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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희생자 추모와 공공기념식

actone 2025. 12. 24. 16:38

감염병 희생자 추모와 공공기념식

감염병 희생자 추모와 공공기념식

감염병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퍼지는 재난이지만, 그 결과는 사회 곳곳의 얼굴과 이름을 가진 구체적인 사람들의 죽음과 상실로 나타납니다. 이 죽음을 어떻게 애도하고 기억할 것인가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였는지, 앞으로 어떤 사회가 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과도 연결됩니다. 감염병 희생자를 위한 공공기념식은 유가족을 위로하는 장을 넘어, 방역 실패·의료체계·사회적 불평등을 돌아보는 집단적 성찰의 시간입니다. 이 글에서는 ①감염병 희생자 추모가 갖는 의미, ②사적인 애도에서 공공기념식으로의 전환, ③공공기념식 의례 구성의 특징, ④정치·사회적 갈등과 논쟁, ⑤재난 대비·보건 정책과 연결되는 기억의 역할, ⑥앞으로의 과제와 방향을 살펴봅니다.

1. 감염병 희생자 추모의 의미: 숫자를 ‘사람’으로 되돌리는 일

대규모 감염병 사태가 터지면 언론과 통계는 매일같이 “확진자 수”, “사망자 수”를 업데이트합니다.

하지만 이 숫자 하나하나 뒤에는 가족과 친구, 동료가 있고, 병상에서 혼자 눈을 감은 사람, 제대로 작별 인사조차 못한 유가족이 있습니다.

감염병 희생자 추모는 무엇보다도 1) 숫자를 다시 ‘얼굴과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되돌리는 행위입니다. 이름을 부르고, 사진을 걸고, 짧은 생애를 소개하는 순간 “익명의 사망자”는 다시 한 번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소환됩니다.

또한 2) “누가 더 많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는가”를 돌아보게 하는 장입니다. 의료·돌봄·배달·청소 노동자, 취약한 주거 환경에 놓인 사람들, 감염되기 쉬운 직종·계층·지역은 통계 속에서만이 아니라 추모의 언어 속에서도 드러나야 합니다.

그리고 3) ‘잘 싸워준 사람들’을 함께 기억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의료진·방역 인력·돌봄 노동자·자원봉사자 역시 감염 위험 속에서 일상을 버텨낸 존재들입니다. 추모는 희생자를 위해 열리는 자리지만, 동시에 살아남은 이들의 노력과 상처를 인정하는 계기도 됩니다.

2. 사적인 애도에서 공공기념식으로: 기억의 무대가 넓어질 때

처음에는 유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이 조용히 제사를 지내거나, 온라인 추모 글을 올리거나, 병원·요양시설 주변에 꽃과 편지를 두는 방식으로 애도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사회 전체가 감염병의 상흔을 인식하게 되면서, 추모는 점점 공공의 의례로 확대됩니다.

1) 자발적 시민 추모 행동
기념비 건립 추진, 추모 벽화·조형물·나무 심기, “○○ 희생자를 기억하는 날”을 만들자는 청원 등은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입니다.

2) 지자체·국가 차원의 공식 기념식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지방정부나 중앙정부가 추모식을 주관하거나 국가 차원의 추모일 제정을 논의합니다. 이때부터 감염병의 기억은 가족과 지역을 넘어 사회 전체의 역사로 편입되기 시작합니다.

공공기념식은 “개별 죽음을 한자리에 모아 우리 모두의 경험으로 재구성하는 절차”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3. 공공기념식 의례 구성의 특징: 조용한 애도, 말해야 할 말들

감염병 희생자를 기리는 공공기념식에는 몇 가지 반복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1) 침묵과 묵념, 이름 부르기
일정 시간 사이렌 또는 종소리 후 전원이 묵념하는 순간은 “함께 슬퍼한다”는 최소한의 공통 언어입니다. 희생자 중 일부의 이름을 상징적으로 호명하거나, 집단을 대표하는 명단을 낭독하기도 합니다.

