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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동문회·총회의 의례성과 네트워크

actone 2026. 1. 5. 20:23

학교 동문회·총회의 의례성과 네트워크

학교 동문회·총회의 의례성과 네트워크

학교 졸업생 동문회와 총회는 단순히 오랜만에 모여 추억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학교 졸업생 간 세대를 잇는 네트워크를 재구성하고, 특정한 의례를 반복함으로써 ‘학교 출신’이라는 소속감과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는 공간입니다. 특히 정기총회, 회장단 이·취임식, 장학금 전달, 교가 제창, 기념촬영 등은 하나의 세트 의례처럼 반복되며, 그 안에서 네트워크를 통해 인맥과 정보, 자원이 교환됩니다. 이 글에서는 ①학교 동문회·총회가 갖는 의례적 구조, ②그 속에서 형성되는 네트워크의 특징, ③개인에게 제공되는 기회와 부담, ④폐쇄성·위계성이라는 그림자, ⑤더 포용적인 동문 네트워크를 위한 방향을 살펴봅니다.

1. 동문회·총회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의례 구조

1) 식순이라는 ‘시나리오’
대부분의 학교 동문 총회는 비슷한 흐름을 가집니다.

  • 개회 선언
  • 국민의례 혹은 간단한 묵념
  • 내·외빈 및 선후배 소개
  • 회장 인사말, 교장·총장 축사
  • 사업·회계 보고
  • 감사 보고, 의결
  • 공로패·감사패 수여
  • 장학금 전달
  • 기념 촬영, 뒤풀이(만찬, 친목 행사)

이 반복되는 식순은 마치 연극 대본처럼 “동문이라는 집단이 공식적으로 서로를 확인하는 절차” 역할을 합니다.

특히 회장·임원단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새 회장단이 선출·취임하는 순간, 장학생이 단상에 올라 인사를 하는 순간은 “누가 이 네트워크의 중심에 서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됩니다.

2) 상징물과 제스처: 교가, 교표, 단체사진
총회 말미에 교가 제창, 교기(旗) 입장, 교표가 박힌 현수막·배지, 같은 색 넥타이·스카프 등은 참석자에게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같은 학교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공동체 감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마지막에 모두가 무대 앞에 서서 단체사진을 찍고, “OO중 30회, 31회 다 같이 파이팅”을 외치는 장면은 행사 전체를 하나의 ‘기념 이미지’로 고정시키는 종합 의례입니다.

3) 뒤풀이와 2차로 이어지는 비공식 의례
공식 식순이 끝난 뒤의 만찬, 뒤풀이, 기수별·직능별 소모임은 문서에 남지 않는 또 다른 의례입니다.

이 자리에서 명함이 오가고, 후배의 근황을 묻고, 취업·이직·진학·사업 이야기가 오가며, “다음에 따로 보자”는 약속이 만들어집니다.

즉, 공식 총회는 “네트워크의 틀과 위계를 보여주는 의례”라면, 뒤풀이는 “그 네트워크가 실제로 작동을 시작하는 의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동문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방식

1) 기수·학번 체계와 위계
동문회 네트워크의 기본 단위는 기수(학번)입니다.

동기 모임은 수평적 관계, 선·후배 관계는 나이·학번에 따른 수직적 위계를 기본 전제로 합니다.

이 구조 안에서 후배는 인사·예의를 통해 네트워크에 접근하고, 선배는 ‘챙겨주는 역할’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2) 학교 브랜드와 사회적 자본
특정 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은 입사·승진, 사업·거래, 지역사회 활동에서 비공식적인 신뢰의 근거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동문 총회에서 형성된 관계는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공통 경험”을 기반으로 빠르게 친밀감을 형성하고, 이 친밀감은 곧 “조금 더 믿고 맡겨도 되겠다”는 동질감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는 개인에게는 기회, 정보 접근성의 확대가 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동문이 아닌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벽이 되기도 합니다.

3) 물적·인적 자원의 순환 구조
동문회·총회는 모교 장학금, 복지 기금, 시설 개선 기부 등 금전적 지원을 모으는 창구이기도 합니다.

또한 후배 인턴십 추천, 강연·멘토링, 취업 설명회, 동문 기업 견학 등은 인적 자원을 모교와 후배에게 되돌리는 통로입니다.

이 과정에서 “성공한 선배”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후배”라는 서사가 반복적으로 강조되며, 동문이라는 집단의 자기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강화하기도 합니다.

3. 개인에게 제공되는 기회와 부담

1) 기회: 사회적 안전망이 되어 주는 네트워크
졸업 후 타지에서 생활하거나, 새로운 직장·도시에 적응해야 할 때, 동문 네트워크는 낯선 환경에서의 정서적 지지, 정보 제공, 도움 요청등 내가 갖고있지 못해서 필요한 부분의 지원창구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직을 고민할 때, 진학·유학을 준비할 때, 창업을 시작할 때 먼저 떠올리는 것은 “이 분야에 동문 선배가 있는지” 여부이기도 합니다.

