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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부정에 맞선 기억투쟁 기념일

actone 2025. 12. 22. 13:15

역사부정에 맞선 기억투쟁 기념일

역사부정에 맞선 기억투쟁 기념일

학살, 식민지 지배, 독재, 전쟁범죄처럼 한 사회의 뿌리를 뒤흔든 사건일수록,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런 일은 없었다”, “과장된 이야기다”, “이제 좀 잊을 때도 됐다”는 말이 뒤따르기 쉽습니다. 이런 역사부정과 축소에 맞서, 희생자의 이름을 불러내고 기록을 다시 꺼내며 “그날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날들이 바로 ‘기억투쟁 기념일’입니다. 이 글에서는 ①역사부정과 기억투쟁의 개념, ②기억투쟁 기념일이 등장한 배경, ③국가 공식 기념일과 시민이 만든 기념일의 긴장, ④교육·예술·거리행동이 결합된 기억 실천, ⑤기억투쟁 기념일이 가진 한계와 위험, ⑥앞으로 이 날들이 가져야 할 의미를 살펴봅니다.

1. 역사부정과 기억투쟁, 무엇을 두고 싸우는가

역사부정(negationism)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닙니다. 보통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 학살·전쟁범죄·독재의 책임을 축소하거나 부인
  • “증거가 없다”, “숫자가 과장되었다”, “정당한 자위였다”는 식의 왜곡
  • 피해자·유족을 “과장하는 사람들”, “국익을 해치는 자”로 몰기
  • 가해세력·독재자를 미화하거나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포장

이에 맞선 기억투쟁(memory struggle)
“사실과 기록, 증언을 통해 역사의 핵심을 지키려는 집단적 노력”입니다.

기억투쟁 기념일은 이 싸움을

  • 하루 또는 일정 기간에 압축해
  • 집중적으로 기록을 되살리고,
  • 피해자의 목소리를 확성기로 키우며,
  • 왜곡 서사에 공개적으로 맞서는

상징적 시간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기억투쟁 기념일이 등장한 역사적 배경

이런 기념일이 생겨난 데에는 몇 가지 공통된 흐름이 있습니다.

1) 가해세력의 생존과 권력 유지
독재정권이 무너진 뒤에도 옛 권력자·군부·관료·언론 일부는 그대로 살아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책임을 줄이거나 과거를 미화해야 현재의 정치적·사회적 지위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날”의 의미를 둘러싼 싸움이 시작됩니다.

2) 피해자의 늦은 목소리
피해자·유족은 오랫동안 “말해 봐야 달라지는 게 없다”, “또 공격받을까 두렵다”는 이유로 침묵을 강요당하기도 합니다. 세월이 흘러 민주화, 인권 담론의 성장, 국제사회의 연대 등을 계기로 뒤늦게 입을 연 피해자들이 “우리가 겪은 일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특정 날짜를 중심으로 기억운동이 조직됩니다.

3) 국제인권규범과 연대의 확산
전쟁범죄·반인도범죄·집단학살에 대한 국제규범이 강화되면서 “진실을 알 권리”, “기억할 권리” 자체가 인권의 일부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이 흐름 속에서 각국의 비극적인 사건들이 국제기념일, 혹은 지역·도시 차원의 추모일로 제안·확대되고, 기억투쟁 기념일도 국경을 넘는 연대의 계기가 됩니다.

3. 국가 공식 기념일 vs 시민이 만든 기억투쟁의 날

기억투쟁 기념일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1) 국가가 승인한 공식 기념일
국회·정부 결정으로 어떤 학살·쿠데타·민주화운동을 공식 기념일로 지정하는 경우입니다.

장점
교과서·공교육과 연계되며, 공휴일·공식행사로 사회 전체에 널리 알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념식의 형식화, 책임을 흐리는 모호한 표현, 특정 정권의 입맛에 맞는 해석 강조 등 “무디게 만드는 힘”도 함께 작동할 수 있습니다.

2) 시민·피해자가 만든 비공식 기념일
국가가 인정하지 않거나, 공식 명칭·서사에 동의하지 못하는 피해자·시민이 별도로 정한 날짜입니다. 예를 들면 “학살 책임 부정에 항의하기 위해 모이는 날”, “망각과 왜곡에 맞서 거리로 나오는 날” 등입니다.

