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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예술제는 왜 ‘기념’의 자리가 되었을까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예술제는 겉으로 보면 음악과 미술, 공연을 즐기는 축제의 장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특정 사건과 시대, 사람과 가치를 반복해서 떠올리게 만드는 ‘기념의 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술제는 단순히 새로운 작품을 소개하는 행사가 아니라, 한 도시와 국가, 나아가 인류가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상징적인 무대입니다. 특정 연도에 출범한 예술제를 매년 같은 시기에 이어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의례적 리듬이며, 이 반복 속에서 관객과 시민은 자연스럽게 장소의 역사, 과거의 사건, 누적된 기억을 함께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서 세계 예술제의 프로그램을 보면 순수 예술만이 아니라, 전쟁과 독재, 혁명과 민주화, 산업화와 환경 파괴, 소수자 인권 등 그 사회가 한 번쯤 마주해야 했던 문제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예술제는 이처럼 즐김과 기억이 겹쳐 있는 독특한 시간대이며, 현대 사회에서 집단 기억을 갱신하는 대표적인 방식 중 하나로 기능합니다.
전쟁과 상처를 다시 읽는 기억 장치로서의 예술제
세계 예술제 중 상당수는 전쟁과 파괴를 경험한 도시에서 출발했습니다. 독일 카셀에서 열리는 도쿠멘타(Documenta)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도시가 스스로의 역사를 마주하기 위해 시작한 현대미술 전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나치 정권에게 ‘퇴폐 예술’로 낙인찍혀 몰락했던 현대미술을 복권시키는 작업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파시즘, 냉전, 식민주의, 난민 문제 등 폭력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되짚는 거대한 기억 장치가 되었습니다. 관람객은 작품을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서, 질문을 던지고 토론에 참여하며, 전쟁과 폭력의 역사를 다시 해석하는 과정 속으로 초대됩니다. 이처럼 전쟁 이후에 태어난 세대에게 예술제는 교과서 밖의 역사 교육장이며, 과거의 상처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상기시키는 일종의 기념 의식입니다. 전통적인 동상이나 추모비가 일방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기념물이라면, 예술제는 여러 관점이 충돌하고 공존하는 ‘열린 기념’의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공식 서사를 강요하기보다 다양한 목소리를 병치함으로써, 복잡한 역사를 복잡한 그대로 떠올리게 만드는 기억의 장인 셈입니다.
도시 정체성과 지역 기억을 축적하는 문화적 의례
세계 예술제는 한 도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브랜드이자, 해당 지역이 스스로를 기념하는 의례처럼 작동하기도 합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에든버러 페스티벌, 아비뇽 연극제 같은 대표적인 예술제들은 “예술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동시에, 오래된 항구도시·중세 도시·왕도(王都)라는 역사적 층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베니스 비엔날레의 국별 파빌리온 구조는 이 도시가 과거 상업과 외교의 중심지였던 기억을 오늘날의 문화 교류 방식으로 이어가는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각국이 파빌리온에 자국의 예술과 메시지를 담아 선보이는 행위는, 과거의 상단(商團)과 사절단이 드나들던 항구의 풍경을 현대적으로 기념하는 셈이기도 합니다. 지역 주민 입장에서도 예술제 기간은 “우리 도시가 어떤 이야기를 가진 곳인지”를 재확인하는 시간입니다. 매년 반복되는 퍼레이드, 개막식, 참여형 프로그램들은 일종의 세속화된 연례 제의처럼 자리 잡으며, 시민이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몸으로 다시 경험하게 합니다. 이렇게 예술제는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문화적 의례가 되어, 지역 정체성을 축적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승하는 기억 장치 역할을 합니다.
