다.

둘째, 팬덤의 ‘기념 프로젝트’입니다. 팬들은 고인의 생일이나 기일에 맞춰 기부 캠페인, 나눔 행사, 환경·인권 프로젝트 등을 벌이며 “고인이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를 이어가려 합니다. 이는 추모를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과 사회적 영향으로 확장시키는 움직임입니다.

셋째, 대중문화 콘텐츠를 통한 재기억입니다. 다큐멘터리, 회고전, 헌정 공연, 리메이크 앨범, 재개봉 등은 고인의 작품과 메시지를 다시 현재로 불러오는 역할을 합니다. 팬들에게 추모는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관계”이자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문화 경험이 됩니다.

이러한 흐름은 추모가 더 이상 지역·혈연에만 묶여 있지 않고, 취향과 감동을 매개로 한 글로벌 감정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6. 팬데믹과 글로벌 동시 추모 경험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의 추모문화를 동시에 흔든 사건이었습니다.

첫째, 대면 장례·추모의 제한입니다. 병원 면회·장례식 인원·국경 이동이 제한되면서 많은 가족이 고인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지 못한 채 이별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제대로 작별하지 못했다”는 상실감이 전 세계적으로 공유되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둘째, 비대면·온라인 추모 의례의 급속한 확산입니다. 영상 통화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거나, 온라인 추모 예배·미사, 줌(화상회의)을 통한 추모 모임이 갑자기 일상적인 장면이 되었습니다.

셋째, 국가·도시 단위의 동시 추모입니다. 팬데믹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특정 시각에 일제히 묵념, 건물 조명 소등, 종·사이렌·박수 치기(의료진 감사) 등 공동 의례가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같은 재난 속에 있다”는 지구적 동시성의 추모 경험을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팬데믹은 비극이었지만, 동시에 추모의 방식이 얼마나 빠르게 바뀔 수 있는지, 그리고 전 세계가 어떻게 동시에 애도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사례이기도 합니다.

7. 상업화와 피로감, 그 사이에서의 과제

글로벌 추모문화의 확장은 여러 과제도 남기고 있습니다.

첫째, 추모의 상업화입니다. 각종 기념 굿즈, 광고, 이벤트가 추모와 결합할 때, 진정성과 상업성의 경계가 흔들리기도 합니다. 기업·정치 세력이 추모 열기를 이미지 개선에만 이용한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둘째, 애도 피로와 감정 소모입니다. 재난·사고·폭력 사건이 잦고, 그때마다 SNS와 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비극과 추모의 장면들은 많은 사람에게 감정적 피로를 줍니다. 때로는 “무언가를 애도해야 한다”는 압박과 죄책감이 또 다른 심리적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셋째, 기억과 망각의 균형입니다. 모든 비극을 영원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어떤 사건과 이름을 어떻게 기록하고 교육하며, 얼마나 자주, 어떤 방식으로 다시 불러낼 것인가는 앞으로도 계속 논쟁이 이어질 주제입니다.

넷째, 포용적 추모를 향한 질문입니다. 누구의 죽음은 크게 조명되고, 누구의 죽음은 쉽게 잊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글로벌 추모문화가 국적·인종·계급·성별·성적지향·장애를 넘어 더 포용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누가 기억될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다시 던져야 합니다.

결론: 추모는 ‘같이 기억할 방법을 찾는 일’로 변화하고 있다

정리해 보면, 글로벌 추모문화는 전통 사회의 가족·종교 중심 장례를 출발점으로, 전쟁과 국가가 만든 대규모 공공 추모를 거쳐, 개인화·다양화·디지털화·글로벌화를 향해 빠르게 변화해 왔습니다.

오늘날 추모는 특정 종교나 의식에만 속한 행위가 아니라, 온라인과 오프라인, 로컬과 글로벌, 사적 관계와 공적 사건을 넘나들며 새로운 형식을 계속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결국 추모의 핵심은 “잊지 않기 위해 함께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각 시대·각 사회의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상업화와 피로 속에서도 진정성 있는 애도와 기록을 지키고, 더 많은 피해자와 약자의 이름을 기억하며, 추모가 단지 과거를 향한 감정 표현에 머무르지 않고 폭력·차별·재난을 줄여 나가는 현재의 실천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글로벌 추모문화는 슬픔을 나누는 도구를 넘어, 더 안전하고 공정한 세계를 상상하고 만드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