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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도시 축제의 기념적 기능

actone 2025. 12. 3. 21:00

세계 도시 축제의 기념적 기능

세계 도시 축제의 기념적 기능

도시 축제는 흔히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이벤트로만 이야기되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도시가 자기 역사를 기억하고, 정체성을 재구성하며, 상처와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 촘촘히 숨어 있습니다. 특정 날짜와 장소, 반복되는 의식과 퍼레이드, 상징적인 색과 음악, 음식과 퍼포먼스는 모두 “이 도시는 무엇을 기억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입니다. 이 글에서는 세계 도시 축제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어떤 기념적 기능을 수행하는지 역사·정체성·치유·정치·디지털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도시의 역사와 기원을 무대로 올리는 장치

많은 도시 축제는 겉으로는 음악과 퍼레이드, 불꽃놀이의 향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도시의 기원과 역사적 전환점을 반복해서 무대 위로 불러내는 의식입니다. 도시 건립기념일, 독립기념일, 항구·철도 개통 기념, 산업화의 출발점이 된 구역을 중심으로 열리는 축제 등은 모두 “이 도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현재형으로 다시 이야기하는 장입니다.

퍼레이드 동선이 오래된 구시가지, 광장, 기념비, 시청 주변을 관통하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축제를 즐기며 자연스럽게 도시의 상징 건축물과 기념 공간을 다시 보게 되고, 안내 방송·공식 행사·전시·미디어 콘텐츠를 통해 과거의 사건과 인물들을 접하게 됩니다. 도시 축제는 교과서보다 훨씬 감각적인 방식으로, “우리 도시의 시작과 전환점”을 공동의 기억으로 묶어 두는 역할을 합니다.

2. 도시 정체성과 ‘우리’의 범위를 다시 그리는 행사

세계 도시 축제의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은 “우리는 이런 도시다”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선언하는 것입니다. 음식 축제·예술제·거리 퍼레이드·카니발·프라이드 퍼레이드·영화제 등은 모두 도시가 스스로 선택한 이미지와 가치를 드러내는 무대입니다.

어떤 도시는 예술·창의성·자유를, 어떤 도시는 역사와 전통을, 또 다른 도시는 다문화·이민·관용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이때 축제는 단순한 슬로건을 넘어, 실제로 시민들이 거리에서 만나 서로의 얼굴과 목소리를 확인하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주민 공동체, 소수자 집단, 주변부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이야기를 축제 속 프로그램으로 올릴 때, 도시의 “우리”라는 말은 조금씩 넓어지기도 합니다.

동시에 도시 축제는 상징을 통해 정체성을 압축합니다. 특정 색, 동물, 캐릭터, 음악, 슬로건이 매년 반복되면서, 그 도시는 외부 관광객에게도 특정 이미지로 각인됩니다. 축제는 도시 브랜드를 만드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시민 내부에서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주기적인 의식”으로 기능합니다.

3. 상처와 재난, 갈등을 다른 언어로 기억하게 하는 장

많은 도시 축제는 처음부터 축제가 아니었습니다. 전쟁·폭동·민주화 운동·자연재해·산업 재난이 발생한 도시들에서, 그날을 기억하기 위한 추모 집회·행진·추도식이 시간이 지나며 문화 행사, 예술제, 평화 축제로 변모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축제는 “상처를 다시 발화하는 자리”가 됩니다. 공연·전시·영화·퍼포먼스 속에 당시의 경험과 상징이 녹아들고, 토론회와 강연, 시민 참여 프로그램이 함께 열리며, 단순한 추모를 넘어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를 묻는 장이 됩니다. 자연재해를 겪은 도시에서 열리는 안전·환경·기후 관련 축제, 전쟁 피해를 겪은 도시의 평화 축제, 민주화 운동이 있었던 도시의 인권·자유 축제는 모두 그 예입니다.