2) 부담: 회비·참석·관계 유지의 압박
반대로, 동문회·총회는 회비 납부, 행사 참석, 선후배 관계 유지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수반하기도 합니다.

특히 경제적 여유가 없거나, 직장·육아로 시간이 부족한 사람에게 “오랜만인데 한 번쯤 나와야지”라는 말은 현실적으로 여건이 되지 않는 상대방에게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3) ‘성공한 동문’ 서사에 맞지 않는 사람들의 위축
총회에서 유명인, 고위직,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동문이 집중 조명을 받을수록, “그 사람들을 위한 행사이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나는 이 자리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위축감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이때 동문 네트워크는 “다양한 삶을 지지하는 공동체”라기보다 “성공한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무대”처럼 느껴질 위험이 있습니다.

4. 동문회·총회 의례가 가진 그림자

1) 폐쇄성과 배제의 문제
동문 네트워크는 본질적으로 특정 학교 출신이라는 기준으로 멤버십을 나눕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학연이 없는 사람을 배제하거나, 공적 영역에서의 공정성을 해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채용·입찰·인사에서 “객관적 기준보다 동문 여부가 더 크게 작용하는 구조”는 사회 전체의 신뢰를 해칠 수 있습니다.

2) 성별·계층·세대 간 불균형
일부 동문회는 남성 중심, 특정 세대 중심, 특정 계층 중심 구조가 고착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 여성 동문, 비정규·프리랜서, 청년·저학번 동문은 회의·총회에서 발언권과 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행사는 “옛 세대의 네트워크를 재확인하는 의례”에 머무르기 쉽습니다.

3) 형식만 남고 내용은 비어 가는 위험
해를 거듭하며 같은 장소, 같은 순서, 같은 인사말, 같은 수상·칭찬이 반복되면, 총회는 “의무적으로 치르는 연례행사”가 되고, 참석자 역시 “인사하고 사진만 찍고 가는 자리”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의례는 필요하지만, 의례를 통해 실제 논의, 실질적 지원, 새로운 연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네트워크는 점차 힘을 잃게 됩니다.

5. 더 건강한 동문 네트워크를 위한 방향

1) 의례를 ‘관계 재설계의 장’으로 활용하기
총회·동문회의 형식을 단순히 유지하기보다, 사업·회계 보고만이 아니라 “올해 동문회가 후배·모교·사회에 어떤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었는지”를 구체적 사례로 공유하고, 다음 해 계획을 소수 임원단이 아니라 참석자 의견 수렴을 통해 결정하는 등 의례를 “스스로의 네트워크를 다시 설계하는 시간”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2) 다양한 삶을 인정하는 스토리 구성
‘성공한 동문’ 몇 명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직업, 다양한 삶의 궤적, 돌봄·활동·창작·지역일 등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동문들의 이야기를 골고루 소개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나도 이 네트워크의 한 부분”이라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청년·여성·소수자의 참여 구조 강화
총회·이사회·준비위원회 등에 청년, 여성, 소수 집단(이주배경·장애 등)이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도록, 임원 구성에 쿼터를 도입하거나, 청년위원회·여성위원회 등 상설 조직을 인정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는 동문회가 “과거의 사람들만 모이는 자리”가 아니라 “미래 세대가 참여해 함께 방향을 정하는 장”이 되도록 돕습니다.

4) 온라인·오프라인 네트워크의 균형
최근에는 동문 카카오톡방, 페이스북·인스타그램 그룹, 온라인 동문 플랫폼 등 디지털 네트워크가 활발합니다.

총회·동문회는 오프라인에서 얼굴을 확인하는 의례, 온라인에서는 상시 소통과 정보 공유, 이 두 가지가 서로를 보완하는 구조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총회에서 논의된 내용·계획을 온라인에서 계속 공유·피드백 받고, 온라인에서 모인 관심사를 오프라인 소모임·행사로 이어가는 방식입니다.

결론: 의례는 ‘형식’이 아니라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의 질문

학교 동문회·총회는 외형적으로는 정형화된 식순, 비슷한 인사말, 반복되는 장면들로 이루어진 익숙한 행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우리는 어떤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은가”, “이 학교 출신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의례 자체는 선악으로 나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의례를 통해 폐쇄적 인맥과 불공정한 기회를 재생산할 수도 있고, 세대를 잇는 지지망과 공적 책임을 확장할 수도 있습니다.

학교 동문회·총회가 위계와 과시의 무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을 응원하고, 모교와 사회를 향한 책임을 함께 나누는 장으로 조금씩 변해 갈 때, 이 의례는 과거의 향수를 반복하는 모임을 넘어 “함께 더 나은 연결 방식을 고민하는 네트워크의 기념 의식”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