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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보훈기념일의 역사

actone 2025. 12. 8. 15:30

세계 보훈기념일의 역사




전쟁과 군대, 희생과 기억은 어느 나라에서나 국가 정체성과 깊이 얽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국가들은 전쟁 희생자와 참전용사를 기억하기 위해 ‘보훈기념일’을 제정해 왔습니다. 1·2차 세계대전, 탈식민과 냉전, 그리고 오늘날의 평화·인권 담론까지, 보훈기념일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크게 변해 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①보훈기념일의 개념, ②1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추모일의 탄생, ③2차 세계대전과 탈식민의 시대에 확산된 다양한 기념일, ④냉전과 이념 갈등 속 보훈의 정치화, ⑤현대 사회에서 ‘추모·평화·비판적 기억’이 교차하는 흐름을 중심으로 세계 보훈기념일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1. 보훈기념일은 무엇을 위한 날인가

‘보훈(報勳)’이라는 말은 넓게 보면 나라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을 세운 사람을 기억하고 예우한다는 뜻입니다. 세계 각국의 보훈기념일은 이름은 조금씩 달라도, 대체로 다음과 같은 공통된 목적을 갖습니다.

첫째, 전쟁·군사 활동의 희생을 기억하는 기능입니다. 전투 중 전사한 군인, 부상·후유증으로 인해 고통받는 참전용사, 군사작전과 폭격, 학살로 희생된 민간인까지 각 사회가 “영웅” 혹은 “피해자”로 인정하는 대상들을 기리는 날입니다.

둘째, 국가와 공동체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기능입니다. “이 희생 덕분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통해 국가 체제와 현재의 정치 질서를 정당화하는 역할도 수행합니다.

셋째, 평화와 재발 방지의 다짐입니다. 특히 20세기 후반 이후의 보훈기념일은 단순한 군사적 영웅 서사를 넘어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평화·인권 메시지와 결합되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즉, 보훈기념일은 희생을 기리는 동시에, ‘우리가 어떤 전쟁과 어떤 평화를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 정치·문화적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1차 세계대전 이후: 근대적 ‘추모의 날’의 탄생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의미의 근대적 보훈기념일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첫째, 정전협정일에서 추모일로 – 11월 11일입니다. 1918년 11월 11일, 1차 세계대전의 서부전선에서 정전협정이 발효된 시각(11시)을 기념해 영국·프랑스·캐나다·호주 등에서는 이 날을 ‘추모의 날(Remembrance Day)’ 혹은 유사한 이름으로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승리와 종전을 축하하는 성격도 강했지만, 전쟁의 피해와 참호전의 참상을 기억하는 분위기가 점점 강해지면서, 희생자 추모와 반전의 메시지가 전면에 나서는 날이 됩니다.

둘째, 양귀비 꽃(Poppy)의 상징입니다. 유럽 전선의 전장을 뒤덮은 붉은 양귀비 꽃은 1차 대전 희생자를 상징하는 꽃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영연방 국가에서는 11월 11일 전후에 가슴에 양귀비 배지를 달고, 침묵의 2분간 묵념을 하는 의례를 이어 갑니다.

셋째, 미국의 ‘재향군인의 날(Veterans Day)’입니다. 미국도 11월 11일을 한때 ‘휴전일(Armistice Day)’로 기념하다가, 2차 대전·한국전쟁 등 이후 모든 참전용사를 포괄하는 ‘재향군인의 날(Veterans Day)’로 의미를 확장했습니다. 이 날은 “전몰자 추모”보다는 살아 있는 참전용사에 대한 존중과 복지, 사회적 인식을 강조하는 날로 운영됩니다.

1차 세계대전은 전례 없는 대량살상을 낳았고, 그 충격 속에서 “승리의 축제”가 아니라 “침묵과 묵념의 추모일”이라는 보훈기념일의 전통이 태어났습니다.

3. 2차 세계대전, 탈식민, 그리고 각국의 ‘승리·희생’ 기념일

2차 세계대전과 탈식민의 파도는 새로운 보훈기념일의 물결을 만들어 냈습니다.

첫째, 유럽과 러시아의 ‘승리 기념일’입니다. 나치 독일의 패망과 유럽 전선의 종전을 기념하는 ‘승전기념일(Victory in Europe Day, VE Day)’은 서유럽 여러 나라에서 5월 초·중순에 기념됩니다. 러시아와 일부 구소련 국가에서는 5월 9일 ‘전승절(День Победы)’이 막대한 전쟁 피해와 “대조국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날로, 군사 퍼레이드와 보훈행사가 결합된 대규모 국가행사로 자리잡았습니다.

둘째,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기념일입니다. 일본의 패전과 아시아·태평양 전쟁의 종식을 둘러싸고 각국은 서로 다른 날짜와 명칭의 기념일을 운영합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해방과 독립”, “태평양전쟁 종전”, “점령과 폭격 희생자 추모”를 주제로 보훈·평화 기념일을 제정했습니다.

셋째, 탈식민과 독립의 보훈기념일입니다. 2차 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벗어난 나라들은 독립전쟁, 항일·항식민 투쟁, 해방전쟁 등의 희생자를 기리는 날을 보훈기념일 혹은 독립기념일과 결합해 운영합니다. 이 경우 보훈기념일은 단지 군인의 희생뿐 아니라, 독립운동가, 민간 저항세력, 시민 희생자까지 포괄하는 “민족해방의 기념일” 성격을 띱니다.

