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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기념의식의 변화

기념일과 기념의식은 오랫동안 광장·성당·사찰·추모공원처럼 “현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같은 상징물을 바라보며, 같은 말을 따라 하는 것이 전통적인 기념 문화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기념의식은 더 이상 오프라인 공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유튜브 생중계 추모식, SNS 해시태그 캠페인, 온라인 분향소, 메타버스 추모관, 카카오톡·메신저 프로필 이벤트까지, 새로운 형태의 기념 방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시대에 기념의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 특징과 의미, 그리고 장단점을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현장’에서 ‘화면’으로: 기념의식의 공간이 확장되다

디지털 시대 가장 큰 변화는 기념의식의 공간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확장되었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기념행사에 참여하려면 직접 현장에 가야 했습니다. 국가 추모식, 지역 축제, 종교 행사, 가족 제사 등은 “몸이 있는 곳이 곧 기념의 현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현장에 가지 않아도, 심지어 다른 나라에 있어도, 스마트폰과 인터넷만 있으면 기념의식에 ‘참여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국가적 추모식이나 대형 행사들은 유튜브나 방송사 플랫폼을 통해 생중계되고, 사람들은 댓글창에 추모의 메시지나 응원글을 남깁니다. 재난·사고 피해자를 위한 온라인 분향소나 추모 웹페이지가 만들어지면, 전 세계 어디에 있는 사람들이든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조문 글을 남기고 사진·영상에 ‘좋아요’를 눌러 공감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디지털 기념의식은 공간적 장벽을 낮추는 장점을 갖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 멀리 떨어져 있는 이주민·유학생·해외교포, 바쁜 일상 때문에 현장에 갈 수 없는 이들도 “나도 함께 기억하고 있다”는 감각을 나름대로 가질 수 있습니다. 특히 팬덤 문화나 국제적인 사건의 경우, 서로 다른 국가와 시간대에 있는 사람들이 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동시에 게시물을 올리며, 느슨하지만 분명한 “함께함”의 경험을 공유합니다.

그러나 이 변화는 동시에 새로운 문제도 낳습니다. 화면 속 기념의식은 현장의 공기와 온도, 사람들의 몸짓, 침묵과 울음처럼 물리적 경험에서 오는 밀도를 완전히 재현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거기 있었던 사람”과 “중계 화면을 보며 댓글을 단 사람”이 갖는 기억의 질감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디지털 기념의식은 참여의 문을 넓히지만, 그만큼 경험의 깊이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2. 클릭과 해시태그가 만든 새로운 ‘의례’

디지털 시대에는 전통적인 헌화·묵념·행진 대신, 클릭·공유·해시태그·프로필 바꾸기가 새로운 의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추모일이나 국제 기념일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SNS 프로필 사진에 리본이나 특정 색 필터를 입히고, “나는 이 기념일의 의미에 동의한다”는 간단한 문장을 붙입니다. 환경·인권·평화·재난 추모 등 다양한 이슈에서 “#잊지_않겠습니다” 같은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이 줄지어 올라옵니다. 이때 클릭 한 번, 해시태그 하나는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상징적 몸짓이 됩니다.

또한 디지털 플랫폼은 기념의식을 포맷화·복제하기 쉬운 구조입니다. “오늘은 과거 사진 올리는 날”, “오늘은 고인이 좋아하던 노래를 함께 듣는 날”, “오늘은 ○○에 기부 인증샷 올리는 날”처럼 정해진 포맷이 생기면, 사람들은 그 틀에 자신의 이야기를 넣어 퍼뜨립니다. 이는 전통 의례에서 “모두 함께 일어선다, 묵념한다, 노래를 부른다”와 비슷한 통일된 행동을 만들어내는 디지털 버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는 두 가지 상반된 평가가 공존합니다. 한편으로는, 참여의 문턱을 크게 낮춘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몸을 직접 움직이거나 많은 시간을 내기 어려운 사람도, 스마트폰 몇 번 터치하는 것으로 최소한의 연대와 공감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 혼자가 아니다”라는 감정,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라는 집단적 의식이 형성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클릭 한 번으로 양심을 해결하는 것 아닌가?”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이를 ‘슬랙티비즘(slacktivism)’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깊이 있는 행동 대신 가벼운 온라인 참여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실제 변화에는 별로 기여하지 못한다는 지적입니다.