이 날에는 집회, 행진, 좌담회, 예술행동, 온라인 캠페인 등이 자발적으로 조직됩니다. 이런 기념일은 훨씬 날카로운 언어와 요구를 내걸지만, 동시에 탄압·무시·왜곡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실제 현실에서는 국가 공식 기념일과 시민이 만든 기억투쟁의 날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누가 역사의 주인인가”를 두고 경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4. 교육·예술·거리 행동이 결합된 기억투쟁 기념 문화

기억투쟁 기념일의 특징은 단순 추모식을 넘어서 교육·예술·행동이 결합된 장이라는 점입니다.

1) 교육 활동
학교·대학·시민교육 현장에서 특강, 증언회, 다큐멘터리 상영, 세대 간 대화 프로그램이 열립니다. 교과서에 실리지 못한 이야기, 지역·소수집단의 기억, 여성·아동·이주민 피해 서사가 이 날을 계기로 부각되기도 합니다.

2) 예술과 퍼포먼스
거리 공연, 추모 콘서트, 사진·영상 전시, 벽화, 설치미술 등은 말로 하기 어려운 분노·죄책감·슬픔을 상징적 이미지로 드러냅니다. 예술은 역사부정 세력의 차가운 논리를 넘어 “이 사건이 인간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를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3) 거리행동과 캠페인
피켓, 현수막, 침묵 행진, 이름을 부르는 의식, 재현 퍼포먼스, 플래시몹 등은 일상의 공간을 “잠시 멈춰 서서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장소”로 바꿉니다. 온라인에서는 해시태그, 카드뉴스, 영상, 증언 공유, 역사부정 발언·콘텐츠 신고 캠페인이 동시에 진행되기도 합니다.

기억투쟁 기념일은 이렇게 “기념 = 과거 이야기 + 현재 행동 + 미래 약속”이 한 번에 모이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5. 기억투쟁 기념일이 가진 한계와 위험

그러나 이 날들이 항상 순기능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1) 피로감과 ‘기념의 일상화’
매년 비슷한 행사·연설·슬로건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또 그날이네” 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지나칠 위험이 있습니다. 특히 당사자가 아닌 세대에게는 “의무감으로 치르는 행사”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2) 정치적 진영 싸움으로 축소될 위험
한쪽은 과거 책임을 강조하고, 다른 쪽은 그 책임을 줄이려 할 때, 기억투쟁 기념일은 “이념 대결의 상징일”로만 소비되기 쉽습니다. 이 경우 실제 피해자와 유가족의 목소리는 진영 싸움의 소음 속에 묻히게 됩니다.

3) 기억의 위계와 배제
큰 사건과 유명한 희생자는 크게 기념되는 반면, 주변부 지역, 소수민족, 여성·아동·장애인의 피해는 기억투쟁의 언어 속에서도 또다시 배제될 수 있습니다. “누구의 역사를 중심에 두고 싸우고 있는가”는 기억투쟁 내부에서도 계속 점검해야 할 질문입니다.

4) 행동과 제도 변화의 단절
기념일에는 강렬한 구호와 행진이 있지만, 정작 1년 내내 이어져야 할 법·제도 개혁, 교육 변화, 연구·기록 작업은 미진한 채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기억투쟁 기념일은 “일 년에 하루 분노를 표출하고 잊는 날”로 축소될 위험이 있습니다.

6. 결론: 기억투쟁 기념일이 지켜야 할 질문들

역사부정에 맞선 기억투쟁 기념일은 단지 과거를 아름답게 기리는 시간이 아니라, 어떤 사실을, 누구의 목소리로, 어떤 책임을 전제로 기억할 것인지를 둘러싼 치열한 선택의 결과입니다.

이 날들이 진짜 힘을 갖기 위해서는,

1. 피해자·유가족·당사자가 기념일의 설계와 운영의 중심에 설 것
2. 역사부정·축소·왜곡에 구체적인 근거와 자료로 맞설 것
3. 기억을 교육·법·제도·언론·문화 변화와 연결할 것
4. “누가 기억에서 빠져 있는가?”라는 질문을 항상 함께 던질 것

이 네 가지가 중요합니다.

결국 기억투쟁 기념일은 “과거를 놓치지 않기 위한 싸움”이자, “미래에 같은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한 약속”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망각과 부정, 왜곡이 반복되는 시대일수록, 이 날들이 던지는 질문은 더 날카로워져야 하고, 기억투쟁은 더 많은 사람의 일상 속 실천으로 번져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