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파티·축제의 기념적 기능

페미니스트 파티·축제의 기념적 기능
[디스크립션: 주제 소개] 페미니스트 파티와 축제는 흔히 “여성주의 감성을 담은 문화 행사” 정도로 가볍게 소비되지만, 실제로는 역사와 투쟁, 공동체의 시간을 기념하는 중요한 의례 공간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여성과 성소수자가 겪어온 폭력과 차별이 이야기되고, 동시에 살아남아 연결된 존재들이 서로를 축하합니다. 즉, 슬픔과 분노, 연대와 환희가 뒤섞이는 독특한 기념 형식을 만들어 냅니다. 이 글에서는 ①페미니스트 파티·축제가 기억하고자 하는 것, ②집회·시위와 다른 ‘축제형 기념’의 특징, ③참여자 개인의 삶에 미치는 치유와 자기기념 효과, ④도시와 사회에 던지는 정치적 메시지를 살펴보며, 왜 이 행사가 단순한 놀이나 콘셉트 파티를 넘어서는지 생각해 봅니다.
1. 페미니스트 파티·축제가 기억하는 것들
페미니스트 축제의 기획 의도를 들여다보면, 대부분 하나 이상의 “기억하고자 하는 사건·조건”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여성혐오 범죄와 성폭력 사건, 가정폭력·데이트폭력·직장 내 성희롱, 낙태죄·차별적 법제도, 페미니즘 운동의 중요한 시기(미투, 시위, 판결 등), 역사 속 여성·성소수자 운동가들의 발자취가 그것입니다.
많은 페미니스트 파티에는 추모 공연, 발언·낭독, 이름을 부르고 기억하는 순서, 피해자·생존자의 이야기 공유가 포함됩니다.
즉, 음악·술·춤이 있는 자리라 해도 그 밑에는 “지워지거나 타이틀만 남은 사건을 우리 방식으로 다시 기억하고자 하는 의지”가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이렇게 존중하고 배척하지 않는다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또한 축제의 이름·포스터·플레이리스트에는 과거의 시위 구호, 여성주의 슬로건, 상징 색과 이미지(보라색·초록색 등)가 재배치되어, “이 파티는 그저 오늘 하루만을 위한 합법적 탈선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져 온 싸움과 연결된 자리”임을 암시합니다.
2. 집회·시위와 다른 ‘축제형 기념’의 특징
전통적인 기념 방식이 추모식, 공식 기념식, 엄숙한 거리 행진이라면, 페미니스트 파티·축제는 의도적으로 “기쁜 분위기”를 섞어 넣습니다.
1) 웃고 춤추면서도 정치적인 자리
페미니스트 파티는 여성·성소수자가 안전하게 술을 마시고, 춤추고, 서로의 몸과 스타일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듭니다. 그러나 동시에 특정 노래가 나올 때마다 구호를 외치거나, 성폭력·혐오 경험을 다룬 시와 랩이 공연되고, 중간중간 연대 발언·캠페인 소개가 들어갑니다.
이것은 “저항은 고통스러운 의무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도 함께 만들어야 지속될 수 있다”는 페미니즘의 실천 방식입니다.
2) ‘피해자성’만이 아닌, ‘주체성’을 기념
공식 추모식이나 제도권 기념식에서는 피해자의 고통에 초점이 맞춰지기 쉽습니다. 반면 페미니스트 축제는 생존자의 존엄과 유머, 서로를 지켜준 관계와 우정, 싸우고 버틴 사람들의 끈질김을 함께 기념합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기억되는 것은 “무력한 피해자”가 아니라, “살아남아 서로를 붙잡고 있는 주체들”입니다.
3) 규범적 몸·관계를 뒤집는 기념 방식
많은 페미니스트 파티는 드레스 코드 없이, 노브라, 편한 바지, 작업복, 수트, 드랙 등 기존 젠더 규범을 뒤흔드는 스타일을 환영합니다. 또한 연인·부부 중심이 아닌, 친구, 동료, 동지와 함께 오는 관계 구성이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어떤 몸과 관계를 기념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자, 전통적인 결혼식·커플 중심 행사와는 다른 새로운 기념 단위를 실험하는 장입니다.
