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관련 세계 기념일과 도시권 담론

도시 관련 세계 기념일과 도시권 담론
최근 몇 년 사이 유엔과 국제기구가 제정한 각종 ‘도시 관련 세계 기념일’이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세계 도시의 날, 주거·정착을 다루는 날, 지속가능한 도시를 주제로 한 기념일 등은 표면적으로는 “도시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자”는 캠페인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도시권(right to the city)’이라는 중요한 정치적 개념이 숨어 있습니다. 누구나 안전한 집에 살고, 이동하고, 일하고, 쉴 권리가 있다는 말은 곧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과 직결됩니다. 이 글에서는 ①도시 관련 세계 기념일이 등장·확산된 배경, ②도시권 담론의 핵심 의미, ③국제 기념일이 도시 의제를 구성하는 방식, ④시민사회가 기념일을 통해 도시권을 재해석하는 흐름, ⑤행사성을 넘어 실제 도시권을 확장하기 위한 과제를 살펴봅니다.
1. 도시 관련 세계 기념일의 등장과 확산 배경
20세기 후반 이후 인류의 삶의 무게중심은 빠르게 도시로 이동했습니다.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미 도시에 살고 있고, 그 비율은 앞으로도 계속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며, 메가시티, 광역도시권, 거대 교외 지역은 하나의 ‘일상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도시화가 곧 삶의 질 향상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도시 곳곳에는 비공식 정착지와 슬럼, 주거비 폭등과 젠트리피케이션, 교통·환경·소음·대기오염, 홈리스와 이주민, 비공식 노동의 확대, 치안과 감시, 치안 불평등 같은 문제가 함께 존재합니다.
유엔과 국제기구가 도시 관련 세계 기념일을 만든 이유는, 이 복잡한 도시 문제를 “각국의 내부 사정”이 아니라 인류 공동의 과제, 국제 의제로 끌어올리기 위해서입니다.
도시 관련 세계 기념일은 대체로 지속가능한 도시와 공동체, 적정 주거와 기본 서비스, 도시 빈곤과 불평등, 기후위기와 도시 회복력, 포용적·안전한 공공공간 같은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우며, 도시가 단순한 행정 단위가 아니라 인권과 민주주의, 환경, 경제를 가로지르는 핵심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2. ‘도시권’이란 무엇인가: 집을 넘어 도시 전체에 대한 권리
도시 관련 세계 기념일을 이해하려면, 먼저 ‘도시권(right to the city)’이라는 개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도시권은 단지 “집에서 쫓겨나지 않을 권리”를 넘어, “도시의 자원·공간·결정에 함께 참여할 권리”를 뜻하는 폭넓은 개념입니다.
조금 더 풀어보면, 도시권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요소가 포함됩니다.
1) 주거권
물·전기·위생·안전이 보장되는 집에 살 권리, 강제퇴거·철거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저소득층을 위한 적정한 공공·사회주택 공급 등이 포함됩니다.
2) 접근권
대중교통, 공원, 학교, 병원, 공공시설, 문화공간에 물리적·경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권리, 장애인·노인·아동·이주민도 배제되지 않고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권리가 중요합니다.
3) 참여권
도시 계획, 재개발, 교통·환경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거주민이 의견을 내고 영향을 미칠 권리, 주민투표·공청회·참여예산 등 참여 장치의 보장을 포함합니다.
4) 존엄과 안전의 권리
치안과 공공질서가 특정 집단(청년, 이주민, 노숙인)을 차별하지 않고 모두의 안전을 위해 작동해야 한다는 요구, 경찰·감시 시스템이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견제할 권리가 여기에 속합니다.
5) 도시의 의미를 함께 바꿀 권리
도시를 단지 소비·투자 시장이 아니라 공동체와 기억, 다양한 삶의 실험 공간으로 만들어 갈 권리입니다.
도시권 담론은 결국 이렇게 묻습니다.
“도시는 투자자와 개발업자, 관광객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가?”
3. 도시 관련 세계 기념일이 구성하는 ‘공식 도시 서사’
도시 관련 세계 기념일에서 발표되는 국제기구·정부의 메시지를 보면, 도시에 대한 공식 서사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1) ‘지속가능한 도시’와 SDGs
국제기구는 도시에 관한 기념일을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연결해 친환경 교통, 에너지 효율 건축, 스마트시티, 재난 대비·회복력 같은 키워드를 강조합니다. 이 서사에서는 도시가 기후위기·자원 소비의 문제이자 동시에 해결의 실험실로 그려집니다.
2) ‘포용적 도시’와 사회통합
공식 메시지는 빈곤지역·비공식 정착지 개선, 이주민·난민·장애인·여성의 도시 참여, 차별 없는 공공서비스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실제 정책에서는 치안 강화와 관리, 도시 미관 개선을 이유로 한 강제퇴거·노점상 단속이 “정비”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기도 합니다.
