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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예술의례의 기념적 기능

actone 2025. 12. 8. 11:27

세계 예술의례의 기념적 기능

예술은 늘 “지금 이 순간”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과거를 기억하고, 사람과 사건을 기념하며, 공동체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려는 의도가 깊게 숨어 있습니다. 특히 공연, 퍼포먼스, 제례와 축제, 추모 콘서트, 거리 퍼레이드처럼 일정한 형식을 갖춘 예술의례는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강력한 기념 장치로 작동합니다. 이 글에서는 세계 예술의례가 수행해 온 기념적 기능을 ①시간과 역사를 기억하는 기능, ②공동체 정체성을 구성하는 기능, ③상처와 갈등을 치유·전환하는 기능, ④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남기는 기능, ⑤디지털·글로벌 시대에 확장되는 새로운 기념 방식이라는 다섯 가지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1. 예술의례란 무엇인가: 예술과 기념 사이의 다리

예술의례라는 말에는 두 층위가 동시에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춤·음악·연극·미술·퍼포먼스 등 예술적 표현, 다른 하나는 반복되는 형식과 규칙, 상징을 가진 의례적 구조입니다.

전통 사회에서 예술의례는 제사, 계절제, 결혼식, 장례식, 성년식, 왕실 행사처럼 “삶의 전환점”을 둘러싼 의식 속에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왔습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춤, 아프리카 여러 부족의 드럼과 노래, 동아시아의 궁중음악과 의식무, 유럽의 종교예전 속 성가와 행렬 등은 모두 예술과 의례가 분리되지 않았던 시기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근대 이후 예술이 공연장·극장·갤러리에 분리되면서도, 기념식 공연, 추모 콘서트, 국가 행사, 도시축제, 거리 퍼레이드 등에서 예술은 여전히 의례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습니다.

즉, 예술의례는 “기억하고 싶은 사람·사건·가치를 몸과 소리, 이미지와 움직임으로 반복해 호출하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2. 시간과 역사를 기억하는 예술의례의 기능

첫째로, 예술의례는 시간과 역사를 기념하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첫째, 연례 축제와 기념공연입니다. 특정 전쟁의 종전, 독립, 봉기, 혁명, 민주화 등 역사적 계기를 기념해 매년 열리는 기념 공연·추모제·거리 축제는 그 사건을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매년 돌아오는 현재”로 만들어 줍니다. 추모 음악회, 기념 오페라·뮤지컬, 역사극, 거리 퍼포먼스 등은 교과서에 적힌 연도를 감정과 이야기로 다시 체험하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둘째, 전통 예술의 반복과 “시간의 겹침”입니다. 매년 같은 시기에 같은 춤·노래·연극이 반복될 때, 사람들은 “지금 이 공연” 속에서 과거의 같은 자리, 조상·선대의 기억, 어린 시절 자신의 경험을 동시에 떠올립니다. 이는 한 개인의 생애와 공동체의 시간, 그리고 더 오래된 역사적 시간이 겹쳐지는 경험을 만들어 냅니다.

셋째, 의식의 순서와 상징의 재현입니다. 행렬의 출발점과 도착지, 분향·헌화·점화와 함께 이뤄지는 음악·낭독·춤, 특정 인물·사건을 상징하는 소품과 의상 등은 매년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됩니다. 이 반복 덕분에 예술의례는 “그때 그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석을 자연스럽게 주입·전달하는 교육적 기념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예술의례는 달력 위의 날짜를 감정과 몸의 기억으로 바꾸어 놓는 “살아 있는 역사 수업”의 역할을 합니다.

3. 공동체 정체성을 구성하는 상징적 무대

둘째로, 세계 각지의 예술의례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기념하고 확인하는 장입니다.

“우리는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의상·음악·춤을 보면, 특정 민족·지역·종교·도시를 상징하는 의상과 색깔, 전통 악기와 리듬, 춤의 동작과 행렬의 모양은 그 공동체가 스스로를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지를 드러냅니다. 어떤 예술의례는 엄격한 행렬과 절제된 동작으로 “질서와 위계”를 강조하고, 다른 의례는 자유로운 춤과 즉흥 연주로 “열정과 해방”의 이미지를 내세웁니다.

참여를 통한 소속감의 체험도 중요합니다. 관객이 단순히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함께 노래하고 박수치고 춤추며 행렬에 동참할 때, 예술의례는 강력한 소속감 생성 장치가 됩니다. 매년 같은 의식에 참여하는 경험은 “나는 이 공동체의 일원이다”라는 감각을 몸에 새기는 과정입니다.

세대 간 전승과 “기념의 교육” 역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어린이는 예술의례 속에서 어떤 노래를 외워야 하고, 언제 일어나고, 어떤 순간에 침묵해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기쁘게 기념하고, 무엇을 슬프게 추모하며, 어떤 사건을 부끄러움·반성의 대상으로 삼는지가 자연스럽게 내면화됩니다.

예술의례는 이렇게 공동체가 스스로를 “어떤 기억과 감정의 집합체”로 이해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무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상처와 갈등을 치유·전환하는 기념의 예술

셋째로, 예술의례는 상처와 트라우마를 다루는 기념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재난·학살·전쟁 후의 추모 예술의례를 보면, 대형 재난이나 학살, 전쟁을 겪은 지역에서는 희생자 추모를 위한 연극, 무용, 음악회, 거리 퍼포먼스가 주기적으로 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의례는 단순한 애도에 그치지 않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몸과 소리, 이미지로 드러내게 함으로써 공동체적 치유 과정에 기여합니다.

