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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성년식은 국가별로 어떤 차이가 있는가
청년이 ‘성인’이 되는 순간은 법적으로는 생일 날짜 하나로 정해지지만, 문화적으로는 훨씬 복잡하고 풍부한 의미를 지닙니다. 어떤 나라는 국가가 공식 성년식을 열고, 어떤 곳은 가족과 종교 공동체가 의례를 주도하며, 또 다른 사회에서는 친구들과의 파티가 사실상 성년식을 대신합니다. 한국의 성년의 날, 일본의 성인식, 라틴아메리카의 킨세아녜라, 유대인의 바르·바트 미츠바, 서구의 18·21세 생일 문화까지, 청년 성년식은 나라별 역사·종교·사회 구조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은 창입니다. 이 글에서는 국가별 청년 성년식의 차이를 법적 성인 연령, 의례 형식, 강조되는 가치라는 세 가지 축으로 비교·분석해 보겠습니다.
법적 성인 연령과 성년식의 관계
먼저 눈여겨볼 점은 법적 성인 연령과 실제 성년식의 시점이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나라에서 투표권·계약·군복무·음주·운전 등은 대체로 18~21세 사이에 허용됩니다. 그러나 문화·종교적으로 중요한 성년식은 12~15세, 또는 20세 전후 등 훨씬 이른 시점에 열리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유대교의 바르 미츠바(소년)·바트 미츠바(소녀)는 12~13세에 시행되며, 종교적 의무를 감당할 ‘종교적 성인’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반면 일본의 성인식은 20세를 기준으로, 한국의 현대 성년의 날은 19세(또는 제도 변경에 따라 그 주변 연령)를 기준으로 합니다. 서구에서는 별도의 국가 성년식이 없지만, 18세에 투표권과 법적 책임이 부여되고, 일부 영어권 국가에서는 21번째 생일이 상징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이처럼 법이 정한 성인의 기준은 주로 권리와 의무, 책임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면, 성년식은 공동체가 “이제 어른으로 인정하겠다”는 상징적 선언과 축하의 의미를 띠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법적 성인과 문화적 성인이 어긋날 때도 있고, 두 기준이 서로를 보완하면서 청년의 ‘성장 단계’를 여러 겹으로 만들어 냅니다.
동아시아: 전통과 현대가 섞인 공식 성년식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년식은 유교적 전통과 근대 국가 의례가 결합된 형태를 많이 보입니다.
한국에서는 과거 관례(男)·계례(女)라는 전통 성년식이 존재했습니다. 상투를 틀거나 비녀를 꽂고, 새로운 이름을 받으며, 어른에게 큰절을 올리는 의식을 통해 “이제 가정을 이룰 준비가 된 어른”임을 인정받았습니다. 현대에는 법적 기준과 맞물려 만 19세 무렵에 ‘성년의 날’을 기념합니다. 장미꽃, 향수, 키스를 상징 선물로 주는 문화는 사랑·매력·자기관리 같은 현대적 가치를 강조하고, 일부 지자체·학교는 한복을 입고 전통 예법을 체험하는 성년례 행사를 열며 옛 형식을 되살리려 합니다.
일본의 성인식(成人式)은 국가·지자체가 주관하는 대표적인 청년 의례입니다. 매년 1월 둘째 월요일 ‘성인의 날’에 만 20세가 된(또는 되는) 청년들을 시청·구청 단위로 모아 축사를 듣고 기념식을 엽니다. 여성들은 화려한 후리소데(긴 소매 기모노)를, 남성들은 정장이나 하카마를 입고 참석하는 모습이 언론에 자주 소개됩니다. 여기서는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패션과 사진 촬영, 동창회 분위기가 뒤섞인 축제성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최근에는 저출생·경제 부담·다양한 라이프스타일 변화 속에서, 참여율과 형식에 대한 논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법적 성인 연령은 18세이지만, 전통적인 관례(冠禮)를 현대적으로 복원하려는 움직임도 일부에서 나타납니다. 한푸(한복식 전통 의상)를 입고 전통 예법에 따라 예를 올리는 성년례 행사가 학교·문화단체를 중심으로 진행되기도 합니다. 이는 민족문화 부흥과 정체성 강조라는 흐름과도 연결됩니다.
동아시아 성년식의 공통점은, 국가·지역 공동체가 공식적으로 청년을 “사회 구성원”으로 맞이하는 형식을 유지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동시에, 전통 예법·복장과 현대적 파티 문화가 혼합되며, 성인됨의 의미가 ‘효·가족·국가’ 중심에서 ‘자기실현·이미지·개인의 선택’ 쪽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습니다.
유럽·북미: 법과 생일, 졸업식이 대신하는 성년식
유럽·북미 다수 국가에는 한국·일본처럼 국가가 정한 별도의 성년식은 거의 없습니다. 대신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성년식의 기능을 나누어 맡고 있습니다.
첫째, 법적 성인과 투표권입니다. 대부분 18세에 투표권과 법적 책임이 부여됩니다. 이 시점부터 독자적인 계약, 군 입대, 음주·흡연 허용 등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며, “이제 부모 대신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나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둘째, 18·21세 생일 파티입니다. 미국·영국·호주 등에서는 18번째 혹은 21번째 생일이 매우 중요하게 기념됩니다. 친구·가족과 함께 바에 가거나, 파티를 열고, 상징적으로 첫 술을 함께 마시기도 합니다. 이는 법적 권리 획득과 “진짜 어른이 됐다”는 사회적 인식이 맞물린 결과입니다.