3. 개인에게 주는 치유와 ‘자기 기념’의 경험
페미니스트 파티·축제에 처음 오는 사람들 가운데는 여성혐오와 폭력 경험으로 위축된 이들, 스스로를 “문제적 존재”라고 느껴 온 이들,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말하기 어려웠던 이들이 많습니다.
1) “이렇게 많이 있었구나”를 확인하는 순간
실제 현장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말 중 하나는 “생각보다 사람이 진짜 많다.”라는 말입니다.
이 한마디에는 온라인에서만 보던 ‘페미’들이 실제로 한 공간에 모여 있다는 놀라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섞여 있습니다.
이 경험은 개인의 내면화된 수치심을 서서히 약하게 만들고, “내가 틀린 게 아니라, 구조가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몸으로 체감하게 합니다.
2) 자기 몸·감각을 다시 긍정하는 자리
페미니스트 축제는 외모 평가와 성적 대상화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공간을 지향합니다.
여기서 춤을 추고, 소리 높여 노래를 따라 부르고, 웃고 울 수 있다는 것은 “그동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조심스럽게 조절해 온 몸과 감정을 잠시 내려놓는 경험”입니다.
이때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자기감각이 회복되고, 그 자체가 자신의 삶을 기념하는 작은 의식이 됩니다.
3) 상실을 다르게 애도하는 방식
자매·친구·동료를 잃은 공동체에게 페미니스트 축제는 울기만 하는 장례식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사랑했던 것들을 함께 즐기는 밤”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그가 좋아하던 노래를 틀 때, 그의 사진을 슬라이드로 띄울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며 건배할 때, 상실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웃고 춤추는 존재로 기억되는 방식”으로 다시 기념됩니다.
4. 사회·도시 차원에서의 기념적 기능
1) “여성이 안전한 밤”이라는 가능성 보여주기
많은 도시에서 밤 시간의 거리, 술집, 공연장은 여성·성소수자에게 위험과 긴장을 동반하는 공간입니다.
페미니스트 축제는 입장 기준·규칙·스태프 교육을 통해 성폭력·혐오발언·몰카·스토킹에 즉각 대응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합니다.
서로간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을 시 대립과 이로인한 폭력성이 발현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비교적 안전한 밤 공간”은 “도시의 밤이 원래 누구에게 설계되어 있었는가”를 되묻고, “이 방향으로 더 넓은 공공공간을 바꿀 수 있다”는 실험적 모델이 됩니다.
2) 문화·예술계 구조를 비판하고 대안을 보여주기
페미니스트 음악제·영화제·북페어 등은 여성·퀴어 창작자 중심의 라인업, 젠더 감수성을 가진 운영 방식, 수평적 스태프 구조를 통해 기존 남성 중심 문화 산업의 선정·배치 방식을 비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다르게 기획하고, 다르게 사람을 초대할 수 있다”는 대안을 몸으로 보여줍니다.
3) 기록과 아카이빙을 통한 ‘역사 만들기’
페미니스트 축제는 포스터, 굿즈, 플레이리스트, 사진·영상 기록, 참가자 후기와 에세이를 통해 그 시대 여성·퀴어 운동의 감정과 언어를 남깁니다.
이 기록은 훗날 “그 시기의 페미니스트들은 무엇을 분노했고, 무엇을 즐겼으며, 어떻게 서로를 기념했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 자료가 됩니다.
결론: 페미니스트 파티·축제는 “사는 법”을 기념하는 의례
페미니스트 파티와 축제는 단순한 콘셉트 파티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돌보고,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집단적으로 실험하고 기념하는 의례입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과거의 상처와 투쟁을 기억하면서도, 서로의 웃음·춤·목소리를 미래를 향한 에너지로 바꿉니다.
그것은 “더 이상 폭력과 침묵만을 기념하지 않겠다. 이제는 우리의 생존과 기쁨도 공식적인 기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선언입니다.
페미니스트 파티·축제가 더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 상업성과 피로감을 경계하며, 일상의 정치와 연결될 수 있다면, 이 축제들은 앞으로도 “다른 삶의 방식과 관계를 기념하는 새로운 캘린더”를 꾸준히 만들어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