결국 디지털 의례의 의미는 그 행동이 이후 어떤 변화와 연결되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해시태그가 단지 하루짜리 유행으로 끝나는지, 아니면 토론·교육·후원·정책 요구 등 오프라인 행동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는지에 따라 디지털 기념의식의 깊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3. ‘기록’과 ‘아카이브’로서의 기념: 데이터에 쌓이는 기억들

디지털 시대 기념의식의 또 다른 특징은, 거의 모든 흔적이 데이터로 축적된다는 점입니다. 과거의 기념행사는 사진 몇 장, 신문 기사, 기록문 정도만 남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관련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수천·수만 개의 게시물과 사진·영상·댓글이 쏟아집니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기념의식이 하나의 거대한 아카이브를 형성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 재난을 추모하는 날의 타임라인을 몇 년 치 모아서 보면, 사람들이 그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감정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사회적 논의가 어떻게 이동했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희생자 유가족의 글, 시민들의 애도, 정치적 갈등, 예술적 표현, 후원 캠페인 등이 뒤섞여 “기억의 지도”를 이루게 됩니다.

둘째, 이 기록은 언제든 다시 소환될 수 있는 기억 저장소가 됩니다. 매년 같은 날이 돌아올 때마다 플랫폼은 과거의 게시물을 “추억하기” 기능으로 보여 주고, 사람들은 그때의 감정과 상황을 다시 떠올립니다. 이는 과거를 잊지 않게 하는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반복해서 상기시키는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참사·범죄·차별의 피해자나 주변인에게는, 원치 않는 재소환이 2차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쟁점은, 이렇게 축적된 기념의 데이터가 플랫폼과 알고리즘에 의해 얼마나 공정하게 다뤄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어떤 기억은 알고리즘에 의해 더 널리 퍼지고, 어떤 기억은 금방 묻혀 버리거나 삭제를 당하기도 합니다. 디지털 시대 기념의식은, 기억의 권력과 플랫폼의 책임을 함께 고민하게 만듭니다.

4. 디지털 기념의식이 던지는 질문: 연결과 피로, 진심과 연출 사이

디지털 시대 기념의식은 우리를 더 촘촘하게 연결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피로와 혼란도 가져옵니다. 거의 매일 누군가의 기념일·추모일·캠페인·챌린지가 타임라인을 채우면서, “오늘도 뭘 기억해야 하지?”라는 감각이 들 정도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것이 ‘세계와 연결된 느낌’을 주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끝없는 감정 노동’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또한 디지털 공간의 특성상, 기념의식에는 연출과 경쟁의 요소가 자연스럽게 끼어듭니다. 추모 문구를 더 감성적으로 쓰거나, 기념 사진을 더 예쁘게 찍고, 참여 인증샷을 더 눈에 띄게 꾸미려는 욕구가 생기기도 합니다. 진심에서 출발한 표현이더라도, “좋아요”와 조회 수가 달려 있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됩니다. 그 결과 “정말로 이 기념의식을 위해 글을 쓰는가, 아니면 나를 보여주기 위해 쓰는가”라는 질문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생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시대의 기념의식이 단순히 ‘가짜’이거나 ‘얕은’ 것으로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안에는 물리적으로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끼리 서로를 위로하고, 기존 미디어가 다루지 않던 작은 사건들을 기억 속으로 끌어올리며, 자신의 상실·우울·고립을 조심스럽게 털어놓고 지지를 받는 수많은 순간이 함께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디지털 기념의식 자체를 찬반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설계하고 참여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일입니다. 클릭과 해시태그에서 출발하더라도, 한 번쯤 더 읽고 생각하며, 가능한 작은 행동이라도 현실의 변화와 연결해 보는 것. 과도한 감정노동을 느낀다면, 타임라인에서 한 발 물러나 나에게 정말 중요한 기념과 기억이 무엇인지 선별해 보는 것. 이런 선택이 모여, 디지털 시대 기념문화의 건강한 방향을 결정하게 됩니다.

결론: 디지털 시대, 우리는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디지털 시대 기념의식의 변화는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할 것인가?” 오프라인 의례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위에 온라인 의례가 겹겹이 덧씌워지면서, 기억의 방식이 다층적으로 변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기념일은 달력에만 적혀 있지 않습니다. SNS 타임라인, 유튜브 재생 목록, 온라인 추모관, 클라우드에 저장된 사진과 영상 속에도 기념의 흔적이 쌓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형식의 중심에 사람과 이야기, 삶의 가치가 놓여 있는지를 계속 확인하는 일입니다.

디지털 도구는 그 자체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그 도구를 사용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외로운 사람을 덜 외롭게 만들고, 잊혀지기 쉬운 존재와 사건을 조금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 쓴다면, 디지털 기념의식은 분명 의미 있는 진화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소비와 과시, 피로만을 남긴다면 기념의 본래 목적은 희미해질 것입니다.

다음번에 온라인에서 어떤 기념일·추모일·챌린지를 마주하게 된다면, 한 번쯤 이렇게 물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 기념의식이 나와 우리에게 어떤 기억을 만들고 있는가?”, “나는 이 시간에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그 짧은 질문에서부터,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기념문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