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세계 성인식의 전통과 의미
성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주민등록증을 받거나 법적으로 술·담배를 살 수 있게 되는 것을 넘어, “이제부터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스스로와 공동체에게 선언하는 순간입니다. 인류학에서는 이를 ‘성인식’ 혹은 ‘성인 통과의례’라고 부르며, 거의 모든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견되는 보편적 문화 현상으로 봅니다. 어떤 문화에서는 머리를 자르고 새로운 옷을 입으며, 또 어떤 문화에서는 종교적 의식을 치르거나, 가족·친구와 큰 파티를 열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세계 각지의 성인식 전통을 살펴보고, 그 안에 담긴 공통 구조와 문화적 의미,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성인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비교·분석해 보고자 합니다.
전 세계 성인식이 공유하는 보편적 구조
겉모습은 서로 많이 달라도, 세계 곳곳의 성인식에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구조가 반복됩니다. 인류학자들은 이를 크게 분리–과도기–재통합이라는 세 단계로 설명합니다. 먼저, 아이였던 시절과의 ‘분리’가 있습니다. 전통 사회에서는 일정 기간 가족이나 마을로부터 떨어져 지내거나, 머리를 자르거나, 어린이 시절에 사용하던 옷과 소지품을 내려놓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이제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표현했습니다.
다음 단계는 가장 중요한 과도기(중간 단계)입니다. 이 시기에는 교육과 시험, 규율 훈련이 강조됩니다. 부족의 역사와 규범, 종교적 가르침, 성 역할, 공동체가 허용하는 행동과 금기를 배우는 시간입니다. 일부 문화권에서는 인내와 책임을 상징하는 상징적 시험이나 도전이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용기 테스트’가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감당해야 할 무게와 책임을 몸으로 체험하게 했다는 점입니다.
마지막 단계인 재통합에서는 새로운 이름이나 복장, 상징물을 부여받고, 공식 석상에서 “이제 이 사람은 성인으로 인정받는다”는 선언이 이루어집니다. 가족과 친지,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축하하며 선물과 축복의 말을 전하고, 성인이 된 당사자는 감사 인사와 다짐을 밝힙니다. 현대 사회의 성인식 역시 이 세 단계 구조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학교 교육, 법 제도, 가족 문화 속에 더 느슨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녹아들어 있을 뿐입니다.
지역별 성인식 전통: 다른 모습, 비슷한 질문
각 지역의 성인식은 그 사회가 중요한 가치로 여겨온 것을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예로부터 유교적 전통이 강하게 작용했습니다. 한국의 관례·계례, 중국의 관례(冠禮), 일부 지역의 성년례는 성인이 된다는 것을 “이제 가정을 이룰 준비가 되었다, 사회의 책임을 나눠질 사람이다”라는 의미와 연결했습니다. 전통 복장을 갖추고 상투나 비녀, 관을 쓰는 의식, 어른에게 큰절을 올리고 이름을 새로 받는 과정은 모두 “아이에서 어른으로 신분이 전환된다”는 상징적 선언이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현대식 성년의 날 역시 꽃, 향수, 키스를 상징 선물로 주며, 사랑과 책임, 매력과 이미지 관리 같은 현대적 가치를 더해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유럽과 유대교 전통에서는 바르 미츠바·바트 미츠바가 대표적입니다. 일정 나이가 된 소년·소녀가 회당에서 토라를 봉독하고, 이후 어른과 같은 종교적 의무를 지게 되었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이 의식은 지식을 외우고 수행하는 시험이자, 신 앞에서 스스로 책임지는 존재가 되었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라틴아메리카의 킨세아녜라(Quinceañera)는 15세 소녀의 성인식을 화려한 드레스와 무도회, 가족·친구와의 축하파티로 표현합니다. 이는 단지 ‘공주놀이’가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가 한 사람의 성장과 미래를 함께 축복하는 자리입니다. 다만 외모와 여성성에 대한 전통적 기대가 강조되기도 하여, 오늘날에는 페미니즘과 성평등 관점에서 재해석과 비판이 함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오세아니아의 여러 부족 사회에는 오랜 세월 이어져 온 다양한 통과의례가 존재했습니다. 일정 기간 공동체에서 떨어져 공동 생활을 하며 전통 지식과 기술을 배우거나, 춤과 노래, 상징적 markings(문신, 상징적 표시 등)를 통해 “이제 우리 부족의 완전한 일원”이 되었음을 드러냈습니다. 오늘날에는 인권·건강 문제에 대한 국제적 논의 속에서 일부 관행은 폐지되거나 수정되었고, 교육·워크숍·축제 등 다른 형태로 전환되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근본적인 질문이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재탄생하는 성인식: 제도, 파티, 그리고 개인의 선택
현대 산업사회로 오면서 전통적인 성인식은 크게 두 방향으로 변했습니다. 하나는 국가와 제도가 성인 기준을 정하는 방향입니다. 만 18세·19세와 같은 법적 성인 나이가 정해지고, 투표권·병역·음주·흡연·운전·계약 등 권리와 의무가 법적으로 부여됩니다. “어른이 되었다”는 의미는 점점 의례보다 법과 제도, 경제적 독립에 의해 규정되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졸업식, 입대, 첫 취업, 독립 등도 사실상 성인식의 기능을 일부 수행합니다.
다른 한 방향은 개인화·축제화된 성인식입니다. 많은 나라에서 성년의 날, 18번째·21번째 생일 파티가 친구와 가족이 함께 즐기는 큰 이벤트가 되었습니다. 드레스와 수트, 파티장, 사진 촬영, SNS 인증이 결합되면서, 성인식은 “내가 주인공이 되는 날”이라는 측면이 강해졌습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청소년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 부담과 비교, 외모·소비 중심 문화에 대한 고민을 남기기도 합니다.
또한 현대 성인식은 성평등과 다양성의 관점에서 재구성되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남녀의 역할을 강하게 구분하거나, 특정 성적 규범을 강요하는 성인식은 점점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대신,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책임,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태도, 젠더·인종·장애에 대한 감수성을 뒷받침하는 교육과 대화가 성인식의 중요한 요소로 제안되고 있습니다. 어떤 청년들은 종교나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환경, 인권, 봉사, 예술 등)에 따라 스스로 ‘나만의 성인식’을 기획하기도 합니다. 봉사활동, 여행, 도전 프로젝트 등을 통해 “나는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선언하는 방식입니다.
결론: ‘어른이 된다’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보기
세계 성인식의 전통을 살펴보면, 시대와 문화가 달라도 결국 비슷한 질문에 닿게 됩니다. “언제부터 사람을 어른이라고 부를 것인가?”, “어른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맡길 것인가?”, “다음 세대에게 어떤 책임과 자유를 전해 줄 것인가?” 성인식은 이 질문들에 대한 한 사회의 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의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전통적 성인식이 사라지거나 약해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인이 되는 순간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다양한 방식으로, 더 개인적인 언어로 다시 쓰이고 있을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형식을 택하느냐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내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일 것입니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 “나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며 살아갈 것인가?”
세계 성인식의 전통과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지 다른 문화의 특이한 풍습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성장과 책임을 돌아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성인식을 축하하거나, 혹은 스스로에게 조용한 성인식을 치르고 싶어진다면, 그날만큼은 축하의 말과 함께 이런 질문을 함께 떠올려 보아도 좋겠습니다. 그 질문이야말로, 시대와 문화를 넘어 이어져 온 성인식의 가장 깊은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