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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학 작품 속 기념의식

세계 문학 작품을 찬찬히 읽어 보면, 놀라울 만큼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결혼식, 장례식, 제사, 기념식, 추모제, 축제 같은 기념의식입니다. 작가들은 인물들이 밥을 먹거나 출퇴근하는 평범한 날보다, 모두가 모여 과거를 떠올리고 누군가를 축하하거나 애도하는 특별한 날에 인물을 배치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기념의식은 한 사회의 가치와 갈등, 기억과 망각이 가장 짙게 드러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세계 문학 작품 속 기념의식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는지, ①가족·공동체 의례, ②국가와 역사 기념식, ③종교적 축일과 의례, ④개인적 기억의 의식이라는 네 가지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1. 문학과 기념의식: 극적인 시간이 되는 이유

기념의식은 대개 정해진 날짜와 정해진 장소, 정해진 형식을 가진 반복적 행위입니다.

문학에서 이런 장면이 자주 쓰이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첫째, 많은 인물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점입니다. 가족·마을 사람·동료·권력자까지 한 공간에 모이기 때문에, 평소에 드러나지 않던 긴장과 갈등이 한 번에 터져 나올 수 있습니다. 작가 입장에서는 인물 관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됩니다.

둘째,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 순간이라는 점입니다. 기념의식은 “오늘 이 자리”에서 과거의 사건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회상·고백·비밀 폭로 같은 장치가 자연스럽게 들어가고, 독자에게도 작품 속 세계의 역사적 맥락을 보여주기 좋습니다.

셋째, 사회 규범이 가장 촘촘히 드러나는 자리라는 점입니다. 어떻게 절해야 하는지, 누구 옆에 앉는지, 어떤 옷을 입는지, 누가 먼저 말하는지 등 기념의식의 규칙 속에 한 사회의 계급·성별·세대 관계가 드러납니다. 문학은 이를 통해 “이 세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세계 각지의 소설·시·희곡에는 결혼식과 장례식, 제사와 축제, 국가 기념식과 학교 행사까지, 다양한 기념의식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2. 가족과 공동체의 의례: 결혼식과 장례식, 제사의 서사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기념의식은 가족 단위에서 벌어지는 행사입니다.

결혼식 장면을 보면, 유럽·러시아·아시아 소설을 막론하고 결혼식은 계급·재산·사랑·가문 간 이해관계를 한 번에 드러내는 무대입니다. 화려한 혼례복과 예식 절차는 겉으로는 축복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문학 속에서는 종종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기대가 충돌하는 자리”로 그려집니다. 신부·신랑이 마음속으로 다른 감정을 품고 있거나, 하객들의 뒷이야기 속에서 가족의 비밀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장례식과 상례(喪禮)에서는, 장례가 죽은 사람보다는 산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는 기념의식으로 자주 활용됩니다. 누가 울고, 누가 침묵하며, 누가 조문을 오지 않는지가 곧 관계의 지도를 드러냅니다. 세계 여러 작품에서 장례식은 종종 갈등의 폭발점입니다. 유산 문제, 과거의 배신, 숨겨진 자녀, 정치적 책임이 장례식장을 둘러싸고 부상하고, 작가는 그 혼란스러운 시간을 통해 가족과 공동체의 구조를 해부합니다.

제사와 기일, 기념일도 중요합니다. 동아시아 문학에서는 조상의 제사·기일, 설·추석 같은 명절 의례가 자주 등장합니다. 제사상 앞에 모인 가족은 “돌아가신 사람”을 기리는 동시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감정을 다시 마주합니다.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문학에서도 조상과 영혼을 기리는 축제·제의가 반복되며, 현실과 초자연이 연결되는 통로로 그려집니다. 이때 기념의식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장면”이 됩니다.

이처럼 가족과 공동체의 기념의식은, 문학에서 “한 집안의 역사”와 “지역 사회의 규범”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3. 국가와 역사 기념식: 전쟁, 혁명, 독립을 기억하는 방식

세계 문학에는 국가가 주관하는 기념식도 자주 등장합니다. 전쟁 승전일, 혁명 기념일, 독립기념일, 국경일 행사 같은 장면들입니다.

전쟁과 승전 기념식을 다룬 작품에서는 군사 퍼레이드와 국기 게양식, 추도사를 통해 “국가가 만들어낸 영웅 서사”가 비판적으로 그려지곤 합니다. 겉으로는 영광과 희생을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장애인으로 돌아온 군인, 남겨진 가족의 상처가 숨어 있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이 기념식에 참여하면서도 속으로는 허무함·분노·죄책감을 느끼는 장면을 통해, 작가는 ‘국가 기억’과 ‘개인 기억’의 간극을 드러냅니다.

