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축제와 세대별 기념문화 변화

대학 축제와 세대별 기념문화 변화
대학 축제는 언제나 ‘젊음의 상징’으로 불려왔지만, 실제로 축제의 모습과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은 세대가 바뀔 때마다 크게 달라져 왔습니다. 선배 세대에게 대학 축제가 술과 무대와 밤샘의 '즐기기 위한 시간’이었다면, 오늘날 대학 축제는 이전 세대와 달리 안전, 성평등, K-팝 팬덤 문화, SNS 기록, 굿즈와 플리마켓, 사회적 이슈까지 뒤섞인 복합적인 기념문화의 장이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①세대를 가르며 달라진 대학 축제의 풍경, ②세대별 ‘기념 방식’의 차이(사진, 기록, 스토리), ③축제를 둘러싼 가치관 변화(소비·연대·안전 의식), ④앞으로 대학 축제가 어떤 기념문화로 자리 잡아 갈지를 살펴봅니다.
1. 세대가 바뀌면 ‘축제의 기본 값’도 달라진다
1) 선배 세대의 기억: 주점과 대동제, ‘학교 전체가 한판’
1990~2000년대 초반까지 많은 대학에서 축제는 과·동아리별 주점, 운동장 대공연, 대동제 퍼레이드, 새벽까지 이어지는 뒤풀이와 노래방 같은 즐길거리 위주의 단어로 기억됩니다.
“그때는 정말 학교 전체가 밤새 떠들썩했다”는 회고 속에는 강의실이 주점으로 변하고, 건물마다 현수막이 걸리고, 캠퍼스가 일시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공간’이 되는 해방감의 감정이 깔려 있습니다.
이 시기의 축제는 “평소 규칙과 위계를 잠시 내려놓고 모두가 뒤섞이는 시간”이라는 상징성을 강하게 갖고 있었고, 선후배가 술잔을 기울이며 친해지고, 동아리가 신입을 본격적으로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일종의 통과 의례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2) 이후 세대의 축제 풍경: 연예인 라인업, 관객 중심 무대
2010년대 이후 대학 축제는 유명 가수 라인업, 아이돌·힙합 아티스트 섭외, 공개방송 수준의 메인 무대, 제휴 카드·맥주·통신사 부스 등 대형 이벤트화되는 흐름을 겪습니다.
학생 입장에서 축제는 “내가 직접 만드는 장”이라기보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캠퍼스에서 하는 콘서트”에 가까워졌습니다.
이 시기 축제의 핵심 키워드는 ‘라인업 공개일’, ‘줄 서기’, ‘자리 선점’, ‘직캠’, ‘푸드트럭’처럼 관람과 소비의 경험이었습니다.
3) 최근 세대의 변화: 안전, 성평등, 다양성이 전면에
2020년대에 들어서며 코로나19로 인한 축제 중단과 재개, 대형 사고와 안전 이슈, 미투 운동과 학내 성폭력 문제, 혐오 표현·막장 장기자랑에 대한 비판 등이 쌓이면서 대학 축제는 “그냥 놀기만 하는 시간”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놀아야 하는가를 함께 고민하는 시간”으로 성격이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주점 폐지·축소, 성평등 지침·안전 매뉴얼 도입, 취약계층·소수자를 배려한 프로그램, 환경·기후위기·인권 부스를 결합한 축제 등 이전 세대에서는 주변에 머물던 의제가 축제의 한가운데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특징입니다.
2. 세대별 ‘기념 방식’의 차이: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1) 아날로그 세대: 추억은 몸과 입으로 전해지는 것
필름 카메라·초기 디카 세대에게 축제의 기억은 흐릿한 단체 사진 몇 장, 남아 있지 않은 포스터, 몸으로 기억하는 노래와 구호, 술자리에서 반복되는 ‘그때 이야기’입니다.
기록이 적은 대신, “직접 본 사람들만 아는 이야기”가 많았고, 그 기억은 동기 모임, 동아리 재결성, 동문회 자리에서 구전되는 서사로 이어졌습니다.