넷째, 한국의 현충일과 6·25 참전 기념입니다. 한국의 6월 6일 현충일은 한국전쟁, 독립운동, 각종 군사·경찰·공무 수행 중 희생된 이들을 넓게 기리는 보훈기념일입니다. 6월 하旬에는 6·25 한국전쟁 발발일과 연계해 참전용사 초청행사, 추모식, 국제 참전국과의 교류행사 등이 이어지며, 보훈의 범위와 대상에 대한 논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시기 보훈기념일의 가장 큰 특징은 “누구의 승리인가, 누구의 희생을 중심에 둘 것인가”를 두고 국가 정체성과 기억의 정치가 강하게 개입했다는 점입니다.

4. 냉전과 이념 갈등 속 ‘보훈’의 정치화

냉전기에는 보훈기념일이 이념 경쟁과 체제 선전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첫째, 군사 퍼레이드와 체제 과시입니다. 동·서 양 진영 모두 전승기념일, 군의 날, 혁명기념일 등을 계기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열며 무기와 병력을 과시하고, “강력한 군대 = 안전한 국가”라는 메시지를 강조했습니다. 이때 보훈기념일은 희생자 추모를 넘어 군사력·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이벤트가 되었습니다.

둘째, “애국심 교육의 장”으로서의 보훈일입니다. 학교·청년단체·직장 조직을 동원한 참배·묵념·헌화, 반대 진영에 대한 경계심 고취, 군에 대한 충성 서약 등은 냉전기 많은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이런 의례는 “국가를 위협하는 적”과 “그 적으로부터 지켜야 할 조국”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효과를 냈습니다.

셋째, 냉전 이후의 재해석입니다. 냉전이 끝나고 민주화·체제 변화가 일어난 뒤, 어떤 나라에서는 보훈기념일의 상징과 의례를 새롭게 재해석하거나, 과거 체제 선전적 요소를 줄이려는 시도가 등장합니다. 동시에 특정 전쟁과 군사 행동을 둘러싼 비판적 평가와 논쟁이 거세지면서, “영웅적 서사”만을 전면에 내세우는 보훈 방식에 도전이 가해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냉전기의 보훈기념일은 “공동체의 상처와 기억” 뿐 아니라, “이념과 체제의 경쟁”을 드러내는 거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5. 현대 세계의 보훈기념일: 추모·평화·비판적 기억의 교차

21세기에 들어서 세계 보훈기념일의 풍경은 한층 복잡해졌습니다.

첫째, 군인 중심에서 ‘모든 전쟁 피해자’로의 확장입니다. 과거에는 군인과 전몰자 중심의 보훈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민간인 희생자, 난민, 전쟁고아, 성폭력 피해자, 반전운동가, 양심적 병역 거부자 등 전쟁이 남긴 다양한 피해와 저항의 주체들이 기념의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둘째, ‘영웅 서사’와 ‘평화 서사’의 긴장입니다. 어떤 사회에서는 여전히 “영웅적 희생”과 “영광스러운 전투”를 강조하는 반면, 또 다른 사회에서는 전쟁의 비인간성과 비극을 중심에 두며 “어떤 전쟁도 쉽게 미화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강화합니다. 두 흐름은 같은 보훈기념일 안에서 서로 다른 행사, 서로 다른 연설, 서로 다른 예술 표현으로 충돌하거나 공존하기도 합니다.

셋째, 역사 수정주의와 기억투쟁입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과거 전쟁·점령·학살 책임을 축소·부정하려는 움직임이 보훈기념일을 통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에 맞서 시민단체·학자·예술가·피해자 단체는 대안적 추모식, 증언집회, 기억행진 등을 조직해 다른 기억을 공적 공간에 올려놓으려 합니다.

넷째, 국제 연대 속 보훈의 재구성입니다. 1·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 각종 내전과 분쟁 등을 둘러싸고 전쟁 당사국·피해국·파병국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 추모식·평화행진·예술행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만의 영웅”을 넘어, 전쟁 자체의 비극을 세계 시민이 함께 기억하는 방식으로 보훈기념일의 의미를 확장하는 움직임입니다.

결론: 보훈기념일의 역사는 ‘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의 역사

세계 보훈기념일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단순히 “군인을 기리는 날이 늘어났다”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변화가 보입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근대적 “침묵의 추모일”이 등장했고, 2차 대전과 탈식민의 시대에는 승리·해방·독립과 연결된 다양한 기념일이 생겨났습니다. 냉전기에는 보훈이 체제 선전과 이념 경쟁의 도구가 되기도 했고, 오늘날에는 영웅 서사·평화 서사·피해자 중심 기억·비판적 역사 인식이 서로 얽히며 새로운 형태의 보훈기념일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결국 보훈기념일의 역사는 “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누구의 희생을 중심에 둘 것인가, 그리고 어떤 미래를 약속할 것인가”를 둘러싼 인류의 선택의 역사입니다.

어떤 사회는 여전히 전쟁을 영광과 영웅의 이야기로 남기려 하고, 다른 사회는 전쟁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경고와 반성의 계기로 삼으려 합니다.

앞으로 세계 보훈기념일이 특정 국가·집단의 승리를 과시하는 날을 넘어서, 모든 전쟁 피해자의 존엄을 인정하고, 평화와 인권, 화해를 모색하는 열린 기억의 장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그 방향 또한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