침묵을 깨는 증언의 장으로서의 기능도 있습니다. 예술의례 속 증언 연극, 다큐멘터리 퍼포먼스, 유가족·생존자의 이야기 낭독은 그동안 주변으로 밀려났던 목소리를 공적 공간의 중심으로 불러냅니다. 이는 “기념일”을 국가나 기관의 시각만이 아니라 피해자와 약자의 시각에서도 다시 쓰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갈등의 재구성과 화해의 상상도 중요한 측면입니다. 예술의례는 때로 가해와 피해, 승자와 패자의 이분법을 넘어 더 복잡한 이야기와 감정을 담는 장이 되기도 합니다. 한 무대 위에 서로 다른 언어·문화·세대의 예술가를 세우거나, 대립했던 집단의 상징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화해와 공존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합니다.

이런 점에서 예술의례의 기념 기능은 “상처를 잊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다르게 기억하도록 돕는 것”에 가깝습니다.

5.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남기는 기념의 의례

넷째로, 예술의례는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기념으로 남기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시위와 퍼포먼스가 결합된 거리의례를 보면, 인권, 민주주의, 환경, 젠더, 인종 차별 반대 운동 등에서는 집회·행진과 함께 노래, 율동, 퍼포먼스, 상징 조형물이 동원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거리와 광장은 항의와 저항의 공간인 동시에 “우리가 함께 서 있었다”는 사실을 기념하는 무대가 됩니다.

국가·도시가 만든 공식 기념의예술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국가와 도시가 군사 퍼레이드, 기념 콘서트, 대형 축제 등을 통해 자신들이 선호하는 역사 기억과 정체성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웅장한 음악과 화려한 조명, 거대한 무대 연출은 “이 사건은 자랑스럽게 기억해야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강화합니다.

이에 대응해 비판과 대안 서사의 예술의례도 등장합니다. 예술가와 시민들은 공식 기념행사를 비판하는 대안 퍼포먼스·전시·거리극을 기획하기도 합니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정반대의 예술의례가 펼쳐지는 모습은 그 사회의 기억을 둘러싼 갈등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이처럼 예술의례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를 둘러싼 정치적 협상의 장이자, 갈등과 대립을 예술적 언어로 드러내고 조정하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6. 디지털·글로벌 시대: 새로운 예술의례와 기념 방식

마지막으로, 디지털·글로벌 시대의 예술의례는 국경과 현장을 넘어 확장되는 기념의 형식을 보여 줍니다.

온라인 추모 공연과 스트리밍 의례를 보면, 재난·테러·팬데믹 이후 온라인 추모 콘서트, 라이브 스트리밍 공연, 해시태그 캠페인과 결합한 디지털 퍼포먼스가 확산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집에 있으면서도 같은 시간에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문구를 공유하며 “함께 기념하는 경험”을 나눕니다.

전 세계 동시다발 예술 행동도 많아졌습니다. 기후위기, 인권, 전쟁 반대 등을 주제로 여러 나라의 예술가들이 같은 날, 각자의 도시에서 공연·전시·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이를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프로젝트가 늘고 있습니다. 이는 특정 사건·가치에 대한 기념을 한 나라·한 도시의 범위를 넘어 지구적 차원의 예술의례로 확장하는 흐름입니다.

기록과 재보기: 아카이브가 된 예술의례도 중요한 변화입니다. 사진, 영상, SNS 기록, 온라인 아카이브는 예술의례를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는 기념 자료로 남게 합니다. 특정 연도의 기억에 남는 공연 장면, 한 구호를 함께 외치는 순간, 촛불과 노래를 함께 든 얼굴들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 공유되며 디지털 기념물로 기능합니다.

이처럼 현대의 예술의례는 현장성과 기록성, 로컬과 글로벌,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뒤섞인 새로운 기념 형식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결론: 세계 예술의례는 ‘기억을 움직이는 무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세계 예술의례의 기념적 기능은 매우 다층적입니다.

하나, 예술의례는 특정 날과 사건을 반복적으로 상기시키며 시간과 역사를 기억하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둘, 예술의례는 의상·음악·춤·행렬을 통해 “우리는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공동체 정체성의 무대가 됩니다. 셋, 예술의례는 재난·폭력·차별의 상처를 다루며 치유와 화해, 재해석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공간입니다. 넷, 예술의례는 국가·도시·운동·시민이 서로 다른 기억과 메시지를 경쟁·협상·대립하는 기억 정치의 장이기도 합니다. 다섯, 디지털·글로벌 시대의 예술의례는 국경과 물리적 공간을 넘어 지구적 연대와 디지털 기념 방식을 확장해 가고 있습니다.

결국 예술의례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을 것인가”를 둘러싼 인류의 선택이 실시간으로 드러나는 무대입니다.

우리가 어떤 예술의례에 참여하고, 어떤 장면을 사진과 영상, 이야기로 남길지 결정하는 순간, 이미 우리는 기억의 편집자이자 기념의 공동 연출자가 됩니다.

앞으로 세계 예술의례가 특정 집단의 기억만을 강화하는 장이 아니라, 더 다양한 목소리와 경험을 포용하는 기념의 공간으로 확장될 때, 예술은 단지 과거를 장식하는 수단을 넘어 미래를 새롭게 상상하는 기념의 언어가 되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