이때 기념의 방식은 조용한 묵념만이 아니라, 음악과 춤, 거리 예술과 시민 퍼포먼스일 수 있습니다. 도시 축제는 슬픔과 분노를 비명과 침묵에만 묶어두지 않고, 색과 소리, 몸짓으로 변환해 공유하도록 돕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사건의 정치적 의미가 과도하게 희석되거나, “불편한 기억”이 축제의 화려함에 가려지는 위험도 함께 존재합니다.

4. 상업화와 관광 산업 속에서 왜곡되는 기억의 위험

도시 축제의 기념적 기능은 늘 상업화 압력과 함께 움직입니다. 축제가 성공하면 관광객이 늘고,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며, 도시 브랜드 가치가 올라갑니다. 기업 후원과 미디어 스폰서는 축제를 더 크게, 더 화려하게 만들 수 있게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본래의 기념 목적이 흐려지거나, “팔리는 이미지”만 남는 경우도 많습니다. 도시의 역사 속 불평등·폭력·차별·억압 경험은 지워지고, 소비하기 좋은 전통·놀이·예쁜 색채만 남는 것입니다. 로컬 주민의 삶과 기억은 뒤로 밀려나고, 중심가 상업지구와 대형 공연만이 주목받는다면, 축제는 도시를 기억하는 자리가 아니라 도시를 포장하는 광고가 되어 버립니다.

특히 원래는 저항과 대안 문화를 상징하던 거리 축제가 관광 상품으로 소비될 때, 축제의 기념적 기능과 비판 정신은 약해지고 “사진 찍기 좋은 이벤트”만 강화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도시 축제가 기념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로컬 주민·시민단체·예술가·연구자 등이 함께 참여해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지우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 충분히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5. 디지털 시대, 전 세계가 지켜보는 도시 축제의 기억

오늘날 도시 축제의 기념적 기능은 더 이상 오프라인 공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라이브 스트리밍과 SNS, 숏폼 영상 플랫폼을 통해, 한 도시의 축제는 실시간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전파됩니다. 해시태그와 라이브 방송, 브이로그, 드론 촬영 영상은 축제의 장면들을 데이터로 남기고, 재생·공유·댓글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참여’와 ‘기억’을 만들어 냅니다.

이 과정에서 도시 축제는 지역 기억이자 글로벌 콘텐츠가 됩니다. 한 도시가 특정 역사적 사건이나 가치(평화, 인권, 기후, 젠더, 다양성 등)를 축제의 주제로 삼을 때, 온라인 관객은 그 메시지를 자기 도시의 문제와 연결해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디지털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화려하고 자극적인 장면 위주로 소비를 부추기며, 축제가 가진 비판적·기념적 의미를 약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디지털 시대의 도시 축제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함께 고려한 이중의 기획이 필요합니다. 현장에서의 의례와 경험, 온라인에서의 기록과 해석이 서로를 보완하며, 도시의 기억을 더 넓게, 더 깊게 공유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결론: “즐기는 날”을 넘어,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묻는 날로

세계 도시 축제는 겉으로 보기에는 음악과 불꽃, 퍼레이드와 먹거리의 향연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늘 몇 가지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이 도시는 무엇을 기억하고 싶은가?”, “누구의 역사와 목소리가 축제의 중심에 서 있는가?”, “우리는 이 축제를 통해 어떤 미래의 도시를 꿈꾸고 있는가?”

도시 축제의 기념적 기능은, 이 질문들을 해마다 다시 꺼내어 시민과 함께 나누는 데 있습니다. 잘 기획된 축제는 도시의 상처를 정직하게 마주하면서도, 사람들에게 다시 걸어갈 힘을 주는 기억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상업성과 이미지 관리에만 치우친 축제는 도시의 기억을 얇고 불편함 없는 이야기로 가공해 버릴 위험도 안고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축제를 단지 “놀고 소비하는 시간”으로 볼 것인지, “도시가 스스로를 회상하고 다시 쓰는 과정”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시민적 선택입니다. 다음에 어떤 도시의 축제를 만나게 된다면, 그 화려함 뒤에 숨은 기념의 층위를 한 번쯤 떠올려 보아도 좋겠습니다. 그 순간, 축제는 관광 상품을 넘어, 도시와 나 자신을 함께 비춰 보는 거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