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폭력 피해자 기념 프로젝트

사이버폭력 피해자 기념 프로젝트
사이버폭력은 한 번의 악성 댓글, 한 장의 유출 사진, 한 번의 단체 채팅방 조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상처는 오랫동안 피해자의 일상, 인간관계, 자존감, 심지어 생명까지 위협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이버폭력 피해자들은 통계 속 숫자로, 짧은 기사 제목으로만 기억된 채 사라집니다. “사이버폭력 피해자 기념 프로젝트”는 이들을 단지 ‘사건의 피해자’가 아니라, 이름과 얼굴과 삶을 가진 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의 책임을 묻는 장기적 기억·예방 프로젝트입니다. 이 글에서는 ①왜 사이버폭력 피해자를 위한 ‘기념’이 필요한지, ②프로젝트의 핵심 목표, ③구체적인 프로그램 구성, ④학교·플랫폼·정부·시민사회가 나눌 역할, ⑤실행 시 고려해야 할 윤리적 기준을 살펴봅니다.
1. 왜 ‘사이버폭력 피해자 기념 프로젝트’인가
1) 숫자와 사건 제목 뒤에 가려진 얼굴들
사이버폭력 관련 뉴스는 “○○학년 학생 극단 선택”, “악플 견디지 못해 연예인 사망” 같은 방식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름은 이니셜로 처리되고, 일부는 아예 익명으로 지나갑니다. 그 결과 피해자는 하나의 사례, 하나의 통계, “안타깝다”는 말 뒤에 숨은 존재가 되기 쉽습니다. 기념 프로젝트는 이 흐름을 거꾸로 돌려,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기억하자”는 방향을 제안합니다.
2) ‘개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폭력임을 명시하기 위해
사이버폭력 피해는 종종 “멘탈이 약해서”, “연예인이면 그 정도는 견뎌야지”, “SNS를 안 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지” 같은 식으로 개인 책임으로 돌려집니다. 피해자를 기념하는 일은 곧 문제의 원인이 개인의 성격이나 선택이 아니라 집단 괴롭힘과 플랫폼 구조, 사회 문화에 있었음을 공적으로 확인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3) 남겨진 사람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하기 위해
사이버폭력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생존자, 피해자의 가족·친구·동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말하기 어려워하고, 비슷한 일을 겪는 다른 사람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기념 프로젝트는 피해자와 생존자, 유가족이 서로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나누고 연대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는 공적 공간을 만드는 시도입니다.
2. 프로젝트의 핵심 목표
1) 기억: 잊히지 않게, 다르게 기억하기
단순한 추모를 넘어 피해자가 살아온 삶, 남긴 관계와 흔적, 그를 둘러싼 구조적 문제까지 함께 기록·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2) 예방: 다음 피해를 막기 위한 사회적 약속
기념은 과거에 대한 예의이면서, 동시에 미래에 대한 다짐이어야 합니다. 프로젝트는 반복되는 유형의 폭력, 플랫폼·학교·언론의 문제를 드러내고 구체적인 개선 요구와 연계되어야 합니다.
3) 치유·연대: 남은 사람들을 위한 안전한 자리
기념 행사가 단지 슬픔을 소비하는 장이 아니라, 피해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비난·호기심의 시선 없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지대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사이버폭력 피해자 기념 프로젝트: 주요 프로그램 구성
1) 온라인 기억관(메모리얼 웹/앱)
익명·가명 중심으로 설계된 온라인 추모·기억 공간을 만듭니다. 여기에는 피해자(또는 가족·친구)가 공개를 동의한 경우 그 사람의 이야기와 사진 일부, 사이버폭력으로 고통받은 사람들의 익명 사연, “그때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모은 문장들이 담길 수 있습니다. 촛불·리본·하트 등 상징적 인터랙션, 위로·연대 메시지 남기기, 도움 기관(상담·법률·의료) 안내 기능을 함께 제공할 수 있습니다.
