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식기념일의 필요성

지식은 인류가 축적해 온 가장 중요한 공적 자산이지만, 우리의 일상 속에서는 종종 너무 당연한 것으로 취급됩니다. 스마트폰으로 언제든 검색할 수 있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진짜 지식인지, 누가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는지, 지식이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한 질문은 뒷전으로 밀리기 쉽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 세계가 함께 ‘지식’을 화두로 삼는 세계 지식기념일을 가진다면, 단지 학자와 학생만을 위한 날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배움과 비판적 사고, 지식의 공공성을 다시 생각해 보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①지식기념일이 무엇을 기념해야 하는지, ②지식 격차와 디지털 격차를 드러내는 역할, ③평생학습과 시민성을 강화하는 기능, ④연구·교육·도서관 생태계를 비추는 거울, ⑤가짜뉴스와 혐오에 맞서는 사회적 장치로서의 의미, ⑥단순한 ‘행사’가 아닌 장기 계획의 기준일로서의 필요성을 살펴봅니다.
1. 세계 지식기념일은 무엇을 기념하는 날이어야 할까
‘지식’은 단순히 정보의 양이 많다는 뜻이 아니라, 사실을 검증하고, 서로 다른 관점을 비교하며, 공익에 기여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된 이해와 통찰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세계 지식기념일은 다음을 함께 조명하는 날이 될 수 있습니다.
- 지식의 공공성 – 지식이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 공공재라는 점
- 지식의 책임성 – 지식을 가진 개인과 기관이 사회와 미래 세대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지는지
- 지식 생산자와 전달자에 대한 존중 – 연구자, 교사, 도서관·아카이브 종사자, 언론, 오픈소스·오픈지식 운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노력을 기리는 일
다시 말해, 세계 지식기념일은 “지식을 가진 자가 더 많이 가진 사회”가 아니라 “지식에 더 넓게 접근할 수 있는 사회”를 향한 약속을 다지는 날이어야 합니다.
2. 지식 격차와 디지털 격차를 드러내는 계기
오늘날 인류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생산하지만, 그 정보와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불평등하게 나뉘어 있습니다.
- 국가·지역 간 교육 격차
- 도시와 농촌, 계층에 따른 학습 환경의 차이
- 장애 여부, 언어, 이주·난민 여부에 따른 정보 접근의 장벽
-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 보유 여부에 따른 디지털 격차
이 모든 문제는 “누가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직결됩니다.
세계 지식기념일이 있다면, 이 날을 전후해 국가별 문해력·학업 성취도·디지털 접근성 통계, 도서관·공공 와이파이·오픈 콘텐츠 인프라 현황, 저소득층·소수자 대상 교육 프로그램의 실태 등을 집중적으로 공개·토론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기념일은 “많은 사람이 배운다”는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어디에서, 누가, 얼마나 뒤처져 있는가”를 보여 주는 현실 점검의 장이 됩니다.
3. 평생학습과 시민성을 강화하는 날
지식이 필요한 것은 학생 시절에만이 아닙니다. 기술·직업·정치·기후·복지·보건 등 거의 모든 영역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평생학습은 생존 전략이자 민주주의의 기반입니다.
세계 지식기념일을 통해 각 사회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누구나 저렴하거나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구조가 갖춰져 있는가
- 노동자·돌봄 제공자·노인·이주민 등 시간과 비용의 제약이 큰 사람들에게 실제로 어떤 학습 기회가 열려 있는가
- 시민이 정책·선거·사회 이슈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판단하기 위한 시민교육·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얼마나 충분한가
이 날을 중심으로 평생교육 기관·도서관·온라인 강좌 플랫폼이 무료 또는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학교에서도 “우리가 왜 배우는가, 지식을 어디에 쓰고 싶은가”를 함께 성찰하는 수업을 진행한다면, 세계 지식기념일은 “시험을 위한 공부”에서 “삶과 공동체를 위한 학습”으로 관점을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4. 연구·교육·도서관 생태계를 비추는 거울
지식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습니다. 연구자와 과학자의 오랜 실험과 사색, 교사와 교육자의 교육 실천, 사서와 아카이브 전문가의 수집·보존·분류 작업, 저자·언론·창작자의 기록과 해석 활동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집니다.
세계 지식기념일은 이 생태계를 조명하는 날이 될 수 있습니다.
1) 연구자의 노동과 연구환경
장기적·기초 연구의 중요성, 연구 윤리와 투명성, 불안정 고용과 과도한 경쟁의 문제 등을 공론화하여 연구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2) 교사와 교육자의 전문성
단순 전달자가 아닌 지식을 해석하고 연결하는 ‘지적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인정하고, 과도한 행정·입시 압력 속에서 학습자 중심의 교육을 할 수 있는 조건을 요구하는 계기가 됩니다.
3) 도서관·기록·아카이브의 가치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 지역 기록관, 디지털 아카이브가 단순 서비스 기관이 아니라 지식 민주주의의 핵심 인프라임을 상기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처럼 세계 지식기념일은 “지식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라는 착각을 걷어내고, 지식 생산·보급에 투입되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인정하게 만듭니다.
5. 가짜뉴스와 혐오에 맞서는 사회적 장치
지식의 공공성이 약해질수록, 사회는 루머·음모론·가짜뉴스·혐오발언이 활개 치기 좋은 환경이 됩니다. 사실 확인보다 감정 자극이 빠르게 퍼지고, 복잡한 문제도 단순한 선악 구도로 소비되며, 과학적 근거보다 인기 있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고민입니다.
세계 지식기념일은 이런 문제를 다루는 집중적인 교육·캠페인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 학교와 언론, 플랫폼이 함께 팩트체크 워크숍,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 혐오 표현과 차별을 다루는 토론회를 열고,
- 시민단체와 전문가가 “정보를 비판적으로 읽는 방법”, “알고리즘과 추천 시스템 이해하기” 같은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며,
- SNS에서는 검증된 지식 콘텐츠를 공유하고 가짜뉴스를 구분하는 체크리스트를 확산시키는 캠페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세계 지식기념일은 “지식 없는 정보 소비”에서 “비판적 사고를 동반한 정보 사용”으로 나아가는 사회적 안전장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6. 결론: 단 하루가 아니라 1년을 설계하는 기준일
세계 지식기념일의 필요성은 결국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지식의 공공성과 책임을 함께 상기시키고
- 지식·교육·정보 접근의 불평등을 드러내며
- 평생학습과 시민성, 연구·교육·도서관 생태계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 가짜뉴스와 혐오에 맞서는 비판적 사고 문화를 강화하는 것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기념일 하루만 잘 보내자”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세계 지식기념일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각 나라와 지역이 이 날을 기준으로 지난 1년의 성과와 부족함을 점검하고, 다음 1년 동안 어떤 교육·연구·도서관 정책을 개선할지, 어떤 취약 집단의 지식 접근을 최우선으로 도울지, 어떤 시민 교육과 미디어 리터러시 프로그램을 확대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이정표가 되어야 합니다.
지식을 기념한다는 것은 지식 그 자체를 찬양하는 일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더 나은 지식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삶과 공동체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집단적 약속을 다시 쓰는 일입니다. 세계 지식기념일은 바로 그 약속을 달력 위에 또렷하게 적어 두는 날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