셋째, 졸업식·첫 취업·독립입니다. 고등학교·대학교 졸업식은 단순한 학업 성취를 넘어, 사회 진출의 문턱이라는 상징을 갖습니다. 졸업 파티, 졸업여행, 독립해 나와 사는 첫 날 등은 비공식적이지만 개인에게는 강렬한 성년의 통과의례가 됩니다.
이 지역의 성년식은 전체적으로 제도와 개인 이벤트 중심입니다. 국가가 통일된 의례를 제공하기보다는, 법과 시장, 가족 문화가 함께 ‘어른이 되는 시기’를 구성합니다. 장점은 개인이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성인됨을 기념할 수 있다는 점이고, 단점은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성년 의례의 상징이 비교적 약하다는 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종교 문화권: 화려한 의례와 공동체의 축복
라틴아메리카와 특정 종교 문화권에서는, 여전히 공동체가 주도하는 성인식 의례가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와 히스패닉 문화권에서 유명한 킨세아녜라(Quinceañera)는 15세 소녀의 성인식입니다. 드레스를 입은 주인공이 가족과 함께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 뒤, 연회장으로 이동해 입장식, 아버지와의 첫 춤, 케이크 커팅, 친구들과의 댄스 등을 진행합니다. 이때 가족은 선물과 축복의 말을 전하고, 소녀는 감사 인사와 각오를 밝히기도 합니다. 이 의식은 여성의 아름다움과 성숙을 강조하는 전통과, 가족·친족 네트워크의 결속을 동시에 드러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성 역할 고정관념과 소비 중심 문화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면서, 킨세아녜라를 보다 평등하고 실용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대교의 바르 미츠바(소년), 바트 미츠바(소녀)는 12~13세에 행해지는 종교적 성년식입니다. 회당에서 토라를 봉독하고, 이후 기도와 계율을 지킬 책임이 있는 어른으로 인정받습니다. 이후 가족·친구와의 파티가 이어지기도 하지만, 핵심은 “이제부터는 부모 대신 스스로 믿음과 행동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가톨릭·개신교 문화권에서는 성인 세례나 견진성사 등이 종교적 성년 의례의 역할을 합니다. 이는 반드시 법적 성인 연령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이제 믿음 안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선언이라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이처럼 라틴아메리카와 종교 공동체의 성년식은, 신 앞에서의 약속과 가족·공동체 앞에서의 선언이 결합된 형태를 띱니다. 화려한 드레스와 파티, 선물, 사진이 눈에 띄지만, 그 바탕에는 “한 사람의 새로운 삶을 모두가 함께 축복하고 책임진다”는 가치가 깔려 있습니다.
공통점과 변화: 책임, 독립, 그리고 개인화되는 성년식
국가별 차이가 뚜렷하지만, 청년 성년식에는 몇 가지 공통된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 아이/청소년과 어른 사이의 경계를 넘는 순간을 ‘보이게 만드는’ 의례라는 점. 둘째, 종교적 의무, 가족 부양,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 자기 삶에 대한 책임 등, 어떤 책임을 강조하느냐만 다를 뿐 “이제 스스로 선택하고 감당하라”는 메시지가 핵심이라는 점. 셋째, 가족, 친구, 지역사회, 종교 공동체가 “우리는 너를 어른으로 인정한다”고 공식화하는 자리라는 점입니다.
동시에, 현대의 성년식은 빠르게 개인화·다양화되고 있습니다. 전통 의례를 간소화하고, 파티와 여행, 봉사활동, 프로젝트 등으로 대체하는 경향, 성별에 따라 역할을 구분하던 기존 성년식에 대한 비판과 성평등적 재구성, SNS와 사진·영상 중심 문화 속에서 “인생샷을 남기는 이벤트”로 소비되는 양상,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보다 의미 중심의 소규모 성년식을 선택하는 흐름 등이 그 예입니다.
이 변화는 청년들이 더 이상 ‘정해진 어른의 틀’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이 되고 싶은 어른의 모습을 스스로 설계하려는 움직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결론: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를 묻는, 서로 다른 방식들
청년 성년식은 국가별로 형식과 시기, 내용이 크게 다르지만,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수렴됩니다. “이제부터 어떤 어른으로 살아갈 것인가?” 어떤 나라는 국가와 전통이 그 답을 먼저 제시하고, 어떤 사회는 종교와 가족이, 또 어떤 곳은 개인과 친구들이 그 답을 함께 찾아갑니다.
다른 나라의 성년식을 비교해 보는 일은, 단지 특이한 풍습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청년에게 어떤 어른 됨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한국의 성년의 날, 일본의 성인식, 킨세아녜라, 바르·바트 미츠바, 18·21세 생일 파티를 떠올려 보며, 우리는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성년식은 청년에게 어떤 부담을, 어떤 가능성을 건네고 있는가?”, “나는 내 삶의 성년식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고 싶은가?”
이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성년식’일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