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박람회·비엔날레의 기념성 분석

국제 박람회·비엔날레의 기념성 분석
국제 박람회와 비엔날레는 ‘전시’라는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실제로는 특정 시대의 기술·예술·도시 비전, 그리고 국가·도시의 야심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거대한 기념 장치입니다. 19세기 만국박람회가 산업혁명과 제국주의의 상징적 무대였다면, 오늘날 비엔날레는 글로벌 자본과 예술 담론, 지역 정치와 기억이 교차하는 현대의 제의 공간으로 기능합니다. 이 글에서는 ①국제 박람회·비엔날레가 가진 역사적 기념성, ②‘진보’와 ‘미래’를 기념하는 구조, ③도시·국가 브랜드와 결합된 기념 전략, ④비판·저항 담론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기억, ⑤앞으로 이 행사가 지녀야 할 건강한 기념성의 방향을 분석합니다.
1. 박람회와 비엔날레는 원래 무엇을 ‘기념’해 왔나
1) 만국박람회: 산업과 제국의 과시를 기념하는 무대
19세기부터 열리기 시작한 만국박람회는 “인류의 진보”라는 이름을 빌려, 실제로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산업력·과학기술·식민지 지배를 화려하게 전시한 장이었습니다. 여기서 기념된 것은 특정 사건이 아니라 “우리는 이만큼 앞서 있다”는 기술·경제 우위의 상태 자체였습니다.
2) 비엔날레: 현대 예술의 ‘현재’를 주기적으로 기억하는 의식
20세기 이후 본격화된 비엔날레는 2년, 3년 등 일정 주기로 “지금 예술이 무엇을 고민하는지”를 세계에 보여주는 포맷입니다. 이때 기념되는 것은 완성된 과거가 아니라 불안정한 현재, 진행형의 문제의식입니다. 즉, 박람회가 “우리가 이뤄낸 것”을 기념했다면, 비엔날레는 “우리가 아직 풀지 못한 질문들”을 기념하는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반복되는 주기의 힘
국제 박람회·비엔날레는 1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정해진 주기로 돌아오는 구조를 갖습니다. 이 반복은 매 회차마다 “그 시점의 세계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묻는 일종의 주기적 기념 제의로 기능합니다.
2. ‘진보’와 ‘미래’를 기념하는 방식
1) 미래를 미리 전시하는 무대
박람회와 비엔날레는 아직 일상에 보급되지 않은 기술·예술·담론을 “미리 만나보는 곳”으로 홍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박람회에서는 신형 교통수단, 통신 기술, 건축·도시 모델이, 비엔날레에서는 새로운 매체예술, 실험적 퍼포먼스, 데이터·AI·기후위기를 다루는 작업들이 “미래의 조짐”으로 제시됩니다. 이 과정에서 행사는 “이 시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장식적이면서도 상징적인 형태로 기념합니다.
2) 진보 서사의 양면성
문제는 “진보와 혁신”을 기념하는 서사가 종종 환경 파괴, 불평등, 식민적 시선을 미화하거나 가리는 역할을 해왔다는 점입니다. 과거 박람회에는 식민지·타 문화를 ‘전시물’처럼 진열하는 방식이 있었고, 지금의 비엔날레에서도 주변부 국가·소수자의 삶이 트렌디한 콘텐츠처럼 소비되는 위험이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박람회·비엔날레의 공식 슬로건은 “더 나은 미래”, “지속가능성”, “연대”를 내세우며 진보 서사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3) ‘기념’과 ‘선전’의 경계
이때 질문은 명확합니다. 이 행사는 정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와 교훈을 기념하는가, 아니면 특정 국가·도시·기업의 이미지를 선전하는 도구로서만 ‘미래’를 말하는가. 국제 박람회·비엔날레의 기념성은 바로 이 경계에서 평가될 수밖에 없습니다.
3. 도시·국가 브랜드의 기념 전략으로서 박람회·비엔날레
1) “이 도시는 이런 곳”이라는 서사를 각인
국제 박람회·비엔날레는 개최 도시의 상징과 거의 붙어 다닙니다. 예술의 도시, 기술·환경 선도 도시, 역사·전통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도시 등 행사마다 도시가 내세우는 자기 이미지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이 도시는 이런 가치를 기념하는 곳”이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던집니다.