2) 사이버폭력 피해자 기억 주간(연례 기념 주간)
매년 같은 시기를 “사이버폭력 피해자 기억·연대 주간”으로 정하고, 학교, 지자체, 플랫폼, 언론이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추모식·기억 낭독회, 사이버폭력 예방 교육 주간, 관련 법·정책 토론회, 청소년·청년이 직접 기획하는 캠페인 등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3) 스토리 아카이브 & 구술 기록
피해자·생존자·유가족이 동의하는 범위 내에서 경험을 인터뷰 형태로 기록해 아카이브로 보존합니다. 이때 실명 공개 여부, 세부 내용 범위, 공개 대상(일반 공개/연구·교육용 제한 공개)을 당사자가 직접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예술·미디어 프로젝트
사이버폭력 피해와 회복의 이야기를 영화, 웹드라마, 웹툰, 전시, 음악, 퍼포먼스 등으로 풀어내는 창작 프로젝트를 지원합니다. 예술 작업은 피해 경험을 직접적으로 재현하기보다 감정과 관계, 회복의 과정에 초점을 둘 때 2차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5) 교육·실천 프로그램
“사이버폭력 가해·방관 경험자”를 포함한 청소년·청년 대상 워크숍을 통해 내가 썼던 말 돌아보기, 대체 표현 연습, 피해자 관점 롤플레잉 등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교사·학부모 대상 프로그램에서는 자녀/학생이 피해·가해·방관자일 때 대화하는 법, 디지털 증거 보존·신고 절차를 안내할 수 있습니다.
4. 참여 주체별 역할
1) 학교·교육기관
연 1회 이상 사이버폭력·디지털 시민성 수업을 정규 교육 과정에 편성하고, 기억 주간에 맞춰 추모·예방·회복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합니다.
2) 플랫폼·IT 기업
사이버폭력 피해자 기념 프로젝트에 기술적·재정적 지원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신고 시스템 개선, 가해자 제재 정책, 추천 알고리즘의 혐오·폭력 노출 최소화 등 자사 플랫폼 구조 개선을 병행해야 합니다.
3) 정부·지자체
기념 주간을 공식화하고, 기념 프로젝트에 대한 예산·인력 지원, 공교육·공공 캠페인 연계, 법·제도 개선 논의 테이블 마련의 역할을 맡습니다.
4) 시민단체·전문가 그룹
피해자 지원 경험을 바탕으로 프로젝트 설계에 참여하고, 상담·법률·연구 지원을 제공합니다. 특히 피해자에게 직접 닿는 안내와 보호 장치가 형식에 그치지 않도록 점검하는 역할이 중요합니다.
5. 실행 시 고려해야 할 윤리적 기준
1) 2차 피해 방지
피해 사례를 소개할 때 신상 노출, 사건의 자극적 디테일, 가해자의 구체적 행위 재현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보다 “그 일이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2) 당사자 동의와 통제권
기념 프로젝트의 모든 기록·전시·콘텐츠는 당사자 또는 유가족의 명시적·구체적 동의를 전제로 해야 합니다. 언제든 일부 내용 수정·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와 절차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3) 감정의 안전 장치
온라인·오프라인 행사 모두 참여자에게 감정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는 내용을 미리 알리고, 필요 시 상담·휴식·퇴장 선택이 가능하도록 안내해야 합니다.
4) 정치·상업적 이용 경계
특정 정당·단체의 홍보, 후원금 모금 과도한 강조, 브랜드 광고 삽입 등은 기념 프로젝트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립니다. 후원·협력은 투명하게 공개하되, 피해자 기억과 보호가 항상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맺음말: “기억한다”는 말이 진짜가 되려면
사이버폭력 피해자 기념 프로젝트는 단지 슬픈 이야기를 반복해서 떠올리는 일이 아니라, 이미 잃어버린 삶들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지금도 화면 너머 어딘가에서 조용히 버티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앞으로 이 공간에서 살아갈 세대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약속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드는 작업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장이 추모 글 아래의 관용구에 그치지 않고, 교육, 제도, 플랫폼, 문화의 변화를 향한 구체적 행동으로 이어질 때, 사이버 공간은 조금 덜 잔인하고, 조금 더 안전한 장소로 바뀌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변화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사이버폭력 피해자 기념 프로젝트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