2) 디지털 전환 세대: 블로그·카페·싸이월드의 축제 기록
디지털 카메라·초기 SNS 세대에게 대학 축제는 블로그 후기, 카페 사진첩, 싸이월드 미니홈피, 동아리 홈페이지 갤러리 속에 보관된 행사입니다.
이때의 축제 기록은 “나와 내 친구가 얼마나 즐거웠는지”를 보여주는 친밀한 사진, 동아리 공연 영상, ‘축제 준비 과정’ 스냅 등으로 채워졌습니다.
이 시기 기념문화의 초점은 “나의 대학 시절, 우리 동아리의 시간”에 맞춰져 있었고, 공개 범위도 지인, 동아리, 같은 학교 사람들 정도에 제한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3) SNS·팬덤 세대: 실시간 스트리밍, 해시태그, 직캠
오늘날 학생들에게 축제는 실시간 인스타 스토리, 유튜브·틱톡 직캠, 트위터 실시간 후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후기로 동시에 소비·기록되는 이벤트입니다.
기념 방식의 특징은 “내가 거기 있었다”는 인증, “내가 찍은 영상·사진의 조회수·좋아요 수”, “우리 학교 라인업이 얼마나 화제였는지”등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지표에 강하게 연결됩니다.
축제는 “나와 가까운 사람들만의 추억”을 넘어 “전국 대학생·팬덤과 비교·공유되는 콘텐츠”가 되면서, 스테이지 연출, 조명·음향, 카메라 앵글까지 ‘찍히는 것을 전제한’ 축제가 되는 경향도 나타납니다.
4) ‘기념’의 방향 변화: 나의 청춘에서 사회적 의제로
한편, 최근 일부 대학의 축제에서는 환경 캠페인, 성평등·성소수자 인권, 학생 노동·등록금 문제, 장애인 이동권 등 사회적 문제를 알리는 부스와 퍼포먼스가 ‘축제의 일부’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나만 재밌는 축제”를 넘어 “우리 세대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기념의 장”으로 승화되어 축제를 재해석하는 사회적인 캠페인의 장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대학 축제를 둘러싼 가치관의 변화
1) ‘마시고 노는’ 축제에서 ‘조심하며 즐기는’ 축제로
과거에는 과도한 음주, 새벽까지 이어지는 소란, 강한 장난 문화가 축제의 일부로 당연하게 여겨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음주 사고, 성폭력·몰카 사건, 안전사고가 사회적 문제로 이슈화 되면서, 오늘날 축제를 기획하는 학생회·준비위원회는 주류 판매와 음주 가능 구역, 성폭력·괴롭힘 신고 체계, 무대·관람석의 안전 기준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즉,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았던 축제”에서 “책임과 안전 속에서 즐겨야 하는 축제”로 가치관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2) 후원·브랜드 중심 축제에 대한 피로와 비판
연예인 섭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기업 후원이 늘어나면서, 캠퍼스 곳곳에 브랜드 부스, 시음·시식, 이벤트 참여 미션, 광고 현수막이 늘어났습니다.
이는 학생들에게 “학교 축제인가, 기업 프로모션 행사인가”라는 피로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최근 일부 학교에서는 후원을 줄이거나, 로컬·사회적 기업과 협업하거나, 학생·동문 공연 비중을 높이는 등 “이 축제의 장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우리 축제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다시 묻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3) ‘줄 서서 보는 축제’ vs ‘걸어 다니며 참여하는 축제’
대형 라인업 중심 축제는 메인 무대에 긴 줄이 생기고, 하루의 대부분을 기다리고 관람하는 데 쓰게 합니다.
반면, 플리마켓, 체험 부스, 버스킹 무대, 학과·동아리 작은 공연 등이 풍성한 축제는 학생들이 “캠퍼스를 걸어 다니며 다양한 사람·아이템·이야기를 만나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세대가 바뀌며 ‘한 방에 크게 보는 감동’과 ‘여러 장면을 조금씩 즐기는 경험’ 사이의 선호도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4) ‘축제다운 축제’에 대한 세대별 기준 차이
선배들이 말하는 “요즘은 축제다운 축제가 아니다”라는 탄식과, 후배들이 말하는 “이 정도면 충분히 재밌고 안전하다”는 평가 사이에는 음주에 대한 관점, 선후배 위계에 대한 감각, 안전과 자유의 균형을 보는 시선 차이가 담겨 있습니다.