2) 공간과 건축 자체가 기념물로 남는 경우
박람회장, 비엔날레 전시장, 파빌리온, 공원은 행사 이후에도 도시의 상징 건축물·공공공간으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특정 해에 열린 행사만이 아니라, 그와 결합된 도시 재생·개발 프로젝트까지 장기적인 기념물로 기능하도록 만듭니다.
3) 로컬 기억과 글로벌 이미지의 충돌
반면 대형 국제행사를 위해 기존 주민이 밀려나거나, 지역의 삶이 관광·예술 산업에 종속될 경우, 행사가 기념하는 것은 “도시의 화려한 새 얼굴”일 뿐 원래 이곳을 채우던 사람들의 역사와 기억은 주변부로 밀려나기도 합니다. 이럴 때 “누구의 기념을 위해, 누구의 삶이 희생되고 있는가”라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4. 비판과 저항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기념성
1) 공식 전시 바깥의 ‘카운터-비엔날레’
최근 여러 비엔날레에서는 노동, 젠더, 인종, 식민주의, 기후위기를 다루는 비판적 작품들이 늘어났고, 심지어 공식 행사에 맞서 열리는 ‘대안 비엔날레’, ‘카운터-이벤트’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기존 박람회·비엔날레가 기념에서 배제해 온 주변부의 역사를 끄집어내며, “어떤 목소리는 왜 기념되지 않았는가?”를 직접적으로 묻습니다.
2) 기억투쟁의 장으로서 국제행사
재난·전쟁·학살·독재·식민지배와 같은 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전시는 특정 국가·도시의 기억 투쟁을 국제 무대에 올리는 효과를 가집니다. 이때 비엔날레는 단순 미술축제·관광 상품을 넘어, 역사부정과 망각에 맞선 기억의 정치학이 펼쳐지는 장으로 변합니다.
3) 관람객 참여형 기념 의식
최근 전시·박람회에서는 관람객이 직접 메시지를 남기고, 물건을 놓거나 가져가고, 온라인으로 자신의 경험을 이어 쓰는 참여형 작업이 많습니다. 이는 기념의 주체를 “국가·기관·큐레이터”에서 “참여하는 시민”으로 조금이나마 넓히는 시도입니다. 이런 작품들은 “기념은 누가, 어떤 몸짓으로 수행하느냐”를 새롭게 정의하려 합니다.
5. 앞으로의 국제 박람회·비엔날레가 지녀야 할 기념성
1) 승리·성공 서사에서 ‘학습과 성찰’ 서사로
더 이상 “우리의 위대함”만을 기념하는 박람회·비엔날레는 설득력을 얻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요구되는 것은 산업·도시·예술이 남긴 실패와 폭력, 한계까지 포함해 함께 배우고 성찰하는 기념 방식입니다.
2) 포함과 배제의 구조를 스스로 드러내기
행사가 누구를 대표한다고 말할 때, 실제로 누가 초대되지 않았는지, 누구의 목소리가 구조적으로 약화되는지를 공개적으로 점검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기념성이 건강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기념하고, 무엇을 아직 기념하지 못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합니다.
3) 환경·노동을 고려한 ‘책임 있는 기념’
대형 국제행사는 이동, 건축, 설치, 폐기 과정에서 상당한 탄소·자원·노동을 요구합니다. 이제 박람회·비엔날레는 그 자체가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이벤트”가 되지 않도록, 제작 방식, 이동·운송, 안전·노동 환경까지 포함한 윤리 기준을 갖춘 기념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4) 로컬 기억과 글로벌 담론의 균형
국제적 화제성을 좇는 동시에, 개최 도시·지역의 구체적 역사·언어·갈등을 성실히 다루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박람회·비엔날레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글로벌 포맷’이 아니라, 그 장소에서만 가능한 기념의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결론: 거대한 전시를 넘어, 시대를 기억하는 의식으로
국제 박람회와 비엔날레는 화려한 부스와 작품, 인파와 인증샷 너머에서 늘 같은 질문을 받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지금,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으려 하는가?”
이 행사가 승리와 과시의 무대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동시에 마주해야 할 상처와 한계를 정직하게 드러내며, 다양한 주체가 함께 참여하는 열린 기념의 장이 될 때, 국제 박람회·비엔날레의 기념성은 단순한 스펙터클을 넘어 시대를 기록하고, 다음 세대를 향해 배움과 경계를 남기는 기억의 기술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