혁명·독립 기념일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는 당시의 열기가 시간이 지나 “의례적인 행사”로 굳어지는 모습이 자주 묘사됩니다. 한때는 거리에서 목숨을 걸고 외치던 구호가, 이제는 단체 구호와 의전, 교과서 속 문장으로만 남아 있을 때, 인물들은 “우리가 꿈꾸던 세상과 지금은 얼마나 다른가?”를 자문하게 됩니다.

재난·학살 추모식을 담은 문학에서는, 추모식이 “도대체 무엇을, 누구의 입장에서 기억할 것인가”를 둘러싼 갈등의 장으로 등장합니다. 국가가 주관하는 공식 추모식과, 유가족·시민이 별도로 여는 작은 행사 사이의 차이는, 권력과 시민의 기억이 어떻게 어긋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문학은 이런 기념식을 통해 “국가가 선택한 역사”와 “개인이 지우기 힘든 기억”이 어떻게 충돌하는지,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그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섬세하게 포착합니다.

4. 종교적 축일과 기념의식: 신과 인간 사이의 시간

세계 문학에서 종교적 기념일과 의식은, 단지 신앙의 표현이 아니라 세계관 전체를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종교 축일과 명절을 다룬 작품에서는, 기독교 문화권의 크리스마스·부활절·성인의 축일이 자주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이때 교회 미사, 촛불, 성가, 가족 식탁 장면이 함께 나와, “용서·구원·탄생·부활” 같은 상징이 작품의 주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이슬람, 힌두, 불교, 토착신앙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도 큰 축일과 순례, 제례가 등장하며, 공동체의 질서와 금기, 기쁨과 긴장이 함께 묘사됩니다.

종교 의례 속 개인의 갈등도 중요한 모티프입니다. 많은 작품에서 기념 미사나 제례, 종교 행사에 참여하는 인물은 겉으로는 의식을 따르지만, 속으로는 신앙의 회의, 죄책감, 반항심을 품고 있습니다. 문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종교가 공동체에게 요구하는 기억”과 “각 인물의 내적인 기억” 사이의 간극을 탐구합니다.

종교적 기념의식은, 인간이 신·운명·죽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위안과 억압을 동시에 받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무대입니다.

5. 개인적 기억의 의식: 일기, 편지, 작은 기념의식들

반면, 문학에는 거창한 행사 대신 아주 사적인 기념의식도 많이 나옵니다.

일기 쓰기와 편지 쓰기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어떤 인물은 매년 같은 날 일기를 쓰거나,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편지를 씁니다. 이 반복 행위는 “혼자 치르는 기념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자는 일기·편지를 통해 인물이 말로 하지 못했던 감정, 잊고 싶지만 끝내 잊지 못하는 기억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작은 물건과 장소의 의례도 자주 등장합니다. 세계 여러 작품에서, 인물은 특정 날이 되면 같은 카페·강가·묘지를 찾아가거나, 서랍 속 물건을 꺼내 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행동은 공식 기념일은 아니지만, 그 사람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을 혼자 기념하는 의례입니다. 작가는 이런 장면을 통해 “기억은 국가와 종교가 정해준 날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몸과 일상 속에서 조용히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말로 남기는 기념 역시 중요합니다. 독백·고백·증언 형식의 작품에서, 화자는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로 정리하는 순간 일종의 기념의식을 치르고 있는 셈입니다. 이름 없는 피해자·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은 소설과 시는, “없었던 이야기”를 역사 속으로 다시 데려오는 기념 작업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문학 속 기념의식은 국가와 종교가 정해준 공식 행사뿐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작은 의례까지 폭넓게 포착합니다.

결론: 문학은 ‘기억의 의식’을 기록하는 또 다른 의식

세계 문학 작품 속 기념의식을 정리해 보면, 기념은 단지 과거를 되풀이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가족과 마을이 모이는 결혼식·장례식·제사, 국가가 주관하는 기념식과 추모식, 종교 행사와 축일, 그리고 일기·편지·작은 습관으로 이어지는 개인의 기념의식까지. 문학은 이러한 장면을 통해 “누가 무엇을 기억하려 하는가, 누구의 기억이 배제되고 있는가, 그 기억은 오늘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끊임없이 묻습니다.

어떤 작품은 기념의식을 통해 공동체의 연대와 위로를 그려내고, 어떤 작품은 그 의식 속에 숨어 있는 권력과 억압을 드러내며, 또 어떤 작품은 잊힌 사람들의 작은 기념을 통해 역사의 빈자리를 메우려 합니다.

결국 “세계 문학 작품 속 기념의식”을 살펴본다는 것은, 인류가 시간과 상처, 축하와 애도를 어떻게 견디고 기록해 왔는지를 읽어내는 일입니다. 그리고 독자로서 우리가 어떤 장면에 마음이 오래 머무는지를 돌아보는 일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기념방식에 대해서도 조용한 질문을 던져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