상처와 재난을 다루는 치유와 추모의 예술제
세계 예술제의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은 재난과 상처를 치유하는 기념의 역할입니다. 대지진, 원전 사고, 학살, 인종 폭력과 같은 극단적 사건 이후, 직접적인 정치 담론만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감정과 기억을 예술이 대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 후쿠시마 일대에서 열리는 여러 예술 프로젝트와 페스티벌은 방사능과 피난, 공동체 붕괴를 겪은 지역이 다시 서로의 삶을 바라보고 회복을 모색하는 기념 의례로 기능합니다. 예술가들은 파괴된 건물과 텅 빈 마을을 캔버스 삼아 설치 작업을 펼치고, 주민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와 노래, 사진과 영상으로 풀어내며 관객과 소통합니다. 이때 전시는 과거를 미화하는 기념비가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상처를 함께 감당하고 기억하자는 초대장이 됩니다. 한국의 광주비엔날레 역시 민주화 운동의 기억을 예술적으로 계승하는 국제 행사가 되었으며, 희생과 저항, 연대를 다루는 작품들은 매 회차마다 새로운 세대에게 그날의 의미를 다시 묻습니다. 이처럼 예술제는 추모식과 토론회, 퍼포먼스와 전시가 뒤섞인 복합적인 치유의 장이 되어, 슬픔을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돕는 집단적 기념 의식으로 자리 잡습니다.
글로벌 의제와 연대의 감각을 만드는 현대적 기념 방식
오늘날 세계 예술제는 특정 지역의 역사만이 아니라, 기후 위기·난민 문제·인권·젠더·디지털 감시 등 전 지구적 의제를 다루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예술제가 한 국가나 도시를 넘어, 인류 전체의 과제를 함께 “기억하고 행동하자”는 현대적 기념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환경을 주제로 한 국제 환경 예술제, 난민과 이주를 다루는 다큐·퍼포먼스 페스티벌, 여성과 성소수자의 경험을 전면에 내세우는 페미니즘 아트 페스티벌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행사에서 관객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받는 소비자가 아니라, 토론 세션과 워크숍, 참여형 작업을 통해 직접 의견을 내고 행동 계획을 고민하는 주체가 됩니다. 특정 날짜와 장소에 모여 예술을 매개로 세계 문제를 이야기하는 이 경험 자체가 일종의 현대식 기념의례입니다. 전통적인 기념일이 국기에 대한 경례, 묵념, 연설로 구성되었다면, 현대의 예술제는 공연과 설치, 관객 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문제의식을 몸으로 체험하게 합니다. 이렇게 세계 예술제는 “기억해야 할 것”의 범위를 한 나라의 영웅담에서 인류 전체의 생존과 존엄성으로 확장시키며, 세계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기념하는 새로운 의례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 예술제가 여는 미래의 ‘기억의 무대’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예술제와 기념의 관계를 한 단계 더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많은 세계 예술제가 라이브 스트리밍과 온라인 전시, 메타버스 공간을 활용하며, 현장을 직접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같은 시간에 작품을 보고 토론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예술제는 특정 도시의 물리적 행사를 넘어, 전 세계가 동시 접속하는 분산된 기념 무대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기록의 방식입니다. 예전에는 사진과 비디오, 비평문 정도가 남았다면, 이제는 관객의 SNS 게시글, 실시간 채팅, 온라인 아카이브, 교육용 플랫폼 등 수많은 디지털 흔적이 예술제를 둘러싼 기억으로 축적됩니다. 이는 예술제가 끝난 뒤에도 언제든 다시 꺼내 볼 수 있는 거대한 기억 저장소가 생긴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알고리즘과 플랫폼 권력이 어떤 예술제와 의제를 더 많이 노출시키는지, 누구의 기억이 더 널리 퍼지는지에 대한 새로운 과제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예술제가 가진 기념적 의미는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예술제는 과거와 현재, 지역과 세계,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가로지르며 우리가 무엇을 잊지 않기로 했는지 반복해서 묻는 공간입니다. 앞으로도 예술제가 계속되는 한, 인류는 그 무대를 통해 자신들의 역사를 다시 쓰고, 상처를 나누고, 함께 기억하는 새로운 방식을 발견해 나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