3) ‘창조도시·혁신도시’ 담론
일부 기념일과 행사에서는 도시를 스타트업, 디지털 인프라, 문화·예술 산업의 중심지로 홍보하는 메시지가 강하게 드러납니다. 이때 도시권은 혁신과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브랜드”로 축소될 위험도 있습니다.
즉, 도시 관련 세계 기념일의 공식 서사는 지속가능성·포용·혁신이라는 긍정적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안에서 “누가 우선 보호·지원되는지”에 따라 도시권의 실제 내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4. 시민사회가 재해석하는 도시 관련 기념일과 도시권
도시 관련 세계 기념일은 시민사회와 도시 운동에게도 중요한 정치적 장입니다.
1) 강제퇴거·젠트리피케이션 문제 제기
도시권 운동은 기념일을 계기로 재개발·재건축 과정에서의 강제퇴거, 임대료 폭등, 원주민·상인의 축출 문제를 국내외 여론에 알립니다. “도시권은 개발 이익보다 앞선다”는 메시지는 도시 관련 국제의 날 구호와 결합해 강한 상징성을 얻습니다.
2) 홈리스·이주민·비공식 노동자의 도시권
거리 노숙인, 이주노동자, 노점상, 플랫폼 라이더 등 도시의 가장 취약한 집단은 공간과 제도의 경계 밖으로 밀려나기 쉽습니다. 기념일 전후로 이들의 행진·문화제·증언 집회가 열리며, 공공시설 이용 권리, 단속·폭력 금지, 최소한의 주거·위생·안전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집니다.
3) 젊은 세대의 주거·생활권 요구
집값·임대료 상승, 비정규 노동, 학자금 대출과 불안정한 일자리로 인해 청년 세대는 도시 안에서도 “정착할 권리”를 누리기 어렵습니다. 도시 관련 기념일은 청년 주거권, 공유주택·공공임대, 교통·문화·휴식 공간에 대한 세대별 요구를 모으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4) 로컬 커뮤니티와 ‘권리로서의 공공공간’
공원, 골목, 시장, 하천, 놀이터 등 일상의 공공공간은 도시권을 체감하는 핵심 장소입니다. 주민·예술가·활동가는 도시 관련 기념일을 활용해 걷기 축제, 골목 영화제, 시민 마켓, 벽화와 퍼포먼스 등을 열며 “이 공간은 우리의 것”이라는 메시지를 시각화합니다.
이처럼 시민사회는 도시 관련 세계 기념일을 단지 “도시를 예쁘게 꾸미는 날”이 아니라 “도시를 되찾는 날”로 재해석하려고 합니다.
5. 행사성을 넘어, 실제 도시권을 확장하기 위한 과제
도시 관련 세계 기념일과 도시권 담론이 실제 도시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1) 지표와 책임 구조 만들기
기념일에 멋진 슬로건을 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도시별로 주거비 부담률, 비공식 정착지 규모, 홈리스 수, 대중교통 접근성, 녹지·공공공간 면적, 참여예산·시민참여 제도 활용도 등을 측정하고 공개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다음 해 같은 기념일에 “어디가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점검하는 구조가 있어야 도시권 담론이 힘을 갖습니다.
2) 당사자 참여의 제도화
도시 정책 결정 과정에 저소득층, 이주민, 장애인, 청년·아동, 노인, 여성, 소상공인과 비공식 노동자 등이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도시 관련 기념일은 이런 참여 구조를 소개·실험·확대하는 계기로 쓰일 수 있습니다.
3) 도시권을 헌장·조례·법으로 구체화하기
‘도시권’이 추상적 구호에 머물지 않고 도시 헌장, 인권 선언, 지자체 조례, 국가 법률 등으로 구체화될 때, 주민은 자신의 권리를 근거로 요구·소송·운동을 펼칠 수 있습니다. 기념일을 계기로 도시권 관련 규범과 제도를 점검·보완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4) 기후·디지털·안전 의제와의 결합
앞으로 도시권은 폭염·홍수·대기오염, 감시 기술과 스마트시티, 치안·범죄와 인권 사이의 균형 등 새로운 의제와 결합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시 관련 세계 기념일이 이런 새로운 쟁점을 담아내지 못하면, 실제 도시 변화에서 뒤처질 위험이 있습니다.
결론: 도시 관련 세계 기념일은 누구의 도시를 말하는가
도시 관련 세계 기념일과 도시권 담론을 함께 놓고 보면, 이 날짜들은 단지 “도시에 나무를 더 심자”, “깨끗한 거리를 만들자”는 캠페인의 날이 아니라, 도시가 누구를 위해 설계되고 운영되는지, 그 도시에서 누가 살 권리와 목소리를 인정받는지를 매년 다시 묻는 정치적 시간표입니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기념일은 개발업자와 투자자의 언어로 도시를 말하는가, 아니면 거기 사는 사람들의 언어로 도시를 말하는가?”
도시 관련 세계 기념일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씩 바꿔 나갈 때, 도시권은 공허한 슬로건이 아니라 구체적인 공간, 제도, 예산, 지표로 체감되는 “살아 있는 권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