2) 추도의 말과 사과의 말
유가족 대표, 의료인, 생존자, 정부·지자체 대표가 차례로 발언합니다. 특히 정부 측 발언에서 방역 과정의 한계, 제도적 실패에 대한 사과와 책임 인식, 재발 방지 약속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나오는지가 중요합니다.

3) 상징물과 장소의 힘
기념비·추모공원·나무숲, 희생자 이름을 새긴 벽은 기념식이 없을 때에도 사람들이 찾아와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됩니다.

4) 온라인 중계와 디지털 참여
감염병 특성상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기 어렵거나, 전국·전 세계에서 함께 참여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라이브 중계, 온라인 헌화·방명록이 중요한 기념 방식이 됩니다.

이 모든 요소는 “조용함과 말하기, 현장과 온라인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추모와 정치, 그 사이의 긴장과 논쟁

감염병 희생자 추모와 공공기념식은 감정적으로는 모두가 슬픔을 나누는 자리이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갈등과 논쟁을 동반합니다.

1) 책임 공방 vs 애도의 장
일부에서는 “추모식은 조용히 애도만 하는 자리여야 한다”고 말하고, 다른 쪽에서는 “희생의 원인을 따지고 책임을 묻지 않는 추모는 또 다른 망각”이라고 비판합니다. 이 둘 사이에서 어떤 수준의 비판과 정치적 발언이 기념식에 포함될 것인지는 늘 논쟁거리입니다.

2) 희생자 범위와 호명 방식
감염병으로 숨진 사람만이 대상인지, 과로와 스트레스로 쓰러진 의료인·방역 인력, 생활고로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까지 포함할지에 따라 기념의 의미는 달라집니다.

3) 정권·정치 성향에 따른 기념식 톤 변화
정권이 바뀌면 기념식 규모와 톤, 연설의 내용, ‘실패’와 ‘책임’에 대한 언급 정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같은 날짜, 같은 장소라도 매년 다른 메시지가 흐르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공공기념식은 “기억을 둘러싼 정치”가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5. 기억에서 준비로: 추모가 재난 대응에 주는 교훈

감염병 희생자에 대한 추모가 단지 과거를 되짚는 데 그치지 않으려면, 그 경험을 다음 재난에 대한 준비와 연결해야 합니다.

1) 보건·의료체계의 취약점 드러내기
중환자실·병상 부족, 지역·계층 간 의료격차, 공공보건 인력의 열악한 처우는 추모 발언과 보고서 속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됩니다.

2) 사회적 취약계층 보호 정책 강화
누구에게 감염 위험이 더 컸는지, 누가 경제적·정서적 피해를 더 크게 입었는지를 기억 속에 남겨야 다음 위기 때 더 촘촘한 보호 정책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3) 공동체 신뢰 회복과 정보 공개 원칙
감염병 동안 정보 은폐·왜곡, 혐오와 낙인이 문제 되었다면, 기념식과 관련 논의를 통해 투명한 정보 공개, 차별 없는 소통 원칙을 다음 재난 대응의 기준으로 세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추모는 “끝났던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집단적 학습 과정”입니다.

6. 결론: 애도의 형식을 넘어, 함께 살아남기 위한 약속으로

감염병 희생자 추모와 공공기념식은 비극을 아름답게 포장하기 위한 의식이 아니라, 누구의 삶이 더 쉽게 위태로워지는 구조였는지, 어떤 선택과 정책이 누군가의 생존을 좌우했는지, 우리가 서로를 충분히 지키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되묻게 만드는 자리입니다.

이 기념식이 의미를 가지려면

1. 희생자를 숫자가 아닌 이름과 이야기로 기억하고
2. 유가족과 생존자의 목소리를 가장 앞에 세우며
3. 책임과 실패를 피하지 않는 정직한 언어가 사용되고
4. 매년 구체적인 변화와 성과를 점검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그럴 때 감염병 희생자를 위한 공공기념식은 “이미 지나간 재난의 추억”이 아니라, “다음 재난에서 더 적은 희생으로 서로를 지켜 내겠다는 사회적 약속”으로 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