이 갈등은 단순히 ‘요즘 애들’ vs ‘꼰대’ 구도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축제의 본질로 볼 것인가”를 세대별로 다르게 정의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4. 앞으로의 대학 축제와 기념문화는 어디로 갈까
1) ‘기억할 만한 장면’을 누구나 하나씩 갖는 축제
앞으로의 대학 축제는 거대한 헤드라이너 공연보다, 각자가 참여하고 만들 수 있는 여러 층의 경험이 중요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누군가는 동아리 버스킹에서, 누군가는 학생회 기획 프로그램에서, 누군가는 인권·환경 부스 활동에서, 누군가는 야간 영화 상영이나 토크에서 자기만의 “올해 축제의 장면”을 갖게 되는 구조 말입니다.
이때 축제는 “유명 가수를 보러 가는 날”이 아니라 “나와 친구들의 시간을 하나씩 남기는 기념일”이 됩니다.
2) 다층적인 ‘기념 방식’의 공존
필름 카메라로 축제를 기록하는 복고적 감성, 인스타·틱톡 숏폼, 유튜브 브이로그, 학교 공식 아카이브, 동아리 기록집 등 여러 방식의 기록이 동시에 존재하는 시대에, 대학 축제는 “이 학교에 다녔던 여러 세대의 기억이 한꺼번에 겹쳐지는 장”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졸업생을 초대해 “당신의 대학 축제는 어땠나요?”를 묻고, 그 이야기와 지금의 축제 영상을 함께 남기는 방식의 아카이브도 가능합니다.
3) 가치와 즐거움이 함께 있는 축제에 대한 요구
최근 학생들은 환경 친화적 운영(일회용품 최소화, 다회용 컵), 성평등·차별금지 원칙, 장애·이주·소수자 배려, 학생 노동·알바 처우 개선 등 축제를 둘러싼 ‘정치적·윤리적 조건’에도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대학 축제는 “재미있기만 한 축제”가 아니라 “재미있으면서도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지키는 축제”를 향한 압력을 더 크게 받을 것입니다.
4) 대학 축제를 ‘한 세대의 문화사’로 바라보기
대학 축제를 둘러싼 세대 갈등과 가치관 차이를 단순한 취향 차이로만 볼 것이 아니라, “각 세대가 어떤 세계에서 자랐고, 무엇을 기념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겼는가”를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사 자료로 바라볼 필요도 있습니다.
주점과 대동제, 연예인 라인업, SNS 인증과 해시태그, 인권·환경 부스와 안전 매뉴얼… 이 모든 것은 “한국의 대학생들이 자신의 청춘을 어떤 방식으로 기념해 왔는가”를 보여주는 다양한 얼굴입니다.
결론: 대학 축제는 ‘세대별 청춘의 사용 설명서’
대학 축제는 그저 노는 날, 연예인 보는 날, 술 마시는 날이 아니라, 각 세대가 “우리는 이렇게 연결되고, 이렇게 즐기고, 이렇게 기억하겠다”고 스스로를 설명하는 세대별 청춘의 사용 설명서에 가깝습니다.
어느 세대의 방식이 더 낫다고 단정짓기보다는, 선배 세대의 해방감과 공동체성, 이후 세대의 공연 문화·콘텐츠 경험, 지금 세대의 안전·가치 지향과 기록 방식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축제 문화를 만들어 갈지를 지켜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대학 축제가 누군가에게만 편하고, 누군가에게만 재미있는 날이 아니라, 다양한 학생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때, 우리 축제는 이랬다”고 말할 수 있는 포괄적인 기념문화로 자리 잡을 때, 그 날은 단지 한 번 지나가는 행사날이 아니라 한 세대의 삶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기록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